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에게 책을 선물하다
이틀 전 수요일, 봄비를 맞으며 도서관을 나온 나는 중로의 영풍문고에 갔다. 몇 달 전부터 이제 내 책 읽기는 끝을 내고, 옆지기에게 책을 선물하자. 지난 세월, 서울의 어느 도서관에 나만 공부를 하는 방이 있었다. 그 방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4, 5명이 전부였다. 나는 4층의 그 방을 '무문관'이라 명명했다. 문이 없는 방. 그 방에서 10년 동안 책과 싸웠다. 후배들은 그런 나를 보고 '독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와 친교를 맺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나를 만만하게 만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금슬금 다 사라진다. 확철, 목숨, 그리고 미침이 내 삶의 동력이다. 100세에 돌아가신 큰 어머님은 어머님에게 '동서야, 저 조카가 스님이 되었으면 아마 큰 스님이 되었을 거다.'라고 하셨다.
법정스님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살아 있는 예수님을 많이 만났다. 눈이 있는 자는 아마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달봉사들은 앞에 예수님이 있어도 못 본다. 내가 아는 신부님 한 분이 계신다. 어느 추운 겨울, 명동성당 뒤의 한편에 비닐천막을 친 채 그 안에서 추위와 싸우며 신부님은 책을 읽고 있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 제주의 강장마을 천막에서 다시 신부님을 만났다. 겨울 한파와 싸우던 어느 추운 겨울, 용산 철거민 그 현장에서 보았고, 그리고 그 해 여름,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신부님을 만났다. 나는 신부님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신부님 손을 잡고
'신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신부님.'
'네.'
'신부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신부님은 손사래를 치시면서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신분님은 진짜 거리 위의 예수님이십니다. 신부님, 정말 고맙습니다.'
진실로 이 자리에서 고백하지만, 내 사유의 밭 그 어디에도 하느님은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있어야 한다. 힘 없는 약자들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쨌든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수직이 아닌 수평이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무대가 펼쳐져 있는 수도의 장이다. 깨치는 그 순간, 나는 부처가 된다. 살 떨리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암자생활을 했다. 10대와 그리고 30대 때 암자에 들어가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 그 주제를 놓고 한판 싸웠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법정스님은 부처이자 예수이다. 기복신앙이 전부인 기독교는 우리 인류를 살리지 못 한다, 맹세코.
지금, 여기가, 천국이고,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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