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걷다

오주관 2019. 10. 14. 12:07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걷다


2019년 10월 11일 13시 조금 넘어 남원역에 도착했다. 30분 후 남원역에서 장항동으로 가는 141번 버스를 탔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는 원래 인월에서 시작을 해 함양군 마천면 금계리에서 끝이 난다. 오래 전 여름 3코스를 걷다 엄청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인월에서 장항동까지 가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렸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3코스 20km를 하루에 걷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인 매동마을에서 일박을 하고 금계리로 넘어가곤 한다. 




장항동에서 출발


이곳 중국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도 그렇고 전국의 둘레길도 이제 그 열기가  많이 식은 것 같다. 어쨌든 여름보다는 걷기가 좋았다.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늘하지도 않은 초가을 날씨였다.





5년만의 휴가


두어 달 휴가를 낸 집사람. 그래서 택한 첫번째 여행이 지리산 둘레길 3코스였다. 10년 전 3코스를 걸으면서 지리산 막걸리와 파전을 어느 주막에서 먹었는데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주막이 아직도 있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3코스를 택했다.  
















주막을 만나다


3코스에서 드디어 주막을 만났다. 긴가민가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시설이 아니었다. 맞나? 일단 들어갔다. 그리고 막걸리와 파전을 시켰다.










그 때의 그 막걸리가 아니었다


나는 담배와 술을 안 한다. 그 옛날 지리산 막걸리가 맞나 싶어 한 모금 맛을 봤다. 집사람도 나도 그 때의 지리산 막걸리가 아니라는데 동의를 했다. 사카리와 탄산을 섞은 막걸리 공장에서 만든 막걸리였다. 그 때 마신 막걸리는 집에서 담은 술이라고 했다. 서울장수 막걸리보다 못 했다. 구절초를 넣고 만든 식혜는 먹을 만했다.




before dark


문제는 주막에서 나와 걷는데 날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금계리까지 갈 길은 아직 까마득한데 해는 지고 있고, 그야말로 before dark였다. 나는 걸음이 빠르지만 집사람은 걸음이 늦다. 동구재를 넘기 전 개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집을 지나치면서 본 풍경 하나. 길가에 짓이겨진 흙이 수상했다. 엇박자로 이리저리 파헤쳐져 있는 모양새가 멧돼지들이 몸을 비비고 간 장소처럼 보였다. 아차 싶었다. 이곳 지리산에는 곰도 있고, 멧돼지도 있다. 갈길은 까마득한데, 해는 지고 있고.


3코스를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중간에 주워 만든 나무 지팡이뿐이었다. 이 깊은 산 속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곱다시 당하는 수밖에. 나는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운동실력이라고는 1도 없는 집사람은 도망은 꿈도 못 꾼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둘레길 위에 밝은 달이 그나마 산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하나 이상한 것은 그 많은 별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서울은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이 안 보인다고 했는데, 불이 없는 캄캄한 지리산에도 별은 없었다. 어린 시절 여름밤 마당의 멍석에서 바라보았던 그 찬란한 별들은 도대체 어디로 소풍을 가버렸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두운 3코스를 걸어 창원마을까지 어떻게 내려갔는지 모른다. 창원마을에서 만난 이정비. 금계리로 가는 둘레길은 오른쪽이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동네를 끼고 있고, 둘레길 쪽의 길은 깜깜했다. 만약 마을주민을 만나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깜깜한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불이 켜져 있는 집 마루에 할머니가 콩을 손질하고 있었다.


"저 할머니에게 금계리 가는 길을 물어보자, "

'그래요."


라고 다가가는데 담장 안에서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계리 가시려고요?"

"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른쪽은 산 속이라 지금 이 시간에 걷기에는 위험합니다."

"네."

"그쪽으로 가면 50분 걸리고, 이쪽 마을 길로 가시면 30분 정도 걸립니다."

"네."


젊은 청년이 나와 마을입구까지 길을 안내해주었다.


"저 밑 도로를 따라가시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내려가 도로를 쭉 따라가면 금계리가 나옵니다. "

"고맙습니다."


생각해보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동구재에서 창원마을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곰보다 더 무서운 게 멧돼지다. 곰은 머리라도 있지만 멧돼지라는 놈들은 머리가 아예 없다. 오로지 직진밖에 없다. 들이박고, 물어뜯는 것밖에 모른다.


"혹시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분들은 참고를 하십시오. 날이 어두운 밤에는 3코스를 걷지 마십시오. 그리고 동구재를 넘어왔다 해도 창원마을에서 둘레길 코스로는 걷지 마시고 그냥 마을로 내려가십시오. 산 속 둘레길을 가면 맷돼지를 만날 확률이 있습니다. 멧돼지는 인간을 먹이나 적으로 보지 귀한 생명체로 보지는 않습니다. "

 



금계리의 아침


엣날 민박을 했던 할머니집을 찾아가려니 시간이 너무 늦어 있었다. 그리고 성수기가 아니라 손님을 안 받을지도 모른다. 도로가에 있는 민박집에서 일박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그 여름에 올라간 칠선계곡으로 갔다. 물은 맑았고, 바람은 깨끗했다. 칠선 계곡에서도 아침을 해결하지 못했다.










함양시장 안 보리밥 식당


금계리에서 버스를 타고 함양읍에 왔다. 시골 길과 시골 버스. 나는 낯선 시골 풍경을 좋아한다. 드문드문 서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정겨운 목소리. 그렇게 구비구비 가다보면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그리고 버스의 마지막 종점인 읍에 가면 시장이 있을 것이다. 시장 안에는 분명 맛집이 있다. 있었다. 나는 보리밥을 집사람은 청국장을 시켰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이 있었다. 전날 밤 민박집에서 서울에서 삶아온 고구마와 감자로 저녁을 대신했다. 배를 채우고 나와 걷는데 호떡장수가 보였다. 하나에 천원이 아니고 3개에 2천원이었다. 호떡 세 개를 나누어 먹었더니 배가 빵빵했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가느냐?

서울 서초동으로 가나, 아니면 다른 둘레길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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