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화두

21세기, 우리 인류가 붙잡아야 할 화두

오주관 2009. 4. 3. 17:51

 

  

얼마 전 미국에서 치러진 WBC. 20여 일 동안 치러진 세계야구대회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열광을 했다. 파이팅이 넘치는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그 열정에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이 홀딱 반하고 말았다. 야구의 본 고장인 미국과, 야구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긴 일본까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헬멧이 깨어지는 투혼을 불사른 이용규 선수의 플레이에 온 세계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차지한 준우승은 우승 못지않은 값진 승리의 월계관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펼친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의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역사도 일천하고 선수들의 연봉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백 분의 일이나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펄펄 날았다.

 

그 대회를 지켜보면서 나는 빛 같은 구원을 사이사이 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은 분명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 온 세계에 닥쳐온 정치와 경제위기를 뚫을 수 있는 답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자본은 아니다.

물질은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그것을 증명해보였다. 그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그 투지와 열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1. 감독과 선수들과의 신뢰. 

2. 개인플레이가 아닌 팀플레이.

3.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팀플레이로 승화를 시켰다.

4. 도전정신과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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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경제의 늪에 빠져 있다. 물론 발원지는 미국이다. 미국에 닥친 경제 한파가 삽시간에 온 세계에 퍼져 몸살을 앓고 있다. 비록 미국발 금융위기이기는 해도 그 밑바탕에는 잘못된 경제구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세계의 산업구조가 날이 가면 갈수록 기계화 되어갈 것이고, 반대로 노동시장은 날이 가면 갈수록 엷어져 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자 한계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지난 6, 7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경제가 한국의 제 일 화두였다. 경제개발에 국가의 에너지를 전부를 쏟아 부었다. 인권과 독재와 탄압은 경제개발이라는 플래카드에 깔려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개발독재라는 말이 생겼을까. 어쨌든 6, 70년대의 한국은 배고픔을 벗어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해서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경제의 동력이 노동이었다. 순전히 손으로 이루어진 경공업이 우리 산업의 주춧돌이었다. 1차 산업과 2차 산업이 이에 해당된다. 지금 중국의 경제개발이 늘 뛰듯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6, 70년대와 같은 것이다.

 

문제는 세계가 언제까지 행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고공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경제가 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을까?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경제가 왜 저렇게 맥을 추지 못한 채 추락을 하고 있을까. 세계는 왜 맥을 못 춘 채 동반 추락을 하고 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와 탐욕이 부른 브레이크 없는 욕망 때문이다.

 

수요는 생각하지 않고 공급에 매달려온 지난 세월이었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생산에 열을 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노동을 손쉬운 기계로 대처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 이익을 내기 위해서. 노동자들과의 마찰은 필연이었다. 그 필연을 피하기 위해 생산 공장을 외국으로 슬금슬금 옮기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꼴 보기 싫어 산업시설을 한국에서 월남으로 옮기면 괜찮을까? 고임금이 무서워 산업시설을 아프리카로 옮기면 괜찮을까? 우리는 이미 중국으로 옮겨 보았다.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 떼돈을 벌었나? 결론적으로 중국으로 선업시설을 옮긴다는 것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의 중심부인 미국의 월가를 누가 주무르고 있나? 월가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사람은 유대인들이다. 중국도 좌동이다.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옆의 월남이나 기타 등등의 나라들은 두 손 처매놓고 불구경을 할까? 아니다. 이미 나라와 나라의 국경은 무너져버렸다. 세계는 이제 하나인 것이다.

 

 

 

 세계는 세숫대야다.

그 물이 그 물인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일간지인 <가디언>에 브라운 영국총리가 자유방임 시대는 끝났다, 라는 글을 발표했다. 브라운은 영국의 재무장관을 10년 동안 한 사람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인 영국의 총리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 주입된 ‘워싱턴 컨센서스’ 의 종말을 선언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의 존 월리암슨 선임연구원이 1989년 경제위기에 처한 중남미 나라들에 대한 처방으로 긴축재정, 사회인프라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 외환시장 개방, 시장 자율금리,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외국인 직접 투자 자유화, 탈규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재산권보호 등 10가지를 제시하면서, 처음 이 용어가 쓰여졌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 세계은행 등 워싱턴에 본부를 둔 3대 기관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후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책으로 강요됐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경제정책의 기준이 되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은 지금 겁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버리고 있다. 그 예로 GM, CT, AIG에 공적 자금을 퍼붓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정부가 개입을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늦게나마 아이쿠, 이게 아니구나! 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여간 다행이 아니다. 전체가 아닌 소수의 정책은 망하게 되어 있다. 소수를 떠받치고 있는 층이 바로 전체이기 때문에. 탐욕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월가의 관심은 자신들이지 전체는 아닌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은 공동체 정신이 아닌 철두철미하게 사익에 있다. 이게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메이저급 투기꾼들에 의해 세계경제가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망할 폭발력을 안고 있는 것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해놓고 자신은 세세생생 행복할 수 있을까?

