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네이버 블로그에(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아라)그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다음날 서귀포 우생당에 갔다. 신간 쪽에도 없었고 검색을 해도 없었다. 저녁에 노트북으로 쿠팡을 통해 책을 주문했다. 도착 날짜는 토요일. 그런데 목요일 아침에 책이 배달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금요일은 올레길을 걸었고, 토요일은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세 시간을 읽었다. 그러니까 이틀 만에 350쪽짜리 책을 다 읽었다. 근래 보기 드문 일이다. 요즘은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이 책은 술이 넘어가듯 술술 읽혔다. 무협지모양 흡인력이 대단했다. 원래 저자의 블로그 글이 그러하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도전을 하는 자와 포기하는 자. 도전을 하는 자는 나이와 주변의 환경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관도 없다.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그 어떤 일이든 도전을 한다.
또 하나, 행복이다. 행복은 무엇일까? 그리고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될 때 행복은 찾아온다. 비록 그 행복 속에 어려움과 두려움과 쓴맛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그것들이 녹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자전거 무게 20Kg, 짐 무게 60Kg, 몸무게 70Kg. 전체무게가 150K인 자전거를 끌고 사내는 대한민국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간다. 그리고 중국 텐진에서 긴 여행의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중국 텐진에서 시작한 여행은 동남아시아와 유라시아를 거쳐 남아공의 케이프타운까지 600일간 30, 000Km의 대기록을 남기고 마침표를 찍는다.
2023년 2월 4일의 나는 도서관과 동네 커피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라는 책 속에 이틀 동안 빠져 지냈다. 짧게는 40Km에서 많게는 100Km씩 타는 자전거 여행에 어찌 즐거움만 있으랴. 타는 목마름도 있고, 허리를 접게 만드는 배고픔도 있고, 드러누우면 금방 드렁드렁 코를 골면서 잘 정도로 피곤에 젖은 몸으로 바이두가 가리키는 목적지를 향해 자전거를 끌거나 페달을 밟곤 했다. 말이 쉬워 자전거 여행이지 그 옛날 패기 하나만 가지고 무전여행을 한 6, 70년대 젊은이들의 모험을 보는 듯했다.
길에서 그리고 삔관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저자는 여행은 타지에서 타인들과의 만남이다. 라고 했다. 그 말은 모든 게 낯설다. 자전거 길이 처음이듯이 만나는 사람들 또한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그의 자전거 여행은 우리가 사는 인생사의 축소판이다.
1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내 시선을 끈 주인공은 2015년 5월 7일 길에서 만나 7월 3일까지 동행을 한 구군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26세의 구군은 도덕적으로는 완벽한 젊은이다. 정신도 맑고, 의협심도 있고, 배려와 희생정신이 몸에 밴 청년이다. 밤에 잘 때 팬티를 벗고 자는 것(습관일까 문화일까)하나만 이상할 뿐이지 나머지는 모든 게 바를 정자의 청년이었다.
나는 1권이 끝나는 그 날까지 구군의 뒷소식이 궁금했다. 56일간 동행을 한 그가 아닌가. 비록 그와 헤어지고 얼마 후 핸드폰을 분실한 사건이 일어난다. 핸드폰을 새로 사 어느 정도 정보를 복원시켰다고는 하지만 구군의 기록은 없었다. 그는 홍콩이 목적지라고 했다. 아마 홍콩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를 만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식을 문자로 보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1권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그로부터 소식은 없었다.
나와 동년배인 저자는 여러모로 나와는 다르다. 몸이 튼튼하고, 수년간 산악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그의 다리는 안 보아도 돌덩어리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가끔씩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편의점에서 쉴 때 만나는 자전거 팀들. 하나같이 다리가 무쇠다리였다. 그는 중국에서 자전거만 타는 게 아니라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만나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곤 했다. 힘이 없거나 무쇠다리가 아니면 80Kg이나 나가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지 못 한다. 그런 고행 끝에 중국여행은 끝이 나고 두 번째 여행지인 라오스로 들어간다.
우리말에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중국 텐진에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까지 30,000Km를 600여 일간 자전거로 횡단한 이 책의 저자인 장호준 씨는 자신의 삶에 적지 않은 족적을 하나 남겼다. 만약 누군가가 이 책을 잡으면 잡는 순간 그는 2023년이 아닌 2015년 조금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할 것이다. 이 여행기를 쓴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진 수컷이다. 늦게나마 박수를 보내면서 2권을 기대해본다.
♦ 출판된 책은 많이 팔려야 한다. 그래야 저자와 출판사가 힘을 얻는다. 문제는 독자층이다. 독자가 많아야 시장이 출렁인다. 이 책을 다 읽은 집사람이 참 재미있네요. 하면서 이 책이 얼마나 팔릴까요? 하고 물었다. 10만 권만 팔렸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다. 유명인들의 책도 안 읽는데... 그렇게 많이 나갈까요? 맞다. 요즈음 추세가 책을 안 읽는다. 특히 MZ세대들은 더하다. 그들은 책이 아닌 핸드폰과 유튜브에 꽃혀 있다. 나는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 MZ세대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속에 진한 인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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