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5일 일요일, 둘레길을 걸을까 하고 도봉산을 걷다 표지판을 보고 그래, 자운봉에 한 번 올라가보자. 3,2 km. 옆지기는 아버지 산소에 간다며 어제 친정에 갔다. 문자가 왔는데, 식구 모두 천안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가자.
아직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저 곳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산악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박용석대장과 신동민, 그리고 안동의 강기석. 히말라야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다 설산에 파묻힌 세 사람. 특히나 나는 강기석이를 좋아했다. 그 친구만 생각하면 눈앞이 침침해져오곤 했다. 너무 젊은 나이에 가버렸다.
여기서 다락원으로 가는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후회하기 시작했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마스크라도 가지고 올 걸. 벌써부터 가슴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13억 중국과 우리 대한민국이 힘을 합하는 바람에 우리 5천만은 이 미세먼지 때문에 저절로 인구감소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기도 대풍년이고, 플라스틱도 대풍년이고, 비닐봉지도 풍년이 지랄을 만나 춤을 추고 있다. 육지의 쓰레기는 전부 바다로 모인다. 바다는 큰 세숫대야다. 하지만 300년도 안 되는 세월에 그 큰 바다가 이제 임계점에 다다랐다. 육지의 쓰레기를 전부 바다에 버리면, 머지않아 바다는 미쳐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바다가 미쳐버리면 우리 인간도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전 세계의 산업을 재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육대주를 권역별로 나누어 산업을 재조정해야 한다. 나는 2018년의 지금보다 1960년대의 가난한 그 시절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질은 빈약해도 마음은 풍년이었다.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웃도어가 풍년을 만났다. 거름지고 장에 가면 안 된다. 주체적 삶이 중요하다. 내가 이 우주의 주인이고, 중심이고, 역사는 나로부터 시작이 된다. 고로 나는 너무 귀한 존재이다. 그 사실을 얼마나 알까? 나무아미타불~
핸드폰 너머의 산이 뿌옇다. 이제 결가부좌를 한 채 우리 인류는 반성을 해야 한다. 성장과 개발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은 안타깝게도 브레이크가 없다. 우리 모두는 지금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고,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누구를 위한 부이냐를 아주 강하게 물어야 한다.
저런 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저 미세먼지는 발암물질이다. 마시면 폐에 들어와 딱정벌레처럼 딱 붙어 우리 폐를 갉아먹는다.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도로 위를 달리는 경유차를 2020년부터는 생산을 스톱시켜야 한다. 화력발전소도 중지시켜야 한다. 홀짝제를 실시해 미세먼지를 줄여야 한다. 석탄을 때는 공장을 줄여나가야 한다.
불어오는 바람이 춥다. 배낭에 넣은 옷을 꺼내 입는다. 아뿔샤, 물도 없고, 김밥도 없다. 달량 커피 두 잔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온 게 전부다. 진퇴양난, 올라가느냐, 뒤로 빠꾸하느냐?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면서 결정하자.
달달한 게 좋다. 나이를 먹으면 쓴 것보다는 달달한 게 좋다. 당이 떨어지면 사탕이라도 빨아야 하듯이,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이 커피를 다 마시고 하산하자.
집사람 핸드폰은 찰칵, 하고 명령을 내리면 찍히는데, 내 것은 하위 버전이라 그런지 찰칵해도 안 찍힌다. 할 수 없이 커피잔을 입에 물고 찍는다. 내 블로그의 사진은 전부 핸드폰으로 찍었다. 가지고 있던 캐논고물 사진기를 얼마 전 남대문에 가 10만 원에 팔았다. 살 때는 110만 원을 주었는데, 이제 아무도 안 산단다. 불편했다. 성능이 좋은 핸드폰은 카메라 못지 않다. 오히려 더 편리하다.
그대, 지금 잘 가고 있느뇨? 우리나라 성씨들 중에 최씨와 강씨가 황소고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죽을 때 후손들에게 너거는 강씨와 최씨하고는 절대 싸우지 마라. 곱쓸머리 최가놈들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그 곱쓸머리 최가와 강가도 내 앞에서는 슬슬 피한다. 내가 짜장면 먹자, 고 하면 최가는 이설 없이 짜장면을 먹고, 내가 짬뽕을 먹자, 하면 강가 역시 짬뽕을 먹는다. 알아서 긴다, 강가와 최가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를 위해 자존심 안 상하게 슬그머니 양보해 준 것이다.
