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오르다
어제 9월 19일 일요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 나는 배낭에 바람막이 옷과 물 두 병, 점심으로 먹을 빵 하나를 넣고 집을 나왔다. 달달한 믹서커피를 넣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어디에도 자판기는 없었다. 집사람은 토요일 아침 2년만에 어머니를 뵈려 서울에 올라갔다. 나하고 2차 접종을 마친지 4주가 되었고, 장모님도 이미 2차접종을 마친 상태라 올라가보라고 했다. 나는 이 기회에 한라산에 올라갈 생각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걸음이 느린 당신하고 둘이 오르기에는 벅차고.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두 곳이다. 성판악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제주에서 오르는 관음사이다. 관음사는 5Km 정도이고, 이곳 성판악에서 한라산까지는 10Km 정도 된다. 관음사는 거리는 짧아도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곳 성판악은 거리는 길어도 관음사 보다는 낫다고 한다. 걸어보니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 10Km 정도의 등산로에 8Km 정도가 돌밭이었다. 튼튼한 관절도 뿔이 나고 상하기 십상이다. 정신일도를 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어제 내려가던 아가씨 일행 중 하나가 넘어져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다가갔다. 다행히 다리와 팔은 이상 무였다. 내가 말했다. "올라갈 때는 괜찮아도, 내려올 때, 이런 돌밭에서는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정신일도를 해서 내려가야 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스틱 두 개를 쥔 중년 여인도 넘어졌다. 옆에 딸이 있어 가지는 않았다.
이곳 한라산은 국립공원이다. 한라산 입구부터 정상까지 데크를 설치해야 한다. 돌밭은 그냥 돌밭이 아니다. 관절이 받는 하중이 엄청나다. 아니면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 설치한다고 동, 식물이 다치고 훼손되고 고사되는 일은 없다. 스위스를 보라. 우리보다 환경에 있어서는 갑이다. 그런 스위스의 명산에는 기차가 가고,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다. 그럼 누가 운영을 하나? 우리나라 민속촌과 설악산 권금산정의 케이블카, 그리고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를 하면 운영은 도가 하면 된다. 민속촌은 경기도가, 설악산은 강원도가 운영을 해 거둔 수익을 도정에 쓰면 된다. 문제는 권력을 등에 엎고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다시는 권력형 업체들이 못 들어오게 제도적으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어쨌든 한라산은 한번은 올라도 두번은 오를 게 못 된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 아닌가? 지쳐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모노레일이 짐을 싣고 털털털 올라가고 있었다. "기사아저씨, 좀 태워줄 수 있습니까?" 운전기사가 말했다. "임금님 할배가 와도 안 태워줍니다."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물은 이미 다 마신 뒤였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컵라면과 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고, 더러는 과일을 먹고 있었다. 나는 쫄쫄 굶었다. 가지고 온 빵을 먹으려니 물이 있어야 먹지. 달달한 믹서커피는커녕 사탕이나 초콜렛 하나 없었다. 내 앞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젊은 커플을 보니 삼다수 큰 병이 있었다. "젊은이, 물 좀 얻어먹을 수 있겠나?" "아 네." 내가 가지고 있는 빈 통에 가득 채워주었다. "고맙습니다."
어제 아침 성판악에 도착해 입구가 가니 관리소 직원이 "예약하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안 했습니다." "그럼 못 들어갑니다." 그 생각을 못 했다. 하루에 800명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직원이 말했다. "8시 30분이면 마감이 되니 그 때 예약을 하고 안 오신 분들이 계시면 예약이 가능합니다." 기다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려니 섭섭했다. 예약창을 열어놓고 계속 예약을 눌렀다. 8시 50분에 예약이 이루어졌다. 보통 성판악에서는 아침 5시 30분부터 7시까지 입장을 해야 한라산정상에 올라 여유를 가지고 하산을 할 수가 있다. 나는 1시간 50분이 늦어 있었다.
혼자라 그냥 걸었다. 돌밭도 걷고, 데크도 걷고, 멍석도 걸었다. 속밭에는 패션모델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스키니지 차림들이 대부분이었다. 등산복이 맥을 못 출 수밖에. 혁신이 답이다. 그들은 거기가 종점이다. 나는 그냥 패스했다. 10이면 속밭이 종점인 사람들이 50% 정도 되고, 남은 20%는 사람오름을 오르는 땀꾼이고, 나머지 한라산을 오르는 30%는 묵묵히 팀들이다.
진달래대피소에서부터 지옥길이 열렸다. 평지의 1Km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경사가 심한 산길은 발걸음이 무거워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올레길 10Km 정도를 걷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등산로의 10Km는 배로 걸린다. 먹을 거라고는 물밖에 없었다. 정상 500m를 앞두고 포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준비가 부족했다. 당도 떨어졌고, 눈도 풀려 있었고, 배도 고팠다. 물병의 물은 한 모금밖에 없었다. 앞에 가는 사람이나 뒤에 오는 사람들 모두 기진맥진이었다. 열걸음 걷고는 숨을 날숨달숨하면서 쉬고, 열걸음 걷고는 헉헉 숨을 몰아쉬고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오르고 있었다. 눈에 초점이 풀린 중년여인도 있었다. 내가 여기를 왜 왔나? 라는 표정이었다. 용암이 굳어 생긴 돌밭이 사람을 어머무시하게 지치게 만들었다. 입술이 쩍쩍 갈라졌다.
포기를 물리친 것은 오늘이 아니면 언제 내가 한라산을 오르나? 마지막으로 내 정신을 점검해보고 싶었다. 직원이 말했다. 한라산을 오르다 1년에 5명 정도 목숨을 잃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오르십시오. 이상이 있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하산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을 점검했다. 심장 이상 무, 뇌혈관 이상 무, 그래 힘이 들더라도 인내하면서 오르자. 인내는 내 주특기가 아닌가.
정상까지 4시간, 하산은 3시간 걸렸다. 합이 7시간. 올라갈 때 무리를 했다. 한 시간을 앞당겨 올라갔다. 그러니 얼이 빠질 수밖에. 7시간이면 두 시간을 단축했다. 집에 와 시원한 물부터 두 컵 마셨고, 달달한 믹서커피를 마셨고, 그리고 땀투성이인 몸을 씻고는 누워 텔레비전 프로 하나가 끝날 때까지 잤다. 어제 나는 다시 한번 교훈을 얻었다.
1. 철저히 준비를 할 것
2.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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