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월요일
탄생은 시간이 있지만 죽음은 시간이 없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메고 중산간도로를 1시간 정도 걸어 콤포즈에 도착해 핸드폰을 켜니 집사람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내 전화기는 무음이라 와도 받지 못한다. 포항의 막내누이가 나에게 전화를 여러 번 한 모양이다. 내가 안 받으니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연락 좀 주세요,
응급상황입니다.
부산의 신서방이...."
부산의 신서방이? 아차 싶었다. 나는 그제야 포항의 막내에게 전화를 했다. 누이가 말했다.
"부산의 형부가 넘어져 뇌를 크게 다쳐 지금 병원에 있다. 나는 지금 부산으로 간다."
6월 13일 화요일
"오빠야, 왜 폰을 안 받노, 형부 돌아가셨다."
그 시간의 나는 해녀박물관에서 종달리의 21코스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너무 황망해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태를 넘어섰구나. 어디를 가야 내 마음이 바로 설까? 신서방이 가다니? 상상이 안 되었다. 나는 아침에 포항의 이서방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이서방이 말했다.
"형님이 거래처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놀다 넘어져 뇌를 다쳤는데 아마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습니다. 119가 부산대 병원과 동아대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거부를 당해 개인 병원으로 갔는데, 좋은 소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6월 14일 수요일
멘붕이 왔다. 내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이곳 제주도에 오고부터 신서방을 만나지 못했다. 추석이나 설 때 겨우 안부 문자와 새해 덕담 정도를 나누곤 했다. 나와 마지막 나눈 문자가 2022년 12월 31일과 2023년 1월 1일 새해 일요일이었다.
"형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신서방, 계묘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아라."
한라산 설경사진을 보내주었더니 답이 왔다.
"네, 한라산 설경이 아름답네요."
이게 나와 신서방이 나눈 마지막 덕담이자 문자였다.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한 나는 경전철과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금련산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로 올라가 병원에 도착하니 프랑스에 살고 있는 큰 조카 내외와 아이들, 서울의 둘째 조카 내외가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조문을 마친 내가 두 조카에게 말했다.
"외삼촌도 너무 슬프다. 이제 하늘 아래 어디를 가야 너거 아버지를 만나노? 너거 아부지는 정말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너거 아부지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 백세시대에 무엇이 급해 이렇게 황망하게 가노."
"그러게 말입니다."
"아부지도 그런 자신을 보면 참 슬플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행복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식인 너거 둘을 엄마와 힘을 합해 훌륭하게 키웠잖아."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큰 조카는 그 다음 해 캐리어를 끌고 프랑스로 날아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의 대기업 지사에 취직을 해 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남자인 크리스토퍼를 만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낳아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둘째 딸은 법대를 나와 300명 뽑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금 남편과 둘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외삼촌 말씀을 들으니 정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세상 어디를 보아도 매제 같은 사람은 없다. 천성이 너무 착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나누어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다. 설이나 명절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자기 큰 형님집에 올라올 때 한 번도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자기 제과회사에서 취급하는 아몬드나 땅콩 등은 물론이고 고향의 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박스에 바리바리 담아 와 우리 남매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상계동 형님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하는 일은 밤에 술 한잔 마시는 그 일이었다.
영안실에 온 조문객들이 시간이 되면 썰물 빠져 나가 듯이 나가곤 했다. 포항에서 온 사촌 형님과 동생들이 떠나고 나니 적막했다. 나는 영안실을 빠져 나와 병원주변을 걸었다. 병원이 광안리 매제 집과 가까웠다. 배가 고팠다. 사촌 동생이 술을 마시면서 병원 밥이 너무 부실하네요 라고 했다. 내가 봐도 병원에서 제공하는 밥이 부실했다. 매제 앞의 영안실을 보니 93세의 할머니였고, 상조회사에서 나와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자장면 한 그릇과 커피 두 잔으로 수요일 밤을 지켰다.
목요일 아침 6시에 발인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누님, 형님과 형수, 그리고 조카들이 출근 때문에 전부 올라갔다. 나와 포항 이서방 내외만 남아 부산영락원까지 동행했다. 화장장 속으로 사라진 신서방을 바라본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신서방 핸드폰에 이렇게 내 마음을 적어 보냈다.
"신서방, 이제 하늘 아래 어디를 가야 신서방을 만나노?
이 백세 시대에 무엇이 급해 그렇게 떠나노?
신서방,
신서방은 정말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신서방은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신서방,
동생과 힘을 합해
두 딸을 참 잘 키웠다.
애썼다.
신서방,
그곳에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매형을 만나면
우리 소식을 전해다오.
지난 70평생, 정직하게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고, 애 많이 썼다.
이제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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