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는 일요일 아침의 도노강 풍경. 눈을 맞으며 뛰고 있는 광들.
눈 온 그 다음날 아침 풍경
저 김을 보라. 들어가 목욕을 해도 안 추울 것 같이 김이 피어오른다 아침이면
오리들보다 갈매기들이 더 많다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
누구 보라는 듯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영일만의 친구들.
전부 서른 한 마리. 친구가 있어 쓸쓸하지 않다. 영일만에도 진이 있고 가가 있다.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찬가지다. 포항의 진들 중의 한 사람. 포항문협의 대장이었던 손선생님이 떠오른다. 어느 해, 작당을 해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쫄장부들도 떠오른다. 완장이 뭘까? 자신들을 이끌어준 스승이요 아버지요 큰 형님의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머리를 모은 쫌팽이들. 내몰린 그는 곡기를 끊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놓으면서 자신의 마지막 유작에 그 사건의 속내를 보여주고 떠났다.쓸쓸한 이야기다
그 쓸쓸한 이야기를 나는 종로서점에서 보았다. 마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소설 같았다. 오형, 나는 이렇게 갑니다. 손 선생님은 그렇게 불렀다. 말을 놓아라고 했지만 늘 아니 올씨다 였다. 나는 한 살만 아래면 무조건 놓는다. 그 소설 속에 그들의 부끄러운 수작이 다 들어 있었다. 그 소설을 본 나는 퉤퉤! 했다. 전국적인 인물은커녕 포항에서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지 못 한 그만그만한 소설가와 시인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화인 하나를 붙인 채 살아가야 하는 그들.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다.
나는 손선생님으로부터 공술을 세 번인가 얻어 마셨다. 그는 진정 포항의 마당발이었다. 그의 행정력이 없었으면 포항의 문협은 아직도 어둠에서 깨어나지 못 했을 것이다. 그의 공은 진실로 크다. 어느 해, 죽도어시장의 간판도 없는 허름한 술집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정시인과 동동주를 푸지게 얻어 마셨다. 13년 후배인 정 시인에게는 말을 놓아도 10년 후배인 나에게는 말을 놓지 않았다. 돌아가는 그날까지.
시인이었던 영상이도 이 아침 떠오른다. 불의를 보면 미쳐버리는 그. 어느해 손선생이 임시로 잡아준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할 때, 만나기만 하면 술에 목욕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시내에서 입이 돌아갈 정도로 술을 마신 그가 뜬금없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재끼못이 있는 오지로. 버스로 택시로 동네에 도착한 그는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맥주 세 병과 땅콩을 샀다. 방에 들어갈 때까지 까마득히 몰랐다. 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림 이야기를 끝으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눈을 부비며 방을 나온 나는 아!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눈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 내 바로 앞에 철썩~ 하고 파도가 치는 것이었다. 저수지였다. 나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입이 쩍 벌어졌다. 이 못에서 건졌구나 시인의 감성을. 나중에 전교조에 가담을 해 목이 달아난 그. 그 때 그의 친구와 후배들은 전부 목숨을 유지했다. 처자식을 두고 무책임하게 전교조에 가담을 했다고 장인으로부터 뺨이 얼얼하도록 얻어맞았다는 그. 어느 해 새벽, 찾아온 정신의 허기를 달리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다 심장이 스톱하는 바람에 저 세상으로 간 그. 그는 그렇게 갔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가가 판을 치고 있다 그대, 그대 옆의 친구를 보라. 가인가 진인가
뒷이야기-오리들보다 갈매기들이 더 많다. 전부 영일만에서 날아온 갈식이와 그 친구들이다. 누구 때문에 강을 넘고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이곳 도노강까지 날아왔을까. 영일만의 벗 나에게로 온 것이다. 서울이 좋아서 온 게 아니라 벗인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천 리 길을 온 것이다. 나는 추운 이 겨울이 춥지 않다. 그리고 저들을 온몸으로 끌어 안는다. 201014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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