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남이섬기행

오주관 2007. 3. 2. 13:55

 

 

어제 목요일 삼일절 아침.

정신이 허기가 진 우리 두 사람, 충전이 필요했다.

가자.

어디로요?

나가서 결정하자.

내 옆의 사람은 서울의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인터넷에 들어가 지명과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알고 나서 떠난다. 그 옆의 나는 그냥 떠나면서 길을 찾는다.

 

집을 나와 간 곳은 청량리.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징어 굽는 냄새였다. 되게 고소하네. 옆지기가 다가가 하나 사 왔다. 피데기를 구은 것이었다. 먹어 보니 아니었다. 냄새는 고소했는데, 먹어보니 버터냄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옆지기도 동의를 했다. 쿰쿰한 냄새까지 풍겼다. 초장부터 기분이 떨떠름했다.

 

어거적어거적 씹으면서 시간표가 붙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지 않은 곳으로 가기로 하고 역명을 살폈다. 영주이냐 안동이냐. 둘 중에 하나. 안동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럼, 영주다, 하고 시간표를 보니 그곳도 너무 멀었다.

 

결론은,

생략,

생략,

생략,

...

찾았다.

남이섬.

우리 두 사람 남이섬은 처음이었다. 

 

 

 

 

 

남이섬 정문 

 

 

 

 

배삯이 왕복 5천 원.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

비쌌다.

지자체에서 관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개인 것이라고 했다.

 

 

 

  

정문에서 섹스폰 연주를 하고 있었다.

두 곡 정도 감상했다.

힘이 드는지 얼굴이 붉으레 했다. 

 

 

 

 

건물 모형. 

 

 

 

  

안쪽으로 들어가니 무대에서 최백호 씨가 열창을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그의 노래에 빠졌다. 허스키, 시적 가사, 열창이 만들어 낸 호소력 짙은 노래. 얼굴 그 부분은 누가 보아도 시인의 얼굴을 닮아 있었는데 배꼽 밑의 옷을 보니 노숙자 비슷했다. 상의는 작았고, 바지는 꼬질꼬질했다.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만땅인데, 형식은 홀애비 신세를 못 면하고 있었다.

 

요즘 케이비에스 일 라디오에서 똑순 씨와 함께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짜리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인기가 없는지 청취률이 1프로라고 하든가... 그런데, 그래도 들으면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라고 하면서 무대 밖으로 계속 시선을 보냈다. 박상민이가 늦어서 천상 노래를 한 곡 더 불러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고 쳤다. 박수를 많이 치면 건강에 그래 좋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시 박수를 쳤다. 안 치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쳐서 건강하게 사십시오 라고 그가 말했다. 어눌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히트곡이 많습니다. 이번에 부를 곡은 70년대 노래인데 '빗 속을 뛰어요' 라는 노래입니다. 기타를 만지면서 '하, 이 새까만 후배놈이 안 나타나네.' 하고는 혼신을 다해 열창을 했다. 노래를 마쳤지만 박상민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윤시내 씨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제목은 모르지만 어쨌든 히트곡이 분명했다.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요즘 방송에서 방방 뛰고 있는 날라리 가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울림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가수이다.  

 

 

 

 

계속해서 열창을 했다.

  

 

 

  

드디어 무대 위에 오른 박상민. 그 역시 열창을 했다. 쇼맨쉽과 프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가수였다. 대중들을 끌어들일 줄 아는 테크닉과 기술도 겸하고 있었다. 멋을 낼 줄 아는 젊은이었고. 그나 저나 최백호 씨와 복장이 너무 대조적이었다. 최백호 씨가 가슴으로 노래하는 가수라면, 젊은 가수인 박상민은 몸으로 노래하는 가수이다. 

  

 

 

   

앞의 선배님이 7곡을 부르셨다고요? 그럼 쫄따구인 저는 선배님보다 더 많이 부를 수는 없고, 저도 7곡만 부르겠습니다. 오늘은 삼일절이고 해서 팝송은 안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노래도 안 부르겠습니다. 날인 날인 만큼 우리 노래만 부르겠습니다. 좋습니까? 예, 하고 사람들이 말하자, 좋습니다, 한번 놀아봅시다, 하고는 열창을 했는데 아는 노래가 별로 없었다. 최백호 씨 노래는 다 아는데... 내가 늙은 것이었다.

