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오면서

오주관 2009. 5. 26. 16:16

 

도서관에서 집으로. 집에서 지하철. 시청역을 빠져 나오자 30년 전 그 길이 나타났다. 서소문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청량리에서 국철을 타고 서울시청까지 왔다. 그때는 국철뿐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새로운 것은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이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역을 빠져나오자 인파로 가득했다. 덕수궁 앞에 임시로 설치된 분향소. 그곳으로 가자 여고생이 다가와 국화 한 송이를 준다. 그리고 謹 弔가 새겨진 리본을 준다. 가슴에 단 나는 긴 줄 끝으로 갔다.

 

긴 줄 만큼이나 덕수궁 앞길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버스들. 소통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무엇이 두려워 저 난리인가. 두렵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나? 대응할 장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속이 꽉 찬 사람은 무서운 게 없다. 진실로 내가 바르면 두려운 것이 없다. 무술 유단자가 힘이 센 것이 아니다. 조폭이 힘이 센 것이 아니다. 무술이나 조폭보다 더 센 사람은 머릿속에 천하가 들어 있는 사람이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줄어들면 그만큼 또 사람들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았다. 누가 이곳에 오라고 초대한 사람은 없다. 스스로 온 것이다. 국상이다. 나라의 큰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 국민이 된 도리로 조문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길 건너편에 설치된 영상물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말말말.

 

 

 

  

‘저는 지금도 3월 26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태어난 날 말입니다.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날만 되면 학교에서 작문을 시켰습니다. 그해에도 작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작문을 하면 상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 아이들에게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내가 쓰지 마라 하니 안 쓴 친구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 쓰고 제목을 이승만 택통령이라고 적고는 빈 백지를 제출했습니다.

‘이게 뭐고? 와 안 썼노?’

‘선샘요, 밖에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던데요.’

억장이 무너졌겠지요.

‘저기 교무실에 가가 무릎 꿇고 있어!’

 

줄이 또 줄어들었습니다. 내 뒤에는 국화꽃을 든 여고생이 제법 있었습니다. 지난 해 촛불집회 때도 여고생들이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그 광경을 보고 아, 나라가 살아 있구나. 지금 이 시간 어느 친구는 도서관에 앉아 땀을 흘리며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친구는 미팅 때문에 몸을 단장한 채 어느 레스토랑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친구는 목적지도 없는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이곳 분향소에 조문을 하기 위해 온 여고생. 참으로 예쁘게 보였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는 썩지 않습니다. 다시 들려오고 있는 말말말.

 

‘야, 이놈아! 니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기 뭘 안다고 그래 설치고 다니노!’

‘이놈아! 어예든지 물 흐르면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아라.’

‘어무이!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다고 죽어지내면 누가 알아줍니까?’

‘악착같이 기를 피고 살아야지요!’

 

 

 

  

‘1960년도의 한국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하나는 돈이었고 다른 하나는 빽이었습니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아무리 대학교를 나와도 취직이 안 됐습니다. 저는 그 현실을 보고 자랐습니다. 제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반골이 그런 것들과 합치다 보니 오늘의 제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봉하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둑길을 달렸었다. 며칠 전까지는 해도 그는 봉하마을 주민들과 농사일을 하면서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행복해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을의 점방에 들어가 담배 한 대를 빼 물고는 허기진 마음을 달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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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그 시간만 되면 그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건강한 웃음을 날리며 삶을 예찬하고 있었다. 찾아온 관광객들과 그는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자리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러분! 짜더라, 내가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욕을 많이 하더니 아, 내려와 일을 안 하고 이래 노이 만 게 좋대요!’

'하하하하!'

‘요즘 용산에 미군이 떠나 땅값 많이 올랐지요? 그게 다 내 덕인 줄 아십시오!’

'하하하하!'

 

분향소에 들어선 나는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나와 같은 줄을 선 사람들과 국화 한 송이를 제단 위에 놓았다. 다시 자리에 돌아온 우리는 그를 향해 절을 했다. 천천히 두 번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 허했다. 좋은 사람은 항상 이렇게 우리 곁을 일찍 떠나간다.

 

인간 노무현은 21세기 사람이 아니라 22세기 사람이다.

