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사라진 그녀

오주관 2023. 5. 2. 16:28

 

 

비를 타고 온 그녀

 

429일 토요일 아침 11시, 동네 콤포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창밖은 세우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와 기압 탓일까? 실내는 마치 산사에 온 듯 고즈넉했다. 커피 잔을 내려놓자 가느다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김을 바라보다 조금 전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의 티스토리는 전과 동이다. 오늘 아침 주인 없는 그녀의 방에서 글을 몇 편 읽었다. 온기는 없지만 글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마치 그녀를 보는 듯했다. 그녀의 글은 커피 맛처럼 구수한 맛과 쓴맛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왜 블로그에서 사라졌을까? 왜 활동을 하지 않을까? 그녀의 마지막 글을 보니 2020831일로 되어 있다. 나는 오늘 아침 그녀의 글 다섯 편을 읽었다. 그리고 늦게나마 좋아요를 눌렀다. 내가 누른 것은 글이 좋아서, 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근황을 알고 싶어서, 였다. 혹시 보고 흔적을 남길까 싶어서 누른 것이다.

 

그녀는 블로그에서 활동할 때 자주 만나는 블친들이 있었다. 그들은 친밀했다. 가끔씩 만나 여행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때론 술잔도 나누곤 하는 사이였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늘 홀수였다. 블로그에서 친교를 맺은 사이지만 나는 한 번도 그녀를 만난 일이 없었다. 이십 년 가까이 블친으로 지낸 것은 순전히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다. 그녀는 그 때 내가 사용한 내 닉을 참 궁금해했다. 알려줬나, 안 알려줬나?

 

티스토리로 바뀌기 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많은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바뀌면서 사람들도 사라져버렸다. 즐겨찾기를 해놓지 않은 한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 핸드폰과 노트북에는 세 사람의 글은 볼 수가 있다.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그녀가 오늘 아침 빛처럼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집은 사람이 살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은 폐가가 된다. 사람의 온기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지금 그녀의 집이 그렇다. 글은 있는데, 사람은 없다. 집은 있는데, 주인은 없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페이스북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그녀의 닉네임을 넣어 검색을 했지만 없었다. 긴 글을 좋아하는 그녀가 페이스북으로 이사를 갔다? 상상이 안 되었다. 나는 페이스북이 불편했다.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정치적인 글을 보면 사생결단이다. 우군이 아니면 적이다. 배려와 이해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나는 그게 싫어 블로그로 다시 돌아왔다. 나이 때문인지 몰라도 목소리로 싸우는 투쟁적인 글은 싫다. 그런데 그 블로그가 문을 닫고 티스토리로 바뀌면서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았다고 그 사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글은 그 사람이다.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글을 읽으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성정, 인격, 기질, 그리고 성향 등등을.

 

나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다. 그녀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 그녀는 서울 봉천동에서 살다 전원생활을 한다고 양평에 집을 지어 이사를 했고, 그리고 양평에서 다시 용인의 아파트를 사 이사를 했다. 그녀의 블로그 글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있지만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사를 가르쳤고, 그리고 강단이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녀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어느 사람의 증언이었다. 미국 유학시절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그녀의 블로그 글을 통해 알고 있었다. 대구 출신이고 나이는 70에서 80 그 사이일 것이다.

 

그래, 이제, 우리도 갈 때가 되었지

 

라는 그녀의 글이 있다. 그 글의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건강해 보이던 너에게 조문, 조의라니, 그런 말조차 입에 올리고 싶지 않구나. 유난히 아침 일찍 니가 전화했던 그 날, 우리 많은 얘기 나누고 편안한 노후생활에 대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이번엔 니가 밥 낼 차례라고, 이번엔 꼭 오라고, 니가 그랬잖아? .그래 놓고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다니... 이게 뭐야? 지금 나는 도무지, 생사가 하나인지 둘인지 알 수가 없어. 왜 그렇게 갑자기 갈라지는 거야?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어제, 고딩 소모임 단톡방에 끄적거림.

 

백세시대인 요즘 설마, 갔을 리는 없을 것이다.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블로그에 글 한 편 올리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작년 12월 초 서울에 갔을 때, 4호선 지하철 안에서 본 그 여인이 그녀일까? 모습은 비슷한데, 행동은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는 쉴 새 없이 허공에 삿대질을 하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닐 것이다. 아니다. 다른 사람일 것이다. 하면서도 계속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다 지하철이 창동역에 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나 내리더니 황망히 계단 아래로 사라져갔다.

 

책을 무지막지 읽고 머리를 많이 쓴 사람도 치매가 온다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아닐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왕성하게 글을 썼었는데.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집주소가 바뀐 그녀의 집. 그녀는 계속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녀의 방은 3년 가깝게 불이 꺼진 채 캄캄하다. 어디에 존재를 묻고 있을까? 사라진 그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중학생들 수학 보충수업이 끝났는지 문이 열리면서 집사람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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