이곳이 매동마을이다.
아마 다섯 시간을 걸어 도착했지 싶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의 중간지점인 매동마을이다.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금계로 가야 한다.
우리는 백련사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더웠다.
속이 탈 정도로 더웠다.
계곡은 없었다.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을 버리고 이 길을 선택한 죄로 계속 가파란 산길을 걸어야 했다.
첩첩산중, 땀이 비오듯했다.
3코스에서 처음으로 만난 계곡.
물이 많지 않았다.
VJ특공대가 보여준 계곡과 그 많은 물은 어디로 도망을 갔나?
잠시 쉬어 가는 곳.
막걸리를 파는 곳.
더워서 막걸리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계곡의 물도 차지 않았다.
여름철에 둘레길을 걷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다.
물이 없다.
얼마 전, 전국적으로 비가 제법 내렸는데, 그 많은 비가 다 어디로 도망을 갔나?
도랑물 정도로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걸어 도착한 매동마을.
적송이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사리 밭이 녹색혁명을 이루고 있었다.
총 19Km 의 중간지점인 매동마을.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금계로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동마을에서 1박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더위에 지쳐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당장 몸을 식혀주고, 목을 달래줄 곳을 찾아야 한다.
매동마을의 찻집.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했다.
손님이라고 젊은 남녀 다섯 명 정도.
신기했다.
이런 곳에 이런 커피집이 있다는 것이.
장사가 되나?
길손이 차만 마시면 될 터인데, 이런 면 단위에 이런 커피집은 또 무엇이며 또 장사가 되나?
에 온통 필이 꽂혀 있었다.
그것도 유기농 커피였다.
시시한 커피가 아니었다.
맛이 진했고, 깊었다.
하!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
이 밥상을 보라!
70이 넘은 할머니가 차린 저녁 밥상.
그것도 전라도가 아닌 경상남도 항양군 마천면 금계리 할매밥상집의 저녁상이다.
눈이 호강을 했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고, 입이 원더풀을 외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산과 들을 다니면서 채취한 나물.
아마 할머니는 오늘 우리 집에 채식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온다는 걸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고기 하나 없는, 나물바다였다.
정성이 눈물겨웠고, 맛이 기가 막혔다.
맛의 고향은 정성이다.
할머니,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반주로 마신 맥주 한병과 소주 한병.
다음날 아침까지 먹은 우리는 할머니 집을 나와 처음 접하는 칠선계곡으로 향했다.
그 옛날 6, 25 때 빨치산의 야전병원이 있었다는 칠선계곡으로.
3코스의 계곡이 아니었다.
칠선계곡은 물도 많았고, 차가웠다.
야전병원은 뒤로하고 우선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계곡의 상류로 올라갔다.
밖은 33도이지만 칠선계곡은 18도.
우리가 한 일은 바위에 누워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데 쏟았다.
잠이 쏟아졌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자장가였다.
할머니 집에서 밥을 너무 맛있게 먹어 얼굴이 찐빵이 되어 있다.
나,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래?
머루랑 달래랑 먹으며 남은 생을 여기서 마치고 싶구먼유.
전라도 말도 경상도 말도 아닌 충청도 말이 아닌감.
폭염의 서울이 떠올랐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0,11111%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0,11111%에 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99%는 무서운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1%다!
아는지 모르는지...
저 계곡의 물은 그냥 물이 아닌 온갖 약초와 산삼이 썩은 물이다.
물이 아닌 보약이다.
너무 맑아 고기가 없었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맑으면 사람이 꼬이지 않는다.
적당히 썩어 있어야 인간들이 꼬인다.
독청!
홀로독, 푸를청!
내가 앞으로 헤치고 나갈 미래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나만의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 끌어안을 것이다,
팔주노초파남보를!
젊다는 것은, 다른 말로 도전이다.
늙었다는 것은, 도전이 아닌 수용이다.
내쇼날 어셈블리.
군계일학.
나만의 에너지.
나만의 열정.
그리고 나만의 혁명!
앎의 궁극은 그리고 실천이다.
지금부터 에너지를, 열정을, 아끼고 비축해야 한다.
갑론을박에 시간을 허비해서 안 된다.
당신, 정녕 나를 아나?
내 목적지는 저곳 내쇼날 어셈블리가 아니다.
아느뇨?
금계를 떠나면서 우리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나올 때, 방값과 밥값을 계산하면서 전날 밤 밥을 먹으면서 반주로 마신
소주와 맥주 값을 계산하지 않고 나왔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었다.
진수성찬을 먹고도 까먹다니?
할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할머니가 얼마 상심하셨을까?
나는 늙어 잊었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이 그걸 잊고 그래 떠나나?
하고 상심을 하지 않았을까?
갑시다, 가자, 하고 할머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중이라 손님이 없었는지 집에 사람들이 없었다.
할머니!
항머니!
하고 두 번 부르자 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주와 맥주 값을 드렸다.
할머니 얼굴에 피어 오른 미소.
부처의 미소였다.
할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두 분 내내 건강하시고요.
예, 잘 가이소.
지리산의 밤은 추웠다.
추운 게 아니라 얼어죽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냉골이었다.
뒷이야기-8월 2일 아침 8시 20분발 남원행 버스를 탔다. 폭염의 나날이다. 두 번째 지리산 둘레길이다. 남원에 도착해 인월면에 가는 버스를 탔다. 그곳이 지리산 둘레길 3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인월면의 식당에 들어가 나는 냉콩국수를 옆지기는 들깨수제비를 시켰다. 주인 아저씨도 손님들도 전라도 말을 쓰지 않았다. 그렁깨, 거시기가 없었다. 잠시 후 식당을 나온 우리는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지리산 둘레길 3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 섰다. 자, 우리는 이 둘레길을 힘들게 걸으면서 무엇을 버리고, 또 무엇을 얻어 올라갈까? 서울도 덥고 남원도 더웠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 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걸어야 한다. 갑시다! 그래, 가자! 201582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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