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간성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그러다 끝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설악산이었다. 그날 2월 28일,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진부령 고개길로 차를 몰았다. 미시령이 아닌 진부령은 어떤 동네일까. 명태덕장과 유럽풍으로 지어진 민박집들. 마치 유럽의 작은 마을에 온 듯했다. 아주 낯선 풍경이었다
바닷가에서 일박을 할 것인가 하고 고민을 하다 공기가 좋은 설악산으로 들어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찾아간 곳. 유스호스텔. 방 흥정을 하면서 유스호스텔이 입에서 안 나와 애을 먹었다. '유스호스털' 아니에요. '유스호스틀' '아니에요.' '유스호세텔.' 발음이 잘 안 되는 단어들이 몇 있다. 구강구조가 잘못되어 그런 게 아니다. 입이 약간 돌아가서 그런 것도 아니다. 발음이 안 되는 단어가 몇 있다. 결국 한 자 한 자 떼어 발음을 했다. '유, 스, 호, 스, 텔.'
유스호스텔 주위의 식당들 중 하나를 찾아 저녁을 먹었다. 손님들이 바글바글거리는 식당을 찾았는데 영 아니었다. 손님 하나 없는 식당들은 파리를 쫓고 있었다. 어느 식당이 진국일까. 답은 진국은 없다. 버스 정류장 부근의 식당과 유명 명승지의 식당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어쨌든 골을 헹구기 위해 온 설악산.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으로 밤을 보냈다. 술이 썼다. 마음이 식어서일 것이다. 다 마시지 못하고 무거운 몸을 눕혔다.
습관은 무서운 것. 7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오늘은 휴일, 남은 술이나 마시자. 방 안의 더운 공기를 바꿀 겸 해서 창문을 열었다. 하! 저 폭설. 어젯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큰일 났다. 서울 돌아갈 일이. 결국 걱정은 우환으로 다가왔다
현미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시작한 제설작업. 삽으로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고 시동을 건 차들이 자기 방향으로 가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원격조정을 당한 것처럼 갈지자를 걷고 있었다. 밤 술에 취했나? 눈 위에서 생쑈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저 꼴일 것이다. 일기예보를 안 보고 온 죄값이다. 죄값을 톡톡하게 받은 3,1절
아침 9시에 유스호스텔을 나와 속초를 벗어난 시간이 밤 11시. 가도 가도 강원도 속초였다. 속초가 그렇게 넓은 도시라는 걸 그날 알았다. 미국의 텍사스주보다 더 넓은 것 같았다. 느낌이. 5미터를 가는데 한 시간
미국 차도 눈 위에서는 제로였다. 체인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벤츠도 좌우를 분간하지 못했다. 일제 혼다도 술이 해독이 안 되었는지 비틀비틀. 단 하나. 18만킬로를 뛰고도 아직 숨을 쉬고 있는 늙은 병사의 우리 accent만 반듯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 왜 그럴까? 옆지기 왈 나는 2단에 놓았고 아마 저들은 D에 기어를 놓지 않았을까? 어쨌든 속초를 벗어난 시간은 밤 11시. 아침에 미시령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통제를 했다. 체인을 감은 차들만 통과를 시킨다고 했다. 포기다! 가면 불귀의 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우리를 엄습했다.
평창휴게소. 오줌보가 탱탱해 있었다. 참다 참다 차 안에서 쏴버리면 강원도는 물바다가 될지 모른다. 나와 옆지기가 마음놓고 오줌을 내갈기면 속초시는 풍덩! 물에 잠길 것이다. 쏴! 쏴! 아이고 시원해라. 몸을 부르르 떨고는 당당하게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호도과자와 커피 두 잔씩을 마시고는 죽음의 레이스에 참가했다. 옆지기는 운전수 나는 조수. 간성해수욕장 주차장에서 한번 몰아보았는데 생각대로 안 움직여 주었다. 손과 발이 뇌의 명령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끝내 기사가 모는 차를 타야할 팔자인 모양이다. 어쨌든 어젯밤 우리의 애마인 accent는 평창에서부터 시속 120킬로로 질주했다. 내 간은 붙었다 떨어졌다. 심장은 오그라붙었고 숨은 쉬어야 쉬는 것이었다. 내 생사는 옆지기가 쥐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 내 명대로 살 수 있을까? 이해가 안 되는 게 빠꾸를 잘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 달리는 것은 귀신이다. 몸이 떨려 죽겠네. 나를 살려주시오.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아멘. 앞으로 이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주시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1절, 우리 두 사람은 속초에 갇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지독한 여행의 끝이었다
뒷이야기- 처음 밟아본 진부령. 낯선 풍경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미시령과 한계령과는 또 달랐다. 황태덕장과 유럽식으로 지어진 민박집들이 마치 유럽의 작은 마을에 온 듯했다. 강원도는 개발을 하면 안 된다. 관광과 먹거리로 승부를 걸아야 한다. 공장을 짓고 산을 메워 골프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사이코가 되어 가는 도시 사람들의 정신을 소제하는 휴식처이자 쉼터로 만들면 수지 맞는 장사가 될 것이다. 그것이 강원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201032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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