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아침 10시에 나는 집을 나섰다. 어젯밤 내린 춘설. 올해는 눈이 푸지게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곳. 며칠 전 예약이 되어 있는 종합병원. 지난 40여 년을 앓아온 내 고질병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집을 나서면서 옆지기에게 '나, 병신 판정 받아올게.' 미소로 답을 한 옆지기.
예약이 되어 있는터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앉아 있는데 '아무꺼시 씨.' 하고 불렀다. 들어가자 침대에 누으라고 했다. 뇌파검사. '편안하게 누워 계세요.' 이마 네 군데에 빨판을 붙였다. 30여 분이 흘렀다. 잠깐씩 코를 곯았다. 끝났다. 잠시 후 불렀다. 교수 한 분과 조수 한 사람. 의자에 앉자 교수 왈 '오른쪽 귀는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네요.' '네, 그렇습니다.' '다행히 왼쪽 귀가 조금 살아 있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소통에 지장이 많습니다.' 잠시 후 교수가 판정을 내렸다. '6급입니다.' 43여 년 앓아온 내 고질병의 끝. 그러니까 나 오모차베가 오늘부터 오반토벤이 된 것이다. 도장이 찍힌 병신 판정서를 받아든 나는 병원을 빠져 나왔다.
'나는 병신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보다 더 나를 괴롭혀 온 것은 '이명' 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앓아온 이명. 그때 나는 너무 일찍 거한 벽을 만났고, 절망을 만났다. 톨스토이, 세익스피어, 도스또에프스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내 정신을 망가뜨리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내 오른쪽 귀에서 쇠를 깎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리고 덤으로 나를 괴롭혀온 소통의 부재. 그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지난 세월.
거리에서 나를 발견하고 불렀지만 대답없는 메아리였을 때,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변했네! 불러도 대답이 없네.'
자난세월.
'아니, 앉아 차를 마시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하루 아침에 파기하다니! 못 믿을 사람!'
지난 세월.
'며칠 전, 분명히 그 자리에서 응응, 하고 대답을 해놓고 오늘 안면 하나 안 바꾸고 나 몰라라 하다니!'
이제 답을 하겠습니다.
듣지를 못했습니다.
들려야 대답을 하지요.
옆지기도 종종 지하철 안에서 이야기를 걸어올 때마다 나는 덮어놓고 '응응.' 하고 대답을 한다.
옆지기가 다시 묻는다.
'뭔데요?'
'모르지.'
'그런데 왜 대답을 했어요.'
'귀찮아서.'
오늘 밤, 퇴근을 한 우리는 마트에서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사와 자축을 했다.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는 건배를 했다. 내가 그랬다.
'병신을 위하여!'
'하하하.'
'나, 건드리지 마! 병신이야!'
'하하하.'
나는 국가가 인정을 한 병신이다. 비록 급수는 낮지만 6급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오늘부터 나는 오모차베가 아니라 오반토벤이다. 베토벤은 청력을 다 잃고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나는 뭘 남길까? 남길 것이다.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쇠소리를 벗 삼아 나도 뭔가를 남길 것이다. 장애를 뛰어 넘어.
뒷이야기- 다시 일어났다. 잠이 달았다. 술이 부족했나. 잘 때 소감을 물었다. '좋지. 이제부터 지하철은 공짜, 기차는 30프로, 비행기도 30프로, 고궁은 무료, 그리고 기타 등등.' 이것만 해도 얼마인데. 며칠 후부터 나는 공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지 싶다. 지금 역마다 역무원이 사라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 어른들 공짜표를 주지 않기 위해 글금슬금 작전을 쓰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헛군데 돈 쓰지 말고 옳은데 돈을 쓰는 국가가 일등국가다. 2010311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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