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에 어머니에게 가지 못했다.
너무 바빴고, 몸이 션찮았다.
지금 내 몸의 기가 골고루 돌지 못하고 있다.
아마 어머니가 목이 타게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12일 토요일, 옆지기와 같이 나와 지하철을 타고 가다 군자에서 갈라졌다.
7호선을 탄 나는 지하철 안에서 죽집에 전화를 해 소고기버섯죽 포장을 부탁했다.
죽과 찰떡을 사 어머니에게 갔다.
형수는 그 날 사위 식구들과 계곡에 간다면서 어머니를 부탁했다.
잘 다녀오시라 했다.
우리 집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형수가 가장 고생이 많다.
첫째, 자유가 없다.
둘째, 마음놓고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아들 둘에 딸이 셋이다.
딸 셋은 요즘 있으나마나다.
큰 누이는 손자와 손녀를 보는데 하루를 다 보내고 있다.
내 밑에 부산 누이는 로펌에 다니고 있는 변호사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요즘 뚜쟁이들 만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막내 누이는 막내아들 취준을 위해 마지막 알바를 위해 몸을 태우고 있다.
자식이 없는 내가 그런 점에서는 자유롭다.
어머니가 죽을 달게 잡숫신다.
어머니를 휄체어에 태우고 바깥나들이에 나섰다.
이제 더위도 끝물이다.
절기는 과학이다.
그 말이 맞다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더위도 머지않아 사라지리라.
그래도 올여름은 모기가 없어 살맛이 났다.
그 많은 모기가 어디로 사라졌나?
공원을 거쳐 강으로 갔다.
강으로 가는 그 길목에 엘리베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헷갈린다.
두 다리가 이동수단의 전부이던 시절에 비하면 이거야말로 상전벽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기쁘지는 않다.
중랑천 그 다리에 가면 잉어떼들을 만날 수 있다.
잉어떼들을 보고 다시 공원에 오니 몸에 땀이 줄줄 훌러내린다.
헬체어를 타고 다니면 운동이 어느 정도 된다.
털털거리면 장운동에 좋고, 전신건강에 좋다.
미는 나는 혼이 나고.
땀이 줄줄이다.
공원에 온 나는
일단은 피하자.
숲속도서관이 있고, 카페가 있는 그곳으로 피신을 했다.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마을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쉼터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달달한 카페라떼를 한 잔 사 드렸다.
니도 한잔해라.
나는 여기 시원한 물 마실게요.
94세이신 어머니.
언제, 불이 끄질지 모른다.
바람 앞에 등불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어머니가 집에 가자고 하신다.
6시쯤 죽을 앞에 놓고 어머니가 말했다.
니한테 죽하고 찰떡을 마이 얻어먹었다.
어예 갚노?
그런 말씀 마세요.
형님과 형수가 지금까지 어머니를 돌봐드린 거에 비하면,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5남매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그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절대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여걸이었다.
리더십과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사람들을 끄는 그 기술과 그리고 끌어안는 그 배려심이 남달랐다.
정말 오지랖이 넓은 분이었다.
집안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네분들이 전부 어머니 밑으로 모이시고, 어머니와 일을 하는 그 자체를 즐기곤 했다.
너무 오래 사셨나?
풍전등화 앞의 가느린 등불이다.
그나마 어머니가 정신이 칼칼하실 때 내 메시지를 자주 전하자.
어머니.
응.
저를 지금까지 받쳐주고 있는 기둥이 셋 있습니다.
1. 아버지로부터는 정직한 삶과 부지런함을 물려받았습니다.
2. 어머니는 저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상상력, 그리고 열정을 물려주었습니다.
3. 집사람은 제 안에 잠을 자고 있는 재능을 깨워 활화산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두어 번 끄떡였다.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르켰다.
어머니, 갑니다.
오이 가나?
그 말은 정말로 가나, 라는 말이다.
예. 저는 현미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집에 가야 합니다.
다음 주 수요일 오겠습니다.
그래, 가라.
지난 주 옆지기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나만 위내시경을 받지 못했다.
혈압이 너무 높아 보류.
고기를 먹나, 술을 먹나, 담배를 태우나, 라면을 먹나, 과자를 먹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혈압이 176-90으로 나오는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스트레스라는 놈이다.
스트레스, 무서운 놈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 몸이 나에게 경고를 하기 시작했다.
쉬어라,
무조건 쉬어라!
2%가 부족한데, 어떻게 쉬나?
못 쉬었다.
그 대신 조절해가며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은 하되,
가급적이면 머릿속에 스트레스가 침범하지 못하게
자주자주 비우자.
정 할 일이 없으면 머릿속에 스트레스가 안 들어오게
미친놈 모양 말발탈 살발탈~말발탈 살발탈~하고 중얼거리든가
아니면
지하철 안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곤 한다.
어쨌든 그 덕인지는 몰라도,
치아가 몽땅 빠지는 그 지경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고 있다.
나는 안다.
이 경계만 넘어서면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제 골로가지 싶다.
아직은 골로와 악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당장 골로가면 안 된다.
그래서 부탁한다.
길에서나 지하철에서 혹시 이 오모차베를 만나면
좀머씨처럼
제발 나를 잡지 말고, 그냥 좀 놔주시기 바랍니다.
일분 일초가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제 8부 능선에 올라와 있으니 나머지 2부 능선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나를 놔두시오, 여러 나으리들.
나에게 오늘 하루는,
내 삶의 마지막 날입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모두
시간을 황칠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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