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올레길 순례

오주관 2020. 3. 11. 10:27


올레길을 걸으며 비우고 채우기


명상과 올레길 걷기가 내 주제다. 명상은 내 마음에 평화를 주고 있고, 걷기는 내 몸을 단련시키고 있다, 아침 11시에 집을 나와 오후 5시까지 올레길을 걷는 게 요즘 하루 일과다. 배낭에 통밀빵 하나, 커피, 물, 그리고 책 한 권과 노트가 전부다. 집사람은 나를 '걷띠' 라고 한다. 요즘 누가 걷나? 이곳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보면 대부분 렌트카를 타고 다니지 걷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간혹 올레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부부, 청년들을 만나면 그냥 반갑다. 사연 하나씩을 가지고 온 사람일 것이다. 


렌트카를 탄 사람들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것이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사색을 만날 것이다. 나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내 안에 저장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중이다. 아깝지만 버려야 한다. 아니, 아깝지 않다. 버려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버려야 새로운 세상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우고 채우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진 채 순례길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5일 10코스를 걸은 날 제주의 바람을 실감했다. 송악산에서 모슬포를 가는 그 길은 허허벌판이었다. 추웠고, 바람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 얼어죽는 줄 알았다. 모자가 내 머리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입은 옷이 강한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내가 죽지 않고 무사히 그 벌판을 빠져 나온 것은, 내 몸이 추위와 바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힘은 바로 채식이었다. 채식의 그 신비로움 때문에 사선을 건너올 수 있었다. 추위 그 끝에 만난 숲 속의 쉼터. 그 곳에는 강력한 모슬포의 바람은 없었다. 이상하게 해변인데도 불구하고 그 곳 숲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햇빛은 따뜻했고, 쉼터의 의자는 언 내 몸을 데워주었다. 바람, 돌, 그리고 여자. 여자는 몰라도 바람과 돌은 실감하는 나날이다. 그 덕에 내 다리는 더 튼튼해졌고, 내 몸무게는 줄고 줄어 이제 61Kg이다. 20대의 날씬한 몸매가 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