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옆지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세계테마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내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EBS의 세계테마여행과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1박 2일, 그리고 MBC의 피디수첩과 뉴스 후를 즐겨본다.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좋아한다. 조중동은 공짜로 보라고 해도 사양한다. 경향신문은 기사가 괜찮고, 한겨레는 칼럼이 괜찮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배가 꺼져 있었다. 요즘 뱃살을 빼기 위해 밤마다 바람처럼 걷는다. 어둠을 가르고 그곳에 도착하면 산바람과 달빛뿐이다. 웃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맨손체조를 한다. 팔을 돌리고 목을 돌리고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돌리고 무릎을 돌리고 발목을 돌린다. 오십견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등등을 예방하려면 평소에 돌리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 달밤에 체조가 끝나면 다시 되돌아간다. 시골길을 벗어나 조금 걸어가면 어느새 쿵쾅쿵쾅 철로 위를 달리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다리 밑이다. 그 다리를 벗어나면 운동기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사람들이 많이 나와 운동에 열중이다. 나는 가장 인기가 없는 도구로 간다. 눕는다. 아랫배에 두 손을 모은 나는 힘을 주면서 몸을 일으킨다. 흡! (장이 나쁜 사람은 잘못하면 똥 싼다)
열, 스물, 삼십, 오십, 칠십, 팔십, 백. 끝.
다음은 체중 들어올리기. 70킬로 나가는 내 몸 들어올리기
하나, 둘, 열, 열다섯, 이십, 이십오. 끝.
한 달만 열심히 하면 표가 나게 뱃살이 빠진다. 뺐으니까 좀 마시자. 언제부터인가 나는 밤에 술을 즐겨 마신다. 주로 잘 때 마신다. 낮술의 달인인 내가 밤술까지 좋아하다 보니 뱃살이 보라는 듯이 나오기 시작했다.
술만 제외하면 나는 건강 체질이다. 소식에다 채식 위주다. 주로 풀을 많이 먹는다. 양배추, 봄동, 무, 양파, 된장, 양파 등등이 밥을 상대하는 반찬이다. 양배추를 썰고, 봄동을 썰고, 양파를 썰어 밥 위에 얹어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끝이다.
어려서 고기를 접해 보지 못해 육고기에 약한 편이다. 옆지기는 육고기가 맛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육고기에 침을 흘려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망치 한방에 생을 끝내는 소의 그 종말을 떠올리면 몸이 오그라든다. 찰나에 품었을 원한과, 찰나에 찾아온 그 고통을 떠올리면 몸이 떨려온다.
출출하제?
텔레비전 속의 주인공이 마을의 사찰을 찾아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사찰의 스님이 공손하게 주인공을 맞아들인다. 자전거를 대놓고 사찰 안에 들어가자 스님이 공기를 칼로 베듯 조용조용 예를 다해 객을 맞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動적인 사람은 숨넘어가기 좋을 정도로 적요하다.
좀 그렇지요?
출출하네.
5분 뒤. 순대모듬과 술국으로 낙찰을 보았다. 나는 일어나 슈퍼에 소주를 사러 갔다. 잠시 후 우리 두 사람은 술국을 상대로 소주를 비웠다. 술국은 맛이 있었는데 소주는 이상하게 별로였다.
오늘 옆지기는 공돈이 70여 만 원 생겼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환율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도 1500원까지 환율이 올랐다고 나발을 불었다. 며칠 전 참, 달러 못 봤어요? 옆지기가 물었다. 봤다.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과 호주에 살 때 사용하다 가지고 온 달러가 조금 있었다. 며칠 전부터 바꿔야 되겠다고 말했다. 바꿔라. 떨어지기 전에. 어제 바꿨다. 다 합치니 70여 만 원이라고 한다. 공돈 같은 돈이었다.
소주 반병을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술국만 잔뜩 집어넣은 꼴이었다.
