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을여행- 동해시

오주관 2006. 10. 21. 20:03

 

 

  

그날 일요일. 아침 8시 30분 강변터미널에서 만난 우리 두 사람. 어디로 갈까, 하고 의논을 하다가 막무가내 동해로 결정을 하고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여행은 즐겁다. 더구나 두 사람이 떠나는 여행은 더 즐겁다. 의자에 앉은 그녀와 나는 좌석을 뒤로 넘겼다. 가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고래 잡으러 떠나자. 열차 대신 고속버스.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내 옆자리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봐라, 봐라, 눈 떠라, 이야기 좀 하자.'

그때마다 눈을 떴다. 하지만 잠시 후면 다시 고개를 떨구고는 잠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눈이 말똥말똥한 나는 깊어가고 있는 가을 들판을 감상했다. 절기는 과학이다.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원색의 그 물감으로...

 

 

 

 

 

목포는 항구다. 목포만 항구가 아니다. 이곳 동해시도 항구다. 묵호라는 옛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동해시. 아담했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역사도 아담했다. 항구도 아담했다. 거리도 아담했다. 언덕 위의 집들도 아담했다.  

 

 

 

 

 살아 있는 오징어가 8마리에 만 원이었다. 횡재다, 하면서 샀다. 칼질하는데 이천 원. 어판장 앞 가게에 가 초장과 깻잎과 마늘과 대포와 커피잔을 샀다. 돌아오니 그녀가 안 보였다. 눈길을 주니 화장실로 모습을 막 감추고 있었다. 변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그녀. 기다렸다. 입은 춤을 추고 있었다. 위에서도 식도에서도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빨리 좀 넣어주십시오. 기다려. 5분이 지나도 안 나왔다. 봉지를 손에 들고 갔다.

 

'안에 있나?'

'네.'

'뭐하노, 빨리 나오너라.'

'왜요?'

'오징어 다 무린다. 빨리 나오너라.'

정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알 만하다는 표정이었다. 대포도 햇빛에 목이 타는지 몸이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변비가 사람 잡네. 한 사람은 설사 때문에 고생을 하고, 한 사람은 변비로 고생을 하고. 정말이지 궁상각치우다. 드디어 나왔다. 나는 성큼성큼 봉지를 들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 위로 내려갔다.

 

 

 

 

 

 배에 내려간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내려왔다. 처음이란다. 오징어회를 가지고 배 위에 올라온 일이.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말했다. '처음이고 말고. 아무나 이런 걸 연출 못 한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행복은 연출이고 연기다. 각본도 본인들이 쓰고. 감독과 주연배우와 엑스트라도 본인들이다, 라고 이어가려다 중지했다. 서둘러 갑판 위에 앉았다. 햇빛이 뜨거웠고 불어오고 있는 바람은 서늘했다. 그늘로 옮겨 앉은 우리는 봉지 속의 내용물을 꺼냈다. 

 

 

  

 

 

  칼질이 직업인 아주머니들. 과연 프로들이었다. 껍질을 벗겨 살을 자르는데 칼이 춤을 추었다. 프로는 아름답다, 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황홀했다.

 

 

 

 

 

   

드디어 깻잎에 오징어와 마늘을 얹고 그 위에 초장을 묻혔다. 빈 컵에 대포가 담겨졌다. '자, 한잔하자.' 건배를 하고 마셨다. 시원했다. 깻잎을 말아쥐고 입 안에 넣었다. 씹었다. 살살 녹았다. 꿀맛이었다. 다시 한잔. 다시 한 입. 서울에서의 스트레스가 저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래, 가라, 저 동해바다 한가운데로...' 

 

 

 

  

포식했다. 다 먹지 못하고 주인도 모르는 배의 갑판 위에 오징어 회를 남겨놓고 동해바다를 떠나왔다.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다. 설사가 설사를 만나 발광을 해대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씻은 물 때문이라고 그녀는 진단을 했다. 나는 과하게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정말 물 때문일까? 바닷물이라고 했다. 수돗물로 씻으면 살이 무린다고 했다. 바닷물이라면 의심이 갔다. 내항의 그 바닷물이 흐리멍텅했다. 세균 때문에 배탈이 난 것일까.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속을 말끔하게 비웠지만 설사는 계속 되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화장실로 직행했다. 벗어보니 팬티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너무 먹어 탈인 그 오징어회. 그날 동해 기행은 씁쓸했다. 출발은 좋았지만 그 끝은 아름답지 못했다. 설사는 그리고 3일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뒷이야기- 어쨌든 오랜만에 오징어회를 포식했다. 만 원에 8마리인 오징어. 입이 터지도록 먹고 먹었었다. 마치 걸신 들린 사람처럼. 서울서는 언감생심. 그래서 더 욕심을 내었는지 모른다. 갈 때 가더라도 하는 심정으로 배 터지게 먹었었다. 그 후유증은 오래 갔다. 설사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뛰곤 했다. 추석날 그 다음날에 가서야 멈춘 설사.200610월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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