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걸으면서 사색을 한다

오주관 2021. 4. 29. 15:02

 

 

 

 

 

 

 

 

 

 

 

 

 

 

 

 

 

 

 

 

4코스, 3코스, 다시 7코스를 걷다

 

이곳 제주도에 와 정말 원없이 걸었고 걷고 있다. 작년 2020년에 3250Km를 걸은 나는 2021년이 시작되면서 다시 올레길을 걷고 있다. 걷고, 읽고, 운동하고, 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걷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못 걸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걸을 수 있어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4코스 시작지점인 표선에서 남원까지 19Km, 그리고 3코스인 성산 온평리 바닷가에서 남원까지 14Km. 그리고 7코스의 20Km.

 

아침에 집을 나오기 전 영어공부. 한 시간 동안 내 혀는 버터 속에 풍덩 빠진 생쥐꼴이다. 스타피. 노노, 스따핏, 하고 집사람이 발음을 교정해준다. 하나도 안 들리던 영어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망치로 내리치면 깨질 것 같았던 내 혀가 아침마다 버터를 발라 그런지 많이 부드러워졌다. 계속 끝까지 가보자. 영어야, 나하고 놀자! 

 

아침 8시 30분에 가방을 메고 오일장에 가 찰토마토, 시금치, 양파, 깻잎짱아찌, 김치, 깻잎, 두부 한 모를 샀다. 가고 오는데 4Km. 오늘은 올레길 대신 도서관에 가자. 가서 내가 만든 홈페이지 속의 문장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자. 메인 이미지 속의 문장을 구글번역기로 옮겨놓고 복도에 나가 팔굽혀펴기 100번을 하고 들어왔다. 

 

3코스를 걷던 그 날 만난 사내. 서울에서 왔다고 한 그 사내와 30분 정도 같이 걸었다. 새벽에 나와 2코스를 걷고 이곳 3코스에 왔다고 한 사내는 계속 핸드폰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요즘 사진을 잘 안 찍는다. 걸으면서 사내가 물었다. "고향이 경상도이시지요?" 맞습니다. 저도 4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지만 고향인 마산 사투리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내는 직장에서 은퇴를 했고, 올해 환갑이라고 했다. 

 

코스크를 한 사내가 겁없이 내 옆에 너무 붙어 걷고 있다. 집사람을 생각했고, 그리고 아이들을 생각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밀착해서 걸은 게 처음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사람 친구도 제주도에 왔다고 하면서 만나자고 전화가 오면 나가지 마라고 한다. 시절이 그렇다. 친정에도 안 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만나자, 라고 하고 있다. 코스크를 한 사내가 너무 옆에 붙어 걷는다. 나는 내 특기를 살려 내뺀다. 눈치를 챘는지 "선생님, 걸음이 빠르시네요. 앞에 가십시오, 저는 뒤에서 걷겠습니다." "네, 앞에 가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1인칭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고, 3인칭을 데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사내는 1인칭이었다. 반 보만 앞에 가도 어지럽다고 했다. 내가 이 세상과 섞이지 못 하는 고질병이 바로 거기에 있다. 창조와 상상은 무리들 속에 있지 않다. 탈에 있다. 텅 빈 그 공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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