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학원에서 인쇄를 한 지도 서너 장을 가지고 우리 두 사람은 길을 떠났다. 강원도가 아닌 서해로. 가 보지 않은 곳으로 가자, 라고 합의를 본 곳이 태안반도였다. 표면적으로는 봄 소풍이었지만 속 내용은 골을 씻기 위한 길 떠남이었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백탄 석탄이 되어 있었다. 그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여행이 최고다. 해서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한 서울남부 도로 위를 우리 두 사람을 태운 털터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밤이라 바깥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양재동의 현대사옥을 지나갔는가 했는데 어느새 과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목도 말라왔고 배도 허전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않고 탄 것이었다. 아니 있었다. 육포 몇 개가 있었다. 육포를 꺼내 뜯어 먹기 시작했다.
육포 두 개를 씹어 먹자 털터리는 과천 경마장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경주용 말 몇 마리에 운명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패들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내일을 기약하며 어느 포장마차의 칸델라 불빛 아래 몸을 웅크린 채 쓴 소주를 들이키고 있을 것이다. 그때 역전과 이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일은 과천 경마장에 온 모든 꾼들이 건 패가 맞아 마사회와 농수산부 일년 예산을 다 쏟아 부어야 할 이적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 생각을 하자 배가 불러왔고 미소가 저절로 피어올랐다.
‘무슨 좋은 생각 있으세요?’
‘응. 아주 기똥찬.’
‘뭔데요?’
‘내일 이곳 과천경마장에 온 사람들이 산 마권이 백 배 천 배 만 배로 걸리는 꿈.’
‘그러면 어떻게 되요?’
‘마사회 돈이 거들나지. 뿐만 아니라 마사회 돈이 모자라 농수산부 일년 예산을 다 쏟아 부어야 된다.’
‘하하하. 한쪽은 죽고 다른 한쪽은 사네요.’
‘마사회를 팔고 그것도 모자라 농수산부까지 팔아야 하는 굿판이 벌어지겠지.’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그때는 거도 전두환이 돈으로 메꾸어야지 뭐.’
‘하하하. 그쪽도 죽을상이겠네, 내일은.’
‘죽을 사람은 죽아야지. 살아서 우리 모두에게 짐이 될 인간들은…….’
발한이라는 이정비가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후 도로가 표지판에 해병기지사령부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나는 입간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성일이가 복무하고 있는 곳이구나. 경산에 있는 Y대학교를 다니다 해병대에 지원한 내 막내 누이의 아들. 그놈의 보직은 장군님 비서. 얼마 전 전화를 했을 때 며칠 안 있으면 마지막 휴가를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하면 곧 제대를 한다고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 조카 성일이의 덩치는 보통이 아니다. 185에 75킬로 나가는 튼실튼실한 해병대 사나이.
작년 봄 휴가를 나온 녀석이 밤에 누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크게 웃었다. 어느 날 장군님이 잔치 집에 가니 봉투를 가져오라고 했다. 명을 받은 놈과 또 한 놈이 책상서랍을 열고는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봉투가 나왔지만 그날 쓸 봉투가 어느 것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한자 앞에서 두 놈의 눈은 당달봉사였던 것이었다. 옆의 놈은 서울의 Y대를 다니다 온 놈이었다. 두 까막눈이 눈에 불을 켠 채 찾았지만 「축 결혼」을 찾지 못했다. 해서 얻은 결론이 한자가 다른 봉투 하나씩을 전부 가지고 가자. 지나간 그 이야기를 하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리고 며칠 후 청계천에 나가 한자 책을 하나 사 부대로 부쳐주었다. 이 책만 마스터하고 나오면 까막눈에서 탈출한다. 하루에 7자씩만 공부해라. 제대할 때까지 천오백 자 정도 되었다.
'성일이 부대가 여기네.’
‘그래요’
‘응, 화성 바닷가라고 들었는데, 이곳이네.’
‘지금은 포항에 있겠네요.’
‘응. 아마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있겠지.’
