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등사기행

오주관 2007. 6. 9. 19:36

  

 

집을 나서자 햇볕이 강렬했다. 모자가 필요했다. 집에 두고 온 선글라스가 생각났다. 평소에 거리에 나가면 눈이 부셔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안경도 필요하지만 선글라스도 필요했다. 연예인이나 알건달들만 끼고 다니는 줄 생각하고 있었던 선글라스를 어느 날 종묘 앞을 지나가다 구했다. 선글라스가 말했다.


‘일본 과학자도 못 만들고 독일 과학자도 못 만들고, 미국 우주 나사에서 만든 편광 선글라스입니다.’


귀가 솔깃했다. 일본 과학자도 못 만들고 독일 과학자도 못 만든 선글라스라고? 하 싶었다. 결정적으로 내 몸을 잡아끈 것은 백화점에서 7만 원에 파는 걸 여기서는 단돈 만 원에 판다고 했다. 그냥 묻지도 않고 샀다. 조금 헐렁하기는 했지만 눈이 시원했다.


‘어떠노? 클린턴 이스트 우드 같나?’

‘폼 나나?’

‘하하하. 건달 비슷하네요’

‘하, 건달 같다고?’


그 다음날부터 그 선글라스는 사라졌다. 클린턴 이스트 우드도 아니고 존 레논도 아니고, 풀 뉴먼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 살아온 대로 살자.

모자는 필요했다. 신촌에서 모자 두 개를 사 쓰고는 강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화. 전등사와 석모도와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역사의 고장 강화로의 기행. 

 

 

 

 

  

 

 

 

  

 

 

  

 

 

 

 

  

 

 

 

  

 

 

  

 

 

 

 

  

 

 

 

 

 

 

 

 

 

 

 

 

 

뒷이야기- 그날 전등사를 찾은 나는 큰 봉변을 당했다. 전등사 입구에서 공으로 준 인삼 막걸리와 순무를 겁없이 받아 마시고 먹었는데 그게 속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가방을 옆지기에 준 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나타나야 할 화장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옛말에, 변은 참으면 약이 되고 오줌은 참으면 병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도 소변도 참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걸로 변했다. 그날이 그랬다. 화장실을 못 찾는 나는 너무 급해 풀밭으로 들어가 실례를 하고 말았다. 뒷처리는 그 옛날 그랬듯이 허리 만큼 자라나 있는 풀 잎을 뜯어 처리했다. 어딜 가나 이제 화장실이 문제다. 2007521낙산재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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