저 미세먼지를 보라! 우리 인간만큼 못된 종은 없다. 닥치는 대로 자연을 훼손시킨다. 우리 것도 아니면서. 자연의 주인은 우리 인간이 아니고, 살아 있는 모든 동식물이다. 하느님은 그 부분을 설명해놓지 않았다. 아니, 우리 인간이 주인이라고 아예 대못을 박아놓았다. 하느님이 놓친 그 부분을 과학이 분석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고로 우리 지구의 흥망성쇠는 하느님이 아니라 과학이 그 키를 쥐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혹시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까봐 미리 쐐기를 박는다. 그럼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과 신도는 어디에 가서 똥을 누고 소변을 보나. 인심이 그래 고약하면 안 된다. 화장실이 없으면 안방을 내어줄 용의가 있어야 한다. 화장실은 철퇴를 내리면서 보시함은 줄줄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그 옛날, 때는 12월 중순, 나는 그 때 배낭 하나 메고 포항에서 서울로 도보로 올라가고 있었다. 첫날 영천 뚝다리를 지났을 때 밤이 제법 깊어 있었다. 도둑놈 전두환이가 대통령일 때라 통금이 있었다. 자고 가야 한다. 어디에 갈까, 하다 길가의 교회를 발견했다. 마침 사택에 불이 있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 이리 오너라, 가 아니라 주인장, 계십니까? 하고 불렀다. 방문이 열렸다. 목사님과 아들 둘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요? 목사가 물었다. 이만저만 일로 서울로 가고 있는 사람인데, 보시다시피 날이 저물었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갈 수 있습니까? 뭣하면 주민등록증도 보여드리겠습니다. 방문을 열었으니 추웠겠지, 빨리 문 닫아라고 작은 아들이 소리를 쳤다. 목사가 안 된다고 하면서 방문을 탕 소리가 나게 닫았다. 내가 예수여도 그랬을까? 나오는데, 도분이 살짝 났다. 이대로는 갈 수가 없지. 예수님, 지금부터 한 번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는지? 대문을 열고 들어가 교회에 살금살금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온 나는 입구 중앙에 허리끈을 풀고 바지를 내린 채 주저앉아 배에 힘을 주었다. 아이고, 많아라. 내일 새벽 목사는 알 것이다, 우리 교회에 예수가 다녀간 그 사실을. 그리고 크게 뉘우치리라.
다섯 마리의 백구가 암자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겨울, 어떻게 북풍한설을 견뎌냈을까? 백구 한 마리는 이직 해동이 안 된 채 부어 있었다. 저 다섯 마리는 이 암자를 지키는 호위무사이다.
어떤 진돗개는 주인을 잘 만나 금수저가 되어 있고. 어떤 진돗개는 주인을 잘못 만나 1년 365일 목줄이 감긴 채 산책은커녕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한다. 저 백구들은 후자다. 백구 다섯 마리가 있는 걸로 보아 암자의 재정상태가 양호한 모양이다. 머리가 좋은 도둑이라면 늘 묶여져 있는 백구를 보고 아, 하고 양미간을 좁혀볼 만하다.
등산은 곧 먹는 것이다. 배낭 속에는 내남 없이 장수막걸리가 한 병씩 들어 있다.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맛이 좋다. 다리가 꼬이거나 풀리지만 않으면 마실 때 그 기분 그대로 하산이 된다. 그런데 장수에 소주까지 마시게 되면 다리가 배배 꼬여 자빠지는 날이면 막걸리와 소주값의 백 배 천배나 되는 헬기값을 지불해야 한다. 틱,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면 그 때는 하느님 빽도 안 통하고 요단강을 그냥 건넌다.
저 바위의 역사는? 우리 인간은 산을 오를 때마다 바위 앞에 무릎을 꿇여야 한다. 백 년을 살까말까한 우리 인간이 36억 그 너머에 태어난 역사를 가진 바위에 걸터앉아 장수막걸리와 참이슬을 마시면서 자연을 무시하면, 우리 자연이 늘 용서를 할까?
그냥 갈 수가 있나. 목은 안 말랐지만 저 바가지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달고 시원했다. 생수병 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전부 바가지였다. 플라스틱은 꿈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플라스틱을 몰아내어야 한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있는 인간이 결국 우리 인간이 사용하고 버린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다.
나이라가라폭포가 아닌 도봉산가라폭포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자연 속에 문제와 답이 있다. 자연의 복원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그 복원력이 무한은 아니다는 것이다. 임계점이 있고, 분명 한계점이 있다. 그 경계를 넘으면 우리 인간은 멸망의 그 길로 간다.