침묵.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은 걸 보니 잠이 든 모양이다. 누워 5분이면 잠이 든다. 피곤할 것이다. 아이들과 밤늦도록 싸우려면. 천장을 쳐다보았다. 실패와 무지가 왔다 갔다 했다. 무지 때문에 실패를 맛보면 안 된다. 그래서 무지가 두렵다. 실패는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무지는 감당이 안 된다. 세계가 혼돈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 때문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안 잤나?
네.
음, 무지와 실패.
두려워요?
응, 무지가.
침묵.
천장에서 시선을 거뒀다.
저기, 세상의 부가 누구 것인지 아나?
세상의 부?
응.
누구 것인데요?
세상의 것.
세상의 부는 세상의 것?
그렇지.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의 부는 내 것이다 그 말이다. 반대로 내 부는 당신 것이고.
음, 조금 이해가 가네요.
빌 게이츠가 왜 자신의 부를 사회에 전부 환원시키는지 아나?
글쎄요.
빌 게이츠는 뭘 알고 있다. 자신의 모든 부가 자신의 것이 아닌 이 세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요?
응.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도 마찬가지다. 구멍가게의 부는 그 동네의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어떤 세계이어야 할까? 20세기의 연장일까? 혼돈과 혼란과 무지와 탐욕을 그대로 이어받나? 그럼 망한다. 21세기는 지금까지의 무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21세기는 지금까지의 탐욕을 털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어떻게? 온 세계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세계로.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세계는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내 형제가 잘 살아야 한다. 또 엿장수가 나왔다? 맞다, 또 나왔다. 심심하면 나발을 불곤 한다. 하지만 이 세계가 합의를 할 때까지 내 나발은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 이렇다.
내가 잘 살려면 내 형제가 잘 살아야 한다. 우리 집이 잘 살려면 우리 옆집이 잘 살아야 한다. 우리 동네가 잘 살려면 우리 옆 동네가 잘 살아야 한다. 우리 경상도가 잘 살려면 전라도가 잘 살아야 한다. 우리 남한이 잘 살려면 삼팔 이북이 잘 살아야 한다. 우리 한반도가 잘 살려면 동북아가 잘 살아야 한다. 동북아가 잘 살려면 중동과 아프리카가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온 세계가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브루나이 국가가 있다. 그 나라의 국왕은 세계의 부호다. 브루나이 국왕의 부의 원천은 석유다. 브루나이 국가에서 생산되는 석유가 과연 브루나이 국왕의 것일까?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절대 국왕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부는 국민의 것이다.
21세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21세기다운 사고를 해야 한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어떻게? 어떤 패러다임으로 건설을 해야 하나? 우리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맛을 골고루 보았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뒤로 잠시 퇴장을 해버렸고, 남아 있는 시장주의 역시 끝 모를 추락을 하고 있다. 시장주의의 선두주자인 미국을 보라. 시장주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은행과 투자은행과 보험회사들 그리고 자동차회사들이 정신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21세기는
경제를 제 1 순위에서 밀어 내어야 한다. 경쟁을 밀어 내어야 한다. 물질을 밀어 내어야 한다. 탐욕을 밀어 내어야 한다. 무지를 밀어 내어야 한다. 이념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인종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언어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민족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종교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문화의 벽을 밀어 내어야 한다.
21세기는
통합의 시대여야 한다. 분열과 혼돈과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20세기는 부끄러움의 세계였다. 무지의 세계였다. 그리고 탐욕의 세계였다. 22세기에서 21세기를 바라볼 때 부끄러움이 없는 21세기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무지의 늪에 빠져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은 탐욕의 늪에 빠져 있었다. 여기서 진실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의 부는 나의 것인가?
미국의 부는 미국의 것인가?
세계의 모든 부는 세계의 것이다.
뒷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단어. 열정, 미침, 도전. 나는 열정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나는 미침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나는 도전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하루하루를 그냥 맥아리 없이 사는 것을 미치도록 싫어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들이 지혜를 모으면 반드시 세계의 두통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 개인의 삶을 전체의 삶의 고리에 매달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간단하다.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2009224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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