아차, 하고 미국은 스톱했다.

그제야 무지와 탐욕을 본 것이다.

 

부시 전 행정부와 의형제간인 우리 한국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는 미국도 버리고 영국도 버리고 유럽도 버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으면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1프로의 재벌과 기득권층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는 정부. 대신 빈 금고를 채우기 위해 다수 국민들의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정부. 이 정부는 부자들과는 소통이 기가 막히고 잘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산층과 서민들과는 먼 나라보다 더 못하다.  

 

 

 

 

똥이 있는 곳에 쇠파리가 끓듯, 돈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부패가 따라온다.

전체를 외면하면 결국 망한다.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답이 아니다. 물론 사회주의도 답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두 이념을 섞을 수밖에 없다. 섞어서 쓰다 후에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 나아지면 그때는 인류를 살릴 21세기의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21세기는 이념의 시대는 아니다.

21세기는 경쟁의 시대는 아니다.

21세기는 물질의 시대는 아니다.

 

21세기는 용광로다.

이념, 경쟁, 물질, 국경, 언어, 종교, 문화, 국가 등등을 녹여야 한다.

 

21세기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세계여야 한다.

21세기는 정신의 시대여야 한다.

21세기는 본성의 시대여야 한다.

21세기는 우리 인간의 정신과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아 온 인류가 전부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21세기는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몇몇 국가가 세계의 힘을 좌지우지 했지만 21세기는 모든 국가가 세계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을 해결하지 않고 세계의 평화는 없다. 뿐만 아니라 중동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을 해결하지 않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없다. 21세기는 상생의 시대여야 한다. 그리고 꿈과 희망이 흘러넘치는 세계여야 한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내 존재가 귀하면 타인의 존재 또한 귀하다. 우리나라의 존재가 귀하면 다른 나라의 존재도 귀하다. 미국이 귀하면 중동국가도 귀하다. 유럽이 귀하면 아프리카도 귀하다. 미국만 세계 제일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이제 졸업을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동맹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동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전쟁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냉정하게 분석을 해야 한다. 자국의 평화가 타국의 평화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 자국의 안전이 타국의 안전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자국의 이익이 세계의 이익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세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이익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은 우리 인류의 적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주인공은 나이고 당신이고 우리 모두이다. 정부는 잠시 우리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위탁받아 그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늘 감시하고 비판을 해야 한다.

 

21세기 우리 인류의 적은 탐욕과 무지다.

21세기 우리 인류는 브레이크 없는 욕망에서 탈출해야 한다.

21세기는 온 세계가 잘 사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뒷이야기- 우리 인간에게는 역사라는 거울이 있다. 그 역사의 거울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나간 자화상을 보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70년대 톱스타들을 80년도에 보면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다. 머리 스타일이며 복장까지 모두가. 80년대의 톱스타도 90년도에 보면 마찬가지다. 90년대 스타들을 2000년대에 보아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바로 몰개성이다. 창조가 아닌 모방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치와 경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지금 이곳이 아닌 먼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지혜와 혜안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만 생각하면 안 된다. 내 배만 생각하면 안 된다. 내 가족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만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이 왜 중동국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을까? 답은 탐욕과 무지 때문이다. 중동이 없으면 미국도 없는 것이다. 그걸 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더불어 잘사는 이타정신이 없다. 무릇 생명체는 모두 존귀하다. 평등하고 귀한 것이다. 그 정신만 찾으면 우리 인류의 현재와 미래는 밝다. 잃어버린 우리의 본성만 되찾으면 우리의 미래는 꿈과 희망이 흘러넘칠 것이다. 답은 하나. 세계는 하나다. 인류는 하나다. 2009331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