저 스님도 지구인구의 1/3에 속한다. 3분의 1은 너무 먹어 질병과 싸우고 있고, 3분의 1은 너무 못 먹어 질병과 싸우고 있다. 스님의 배가 저렇게 나오면 안 된다. 불합격이다. 스님의 배는 등짝에 붙을 정도라야 한다. 앎을 구하는 스님은 살이 찔 수가 없다. 사판이지 싶다. 고기도 먹고, 몰래몰래 여자도 먹는 사판이지, 이판은 아니다. 이판도 사판 못지 않다, 고 누군가가 말했다.
궁금했다. 뿜빠이 때문에 사달이 났나? 내가 6을 먹고 당신들은 4를 먹어라. 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5대 5로 나누어야지요. 되게 궁금했다. 통으로 꿀컥 삼키는 목사들보다는 그래도 그 옛날의 아날로그로 보여 미소가 입가에 피었다. 거시기, 공평이 좋습니다.
도봉산 섹스폰 연주자. 365일 그 자리다. 저 연주자가 부처일지 모른다. 도봉산의 살아 있는 부처. 예수도 많다. 우리가 못 보아서 그렇지 거리에 예수님이 참으로 많다. 나는 예수님을 자주 본다. 제주도 강정마을에도, 광화문 촛불집회에도 항상 에수님이 나타나 무리들 속에 끼어 있다. 어느 해 그 예수님의 손을 잡고 내가 "신부님, 신부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신부님은 거리 위의 예수님이십니다." 눈이 맑고 밝은 사람들은 거리 위의 예수님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제 붕어빵을 파는 저 곳에서 내 분노가 불을 뿜었다. 원인인즉슨, 사람들이 붕어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줄 뒤에 섰다. 천원에 세 개. 내 앞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청년 하나가 봉지를 받아 사라졌고, 두 사람이 대기를 하고 있고, 노인은 붕어빵을 꺼내기가 무섭게 다시 밀가루 반죽과 앙꼬를 넣기 바빴다. 그 때 난데없이 나타난 중년의 사내와 여자 한 사람이 새치기를 하면서 구워져 있는, 아니, 봉지 속에 들어갈 붕어빵을 두 개 쥐더니 붕어빵을 굽는 아저씨 옆 의자에 앉아 아주머니, 이 붕어빵 먹어도 되지요? 할아버지 조수인 할머니가 그럼 안 됩니다, 라고 하겠나? "예, 잡수세요." 그러자 줄을 외면한 채 의자에 앉아 붕어빵을 뜯어먹는 것이었다. 내 앞의 5천원이 도분이 났는지 '씨팔, 뭐 저런 사람이 있어? 야야, 가자!" 하면서 자리를 떴다. 군기반장인 나도 순간 화가 났다. "여보시오, 여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안 보입니까? 저 아저씨는 10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뭔데 새치기를 합니까? 눈은 도대체 왜 달고 다닙니까? 여기 줄이 안 보입니까?" 사내와 여자는 침묵한 채 우물우물 붕어빵을 씹어먹고 있었다. 을지문덕장군보다 더 큰 목소리로 "여보시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 겁니다, 아시겠소!" 양심은 그래도 있는지 내가 그렇게 큰 소리로 사내의 가슴에 직격탄을 날리는데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붕어빵 이천 원치 먹고, 욕은 이백만 원어치 얻어 먹고 있었다. 개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다. 그 사내와 여자는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가슴에 박힌 대못 하나 때문에 삶이 내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붕어빵을 볼 때마다 나를 떠올릴 것이고, 그리고 양심을 판 그 죄로 몸이 까닭없이 부르르 부르르 떨리곤 할 것이다.
붕어빵 대신 35백원짜리 칼국수를 먹었다. 김치는 물에 빨아 먹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에 나트륨이 가장 많이 든 음식이 칼국수라고 한다. 그래서 김치를 물에 빨아 먹고, 국물은 안 먹고 면만 건져 먹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3분의 1 정도 나트륨을 섭취했을 것이다. 그래 보아야 백년 후에는 다 흙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흙이 새치기를 하고 있고, 그리고 양심을 저버려 짐승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곤 한다.
뒷이야기-어젯밤 집에 온 옆지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좀 살살 안 하시고요. 그 두 사람, 가슴이 많이 아팠겠습니다. 나는 그걸 모르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변한다. 안 고쳐지고. 나 같은 악역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안 변한다. 좋게 좋게 말을 하면 항상 졸로 보고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대한항공의 35살짜리 그 전무를 보라, 그게 어디 인간이가? 돈이 사람들 위에 올라타면 그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자본의 아킬레스건인 탐욕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결국 자본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2018416해발120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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