인간 노무현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보지 못했다.

인간 노무현은 약한 자에게는 항상 약했고 강한 자에게는 항상 강했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거슬러 올라간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기둥이 된 주류들이다. 그 패거리들 중의 하나인 조 씨, 중 씨, 동 씨. 그리고 그들과 카르텔을 맺은 이 땅의 천민자본가들과 그 숙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다. 그 계통을 이은 이명박 정부. 그들을 일러 우리는 주류라 한다.

 

이 땅에는 늘 주류와 비주류와의 싸움이었다. 그 주류 사회를 뚫고 탄생한 정부가 바로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였다. 그때까지 한국은 우회전뿐이었다. 그래서 바깥의 좌측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우측 풍경만이 그림이었지 좌측의 풍경은 그림이 아니었다. 아니, 보면 안 되는 불경스러운 그림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이념은 아니다.

이념에 목을 매고 살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을 수 없다.

이념은 하등동물들을 묶어두는 울타리이지 인간의 울타리는 아니다.

 

인간 노무현이 이룬 공과는 크다. 흠이라면 그의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이다. 신자유주의의 신념을  받아들인 그의 그 논리가 많은 지지자들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동산 정책과 이라크 파병문제.

 

반대로 노무현 정부가 이룬 공은 엄청 나다. 1. 지역주의 타파. 특히 영호남을 허물지 않고는 나라의 통합은 없다고 본 그는 팔을 걷어 부친 채 그 벽을 허무는데 힘을 쏟았다. 어느 정도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2. 권위주의 청산. 크다. 비주류가 어깨를 펴며 산 세월이었다. 개똥이 소똥이도 할 말 다하고 살았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님을 늘 씹었었다. 독재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술김에 전 대머리, 라고 한마디 했다 붙잡혀 간 시절도 있었다. 그 도둑은 아직도 건재하다. 돈을 깔고 앉아 호위호식하면서. 3. 권력의 분권이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등의 힘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인 그들 기관을 독립시켰다. 대통령 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막강한 그 권력을 다 놓아버린 것이었다. 그 숭고한 뜻과 역사를 망각한 채 나라님을 물어뜯은 검찰. 4. 남북관계. 상생의 길이 뭔지를 끝없이 묻고 물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그렸다. 나는 말! 너는 되! 가 아니라 나도 말! 너도 말! 이었다.

 

 

 

 

 반대로 장돌뱅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대립이다. 힘 센 놈이 장땡이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말 좀 들어라! 안 들으면 국물도 없다. 의식은 대인데 가난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자존심이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는 않는다. 내공이 없으면 나라는 시장판이 되고 만다.

 

 

 

 

분향소를 나온 나는 가방을 메고 광화문으로 걷는다. 눈물은 없었다. 다만 가슴이 사막이었다. 좋은 사람과 어깨동무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웃으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다. 서로서로 다듬어 주고 안아주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내 행복이 네 행복이고 당신 행복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의 행복인 것이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그 웃음이 오늘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사실이 슬펐다. 그 사실이 내 몸을 춥게 만들었다. 그 사실이 내 정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 노무현, 그는 이제 이 땅에 없다.

묻는다

누가 그를 우리 곁에서 떠나가게 했나?

 

 

뒷이야기- 요즘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블로거들이 1500에서 2000여 명이다. 전국 각지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찾아온다. 미안하다. 그들을 환영하지 못해서. 문은 열려 있어도 쉼터는 닫혀 있다. 옥탑방 하나가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허리끈을 풀고 막걸리 잔을 주고니 받거니 하면서 덕담도 나누고 싶지만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미안할 따름이다. 나중에 기회가 오면 슬슬 끓는 쇠고기 국에 막걸리를 내놓으리다. 그때 푸지게 덕담을 나누고 싶다. 생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면 존재가 쓸쓸해지고 얼어붙는다.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복수는 용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한낮 뜬구름에 불과하다. 이념은 아니다. 정쟁도 아니다. 가르는 것이 아니라 통합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류와 비주류를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내 가난이 우리 도두의 가난이고 내 부가 우리 모두의 부인 것이다. 이것만 풀면 이 세상은 평화 그 자체다. 2009526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