 

패기와 박력과 열창과 음악의 멋과 폼생폼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젊은 가수를 뒤로 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막걸리집. 두 집을 거쳐 셋째집에 가 의자에 앉았는데, 속은 것이었다. 남이섬 마크가 붙은 막걸리인데 속 내용은 이동 막걸리였다. 가짜 막걸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이 없는 막걸리가 있다면 그 술은 이동 막걸리다. 이동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다. 퉤퉤퉤! 정말이지 옛날 술도가에서 만든 뻑뻑하고 컬컬한 그 막걸리가 그립다. 감자전도 순 싸구려였고. 이 동네 역시 '푸짐' 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니 알면서도 눈을 감고 사는 게 틀림없다. 푸짐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먹을 만큼만 줘봐라. 젓가락으로 두 번 집으니 없었다. 떠갈, 하는데 뒷골이 땡겨온다. 그래, 혈압 때문에 참는다. 그러고는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하고 세 번 중얼중얼 되뇌었다. 소세지도 상동이었다.

  

 

 

 

 옆지기 

 

 

남이섬은 면적이 40만 평 정도라고 되어 있었다. 다 돌아보지 않았다. 가짜 술을 마시고 기분이 다운되는 바람에 그냥 퇴장했다. 나오면서 이 섬의 주인공인 남이장군 묘를 찾았다. 원래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에 있다. 이곳의 묘는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는 가짜 묘다. 남이 장군. 17세에 무관으로 장원급제를 하여 세조 13년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다. 그리고 28세에 병조판서에 오른다. 조선 건국 이래 무과 출신이 병조판서에 오른 최초의 사람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 또한 호방한 남이장군. 너무 출중하면 쉬 부러지는 법. 아닌 게 아니라 예종 즉위 후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마침내 그를 포위한다. 그가 쓴 한시 두 편이 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가 쓴 한 시 일부분. 男兒二十未平國後世唯稱丈夫.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문제의 단어. 미평국을 미득국으로 바꾸어서 남이가 역모를 뀌하고 있다고 모함을 한 것이었다. 그를 시기한 원로들 중에 유자광이 중심에 서 있었다. 유자광에 의해 그는 결국 참수를 당하게 된다.

 

정말 독하게 일찍 출세했네.

17세에 무관으로 장원급제를 하고 20대에 병조판서라...

그리고 28세 꽃다운 나이에 막을 내렸네.

쭈쭈바나 빨면서 자신들의 희노애락을 중얼거리며 골목을 오르내릴 그 나이에,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 사르다 그를 시기한 무리들의 모함에 의해 삶을 마감했다.

큰 나무는 떡잎만 보아도 안다고 했다.

장군의 무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불에 태운 돼지고기와 삼겹살을 아구아구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남이장군의 삶보다는 '욘샤마' 를 떠올리며 부지런히 술잔을 비워 나가고 있었다.

 

'괴기가 좀 질기네'

'이 사람들아, 질긴 지 안 질긴 지 나에게 줘봐라, 먹어보고 말할게...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질기기는, 나는 맛만 좋은데?'

라고 하자 그 맞은편에서

'아, 술 맛 좋다!'

하고 흐뭇해 하는 것이었다.

술 맛 좋은 것 좋아한다. 

가짜 술인 줄도 모르면서...

그리고 뭐, 고기가 질겨?

이 사람들아, 질겨도 마 그냥 묵아라.

그게 그대들의 한계가 아닌가.   

 

 

 

 

남이섬을 뒤로 하고 나왔다. 

 

 

 

 

내 시선을 잡아 끈 곳.

나중에 한번 도전해 보아야지.

지금은 안 된다.

심장이 흔들려서. 

 

 

 

 

젊었을 때는 높은 곳에서 잘도 뛰어 내리곤 했는데...

늙어서 그러나.

모르지 돈을 한보따리 준다고 하면 눈 딱 감고 뛰어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공으로는 절대 안 뛰어 내린다.

아차하면 공중에서 눈을 감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없다. 택시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슈퍼에 가 시간표를 보니 두 시간 후에 있다. 택시들만 신이 나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지자체에서 택시회사 돈 벌어 먹으라고 어떻게 해 준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이섬은 강원도이고 그 둘레의 변방은 경기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강원도 때문에 경기도가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꼴이다. 지금까지는 '욘샤마' 가 남이섬을 먹여 살리지만 언젠가는 그 바람이 꺼질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남이섬에 차가운 칼바람이 불 것이다. 끝으로 장사꾼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한번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 양심에 반하는 장사를 하면 그 수명은 짧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살아 생전 다시 저 곳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뒷이야기- 오나 가나 사람 신경을 괴롭히는 것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왕지사 할 바에야 자신의 브랜드로 하면 더 좋을 텐데. 막걸리를 하나 팔아도 진짜 옛날 막걸리를 빚어서 내놓고, 파전이나 돼지고기를 구워 팔 때 내용을 좀 충실하게 만들어서 내놓으면 파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먹는 사람들 역시 기분이 좋지 않겠나. 눈만 속이려고 꾀를 내어서야 되겠는가. 길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길게... 200731남이섬을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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