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어느 토요일,
우리 두 사람은 올레 7코스 법환포구를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집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걷고 있는 게 선생님 맞으시지요?"
"네, 맞습니다."
"네. 제가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다 선생님을 보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네."
"선생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네, 선생님도 안전 운전하시고 즐겁게 보내세요."
7월 초,
자구리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는 그 선생님은 그즈음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다녔다.
하지만 낫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동료 선생님이 그 선생님의 뒷목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 목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서귀의료원에 한 번 가보세요?"
그 날 서귀의료원에 갔지만 원인을 찾지 못 했다.
혈압도 떨어져 있었다.
"제대병원에 한번 가보십시오."
그제서야 이상하다는 걸 느낀 그 선생님은
자신이 타고온 제너시스를 병원에 두고 119를 불러 제대병원으로 갔다.
그 날부터
그 선생님은 중환자실에 격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SFTS 검사를 통해 확진(6일) 판정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평소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날도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선생님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고 한다.
7월 11일,
원양어선 선장인 남편이 급거 귀국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그 선생님은 연명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런 부인을 본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선생님은 남편이 올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정이었다.
보내주기로 했다.
12일,
그 선생님과 절친인 논술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선생님, 김선생님 돌아가셨습니다."
착하고 선하고 맑고 밝은
그 선생님은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다복한 가정의 부인이자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나이는 50도 못 채운 49세였다.
6월에는 내 메제인 신서방을 보냈다.
그리고 7월에는 집사람의 동료인 그 선생님이 떠나갔다.
장례식 하루 전 목요일 밤,
그 선생님의 남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곡을 했다고 한다.
집사람과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선생님의 남편은 오죽했을까?
일주일 내내 우리 두 사람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래저래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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