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를 보호할 모자를 사다
어제 도서관을 나온 나는 경복궁역을 지나 광화문 뒷골목으로,
그리고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으로 걸어갔다.
시청광장에는 경북사과가 올라와 선을 보이고 있었다.
날이 추워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걷는데,
내 뒷머리가 깜작깜짝 기절을 해볼까, 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추울 때는 걷는 게 아니라 차로 이동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 가 진료를 받으면서 신경외과 과장에게 물었다.
이제 목욕탕에 가 온탕 냉탕 풍덩풍덩 못 합니까?
못 합니다.
강에 가서도 이제 어푸어푸하며 잠수를 못 합니까?
못 합니다.
머리를 신주단지 모시 듯,
그렇게 모시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이 아닌, 온입니다.
머리를 따뜻하게 보호하십시오.
지금의 모자가 부실했다.
추위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모자부터 사자.
나는 모자 쓰는 걸 싫어했다.
여름철에도 모자를 잘 쓰지 않았다.
아무리 태양이 강렬해도 그 햇빛을 모자로 막지 않았다.
겨울은 더더욱 모자를 안 썼다.
그런데, 이제 환경이 달라졌다.
유전인자가 아닌, 환경인자가 이제 나를 지배한다.
내 꿈을 이루는 그 날까지,
나는 내 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다시 픽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방한모자를 구하기 위해 어제 남대문시장에 갔다.
하나 구했다.
지금 쓰고 있는 모자보다는 따뜻했다.
안에 기모처리가 되어 있어 찬바람을 막아주었다.
이것도 안 되면,
그 때는 에스키모인들이 쓰는 모자를 구해 쓰면 되지 싶다.
겨울 한 철 월남에 가 살면 안 될까?
모자를 구해 나오다 김이 나고 있는 족발집을 발견했다.
우리 앞집의 복동이가 생각났다.
복실이보다 더 어린 강아지가,
어느 날 우리 앞 건물의 지하의류공장에 나타났다.
아마 사장 강아지인 것 같았다.
며칠을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 이곳까지 온 강아지.
그 어린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사장님, 앞으로 이 강아지를 복동이라 부르십시오.
동쪽에서 온 복덩이.
예.
아침 저녁,
오토바이에 태워 출퇴근을 하다,
며칠 전부터 공장 앞 구석에 개집을 하나 엉성하게 만들더니 복동이를
입주를 시켰다.
다시 울기 시작했다.
동트기 전 새벽에,
그리고 어두워진 밤에.
선택이 행복과 불행을 나눈다.
제주에 있는 이상순 이효리씨 집에 안 팔려가고,
어떻게 이 산동네에 왔노, 복동아.
너거 아부지 어무이 뭐하시는 분이고?
응?
아침 저녁,
오며 가며 한번씩 복동이에게 가 어루만져 주고 있다.
복동아,
운명이다.
복실이도 운명이고,
네 복동이도 운명이다.
이제 남은 일은 살아남는 길뿐이다.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남아라.
사나이 대장부가 울면 안 돼!
아니구나,
사나이가 아니라
가시나네.
미스라도,
울면 안 돼,
반드시 이 삶에서 승리를 해야 돼,
알았지!
사장님, 족발 뼈 좀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집 앞 강아지 주려고요.
네, 드릴 게요.
복동아,
춥고 긴긴 겨울밤을 잘 견뎌야 한다.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
울지 말고,
이 뼈를 먹으면서,
무서움과 외로움을 물리쳐라!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 앞 카페 (0) | 2018.05.17 |
---|---|
어제 일요일, 도봉산에 가다 (0) | 2018.04.16 |
운동장에 가다 (0) | 2017.06.30 |
서울 둘레길 1코스-2-당고개역에서 원자력병원까지 걷다 (0) | 2017.05.24 |
수락산을 오르다 (0) | 201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