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복동이에게 족발을 주다

오주관 2017. 11. 16. 14:43



내 머리를 보호할 모자를 사다


어제 도서관을 나온 나는 경복궁역을 지나 광화문 뒷골목으로,

그리고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으로 걸어갔다.

시청광장에는 경북사과가 올라와 선을 보이고 있었다.

날이 추워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걷는데,

내 뒷머리가 깜작깜짝 기절을 해볼까, 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추울 때는 걷는 게 아니라 차로 이동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 가 진료를 받으면서 신경외과 과장에게 물었다.

이제 목욕탕에 가 온탕 냉탕 풍덩풍덩 못 합니까?

못 합니다.

강에 가서도 이제 어푸어푸하며 잠수를 못 합니까?

못 합니다.

머리를 신주단지 모시 듯,

그렇게 모시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이 아닌, 온입니다.

머리를 따뜻하게 보호하십시오.




지금의 모자가 부실했다.

추위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모자부터 사자.

나는 모자 쓰는 걸 싫어했다.

여름철에도 모자를 잘 쓰지 않았다.

아무리 태양이 강렬해도 그 햇빛을 모자로 막지 않았다.

겨울은 더더욱 모자를 안 썼다.

그런데, 이제 환경이 달라졌다.

유전인자가 아닌, 환경인자가 이제 나를 지배한다.

내 꿈을 이루는 그 날까지,

나는 내 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다시 픽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방한모자를 구하기 위해 어제 남대문시장에 갔다.

하나 구했다.

지금 쓰고 있는 모자보다는 따뜻했다.

안에 기모처리가 되어 있어 찬바람을 막아주었다.

이것도 안 되면,

그 때는 에스키모인들이 쓰는 모자를 구해 쓰면 되지 싶다.

겨울 한 철 월남에 가 살면 안 될까?


모자를 구해 나오다 김이 나고 있는 족발집을 발견했다.

우리 앞집의 복동이가 생각났다.

복실이보다 더 어린 강아지가,

어느 날 우리 앞 건물의 지하의류공장에 나타났다.

아마 사장 강아지인 것 같았다.

며칠을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 이곳까지 온 강아지.

그 어린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사장님, 앞으로 이 강아지를 복동이라 부르십시오.

동쪽에서 온 복덩이.

예.


아침 저녁,

오토바이에 태워 출퇴근을 하다,

며칠 전부터 공장 앞 구석에 개집을 하나 엉성하게 만들더니 복동이를

입주를 시켰다.

다시 울기 시작했다.

동트기 전 새벽에,

그리고 어두워진 밤에.

선택이 행복과 불행을 나눈다.

제주에 있는 이상순 이효리씨 집에 안 팔려가고,

어떻게 이 산동네에 왔노, 복동아.

너거 아부지 어무이 뭐하시는 분이고?

응?

아침 저녁,

오며 가며 한번씩 복동이에게 가 어루만져 주고 있다.

복동아,

운명이다.

복실이도 운명이고,

네 복동이도 운명이다.

이제 남은 일은 살아남는 길뿐이다.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남아라.

사나이 대장부가 울면 안 돼!

아니구나,

사나이가 아니라

가시나네.

미스라도,

울면 안 돼,

반드시 이 삶에서 승리를 해야 돼,

알았지!


사장님, 족발 뼈 좀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집 앞 강아지 주려고요.

네, 드릴 게요.



복동아,

춥고 긴긴 겨울밤을 잘 견뎌야 한다.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

울지 말고,

이 뼈를 먹으면서,

무서움과 외로움을 물리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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