성일이의 잔영이 사라지자 나타난 서해대교.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길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짙은 안개 때문에 십 몇 중 추돌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있었다. 긴 출렁다리 위를 털터리는 시속 120킬로로 내빼고 있었다. 머릿속이 경계에 들어갔다. 간도 오그라들었다. 차가 7, 8년 정도의 중고이면 120을 빼든 140을 빼든 관계가 없는데 수명이 10년이 넘은 털터리가 겁도 없이 서해대교 위를 제트기 모양 내빼고 있었다. 아마추어가 무서운 것은 뭘 모르기 때문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겁이 없는 것이다. 털터리 뒤로 물러서는 차들을 보니 에쿠스, 체어맨, 그랜저, SM5 같은 빵빵한 차였다.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좀 살살 가라.’
‘이런 곳에서는 차의 흐름을 위해 어느 정도 빼야 해요.’
‘옆을 봐라, 에쿠스와 체어맨이 나자빠지고 있다.’
‘하하하.’
‘고속도로에서 티코가 무섭도록 빼는 건 쪽 팔려서라고 하더니 그 꼴이네.’
‘하하하.’
우리 두 사람을 태운 털터리가 밤의 어둠을 가르고 도착한 곳은 태안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태안반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다에 가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닌가. 이리저리 헤매 다니다 어느 해수욕장에 들어갔는데 밤이 깊었는지 슈퍼도 보이지 않았고 쭈꾸미 파는 술집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펜숀뿐이었다. 작전상 후퇴. 다시 기어 들어간 곳은 몽상포항구였다.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포구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술배를 채워 줄 술집이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였지만 젓가락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항구의 배들도 썰물 때문에 전부 알몸을 드러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소주도 없고 쭈꾸미도 없는 밤 포구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우리는 그곳을 철수했다. 그날 밤 태안 읍내에서 우리 두 사람이 먹은 것은 소머리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이 전부였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바다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꽃지해수욕장이었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았던 꽃지해수욕장.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동해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막무가내 갯벌에 간 우리 두 사람은 허리를 숙여 굴 사냥에 나섰다. 굴을 발견하면 돌로 굴 껍질을 깨 새끼손톱만한 굴을 맛보았다. 짭짤했다. 한참 후 방파제에 올라간 우리 두 사람은 마침내 서해 명물인 낙지를 만났다. 파라솔을 펴놓고 그곳 마을의 아주머니 두 분이 낙지와 바지락과 멍게 등등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나이가 좀 많은 아주머니를 택했다. 그리고 낙지를 선택했다. 잠시 후 토막이 난 채 나타난 낙지. 신경이 있을까. 토막 난 낙지의 다리들이 사생결단 도망을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초고추장에 낙지를 찍어 쨥쨥 씹었다. 고소했고 쫄깃쫄깃했다. 씹을 만했다. 낙지를 안주로 마신 소주 세 잔.
그날, 우리 두 사람은 서해의 꽃지해수욕장에서 곪아 있는 머릿속을 조금 청소했다. 그리고 그곳 방파제에서 서해를 먹었다.
뒷이야기- 갈 때는 서해고속도로 내려갔지만 올라올 때는 국도로 올라왔다. 해서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수원인가 화성의 좁은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우리 두 사람은 눈을 잠시 붙였다. 코까지 골면서 잤는데 사고가 일어났다. 커브 길을 돌면서 핸들을 미처 꺾지 못해 차가 도로 아래 바닥으로 굴려 떨어진 것이었다. 놀란 나는 눈을 떴다. 휴! 꿈이었다. 땀이 났고 잠시지만 식껍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식껍한 사람은 또 있었다. 어제 일요일밤 미국 LA에 살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인 탈랜트 박 아무거시. 케이비에스 방송국의 피디가 수소문 끝에 LA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다. 이웃 사람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연 그녀.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침묵. 하지만 혼비백산한 그녀는 재빨리 문을 닫는다. 피디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고, 머릿속이 하얗게 탔을 것이다. 2년 정도 생명줄이 짧아진 그녀. 정말이지 사람은 죄를 짓고는 다리를 뻗고 잘 수가 없다. 저승까지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도 숨어 살아가고 있는 전 씨 일가들이 일요일 밤을 무겁게 만들었다 200749북한산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