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4월 19일 해병대에 입대를 한 조카 현에게

오주관 2010. 4. 20. 13:52

 

 

어제 아침, 포항에 전화를 했다.

12시 30분에 간다고 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해병대에 지원을 한 조카.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패들이 있다.

광주 출신에 고대 출신에 해병대 출신이 그들이다.

그들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옛날, 서소문 보험회사에 다닐 때 세 사나이가 있었다.

한 사나이는 영화배우 신일용 씨 만큼 잘 생긴 키가 일미터 팔십 오 정도의 광주일고 출신에 고대 출신에 해병대 출신이었다.

눈썹이 짙었고 눈이 호수만큼 깊었다.

인물이었다.

 

한 사나이는 하루 생활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그 돈만 지출하는 대구 사나이.

시간을 쪼개 연대 대학원에 다닌 대구상고 출신.

우리 중에 사장이 될 일순위.

불편한 한쪽 다리를 가지고 있어도 그는 분명 토끼를 잡는 거북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늘 쉰내가 진동을 했다.

땀이 그의 전부였다.

토큰 두 개, 짜장면 한 그릇, 커피 두 잔, 담배 한 값, 그리고 소주 한 병.

커피 한 잔과 소주 반 병은 내 몫.

 

한 사내는 깡밖에 없는 포항 촌놈 출신.

다른 사내들은 서울이 무대라면 이 사내는 사대문 안이 주무대.

찍어서 공격을 해 승률이 6,70 프로.

단위가 커 쓰나미나 지진이라도 나면 와르르 망할 위험을 안고 있는 사내.

 

어느 날, 큰 보험이 걸린 그곳 회사 부사장과의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의 회사 앞 여관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만나 기어이 그를 굴복시킨 집념이 강한 사내.

영업을 잘한다는 소문이 돌아 회사 용팔이 이사님이 직접 그를 차에 태워 상대 부사장에게 인사를 하러 간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

 

어쨌거나 저쨌거나 세 사나이들의 주 무기는 땀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세 사나이의 등짝은 소금꽃이 피곤 했다.

대구 사나이와 나는 단짝.

사이사이 시를 적은 메모지를 보여주면 대구 사나이는 입을 쫙 벌리며 오시인! 오시인! 하고 비행기를 열심히 태워주곤 했다.

부장님은 내 친구가 천상병인데 소개시켜주까? 하고 잠시나마 나를 구름 위에 올려놓곤 했다.

마산고에 서울대 동기.

 

광주 사나이.

여름, 그 뜨겁던 저녁 무렵.

사대문을 개 발바닥이 되어 다니다 돌아온 사나이의 등짝은 그날도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그가 물고 오는 먹이는 늘 만 원 미만의 적하보험이었다.

나는 백만 단위.

그 쪼가리들이 모여 백만 단위로 변하는 것이었다.

소름이 돋곤 했다.

저 친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가 상대하는 회사가 크면 그도 덩달아 성장을 한다.

여러 수십 개의 회사.

몸이 떨려오곤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그.

그는 윙크를 보내며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가 말했다.

 

'오형!'

'네.'

'오형, 나하고 무역 한번 해볼래요?'

 

파이팅, 열정,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면 반드시 한 꿈을 이룰 수 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이 뜨거웠다.

 

망할!

장래가 쨍글쨍글 햇빛이었던 깡은 일년만에 대리 자리를 주겠다며 스카웃을 한 회사까지 노! 사인을 보내고는 사표를 내더니 고생길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동가숙 서가식하며 노자가 아닌 장자가 되어 한평생 자신을 낚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현아!

어제 아침 외삼촌이 그랬다.

네가 해병대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

인내, 끈기, 열정, 동료애, 자기애 등등.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참아야 하느니라.

네.

벌을 받아야 한다면 먼저 받아라.

네.

노래를 부를 일이 있으면 먼저 불러라.

네.

어려운 동료가 있으면 기꺼이 동료애를 발휘해 도와주어라. 

네. 

해병대를 제대하면 그때부터 네가 상대할 친구는 이 세계다.

2012년 제대를 하면 이 세계를 품어라.

네.

마지막으로 해병대의 구호인 필승을 힘차게 불러봐라.

'필승!

 

현아, 네 형도 해병대 출신이다.

물론 형을 닮고 싶어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형도 외삼촌이 보았을 때 썩 괜찮은 인물이다.

너도 마찬가지.

 

고생.

아무리 힘들어도 짧다.

극복해라.

극복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세계를 힘껏 끌어안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고 오너라.

성공의 전부는 땀이다.

눈물과 땀을 두려워하지 마라.

네는 틀림없이 튼튼한 사나이로 2012년 이 사회에 멋있게 복귀를 할 것이다.

 

 

 

뒷이야기-인생에는 운명이라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오늘 여기서 하차를 하고 다른 세계에 몸을 담는 것도 운명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무리에서의 이탈은 패배가 아닌 승자로 살아남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고 낙담할 일 없기. 큰 삶을 위한 워밍업일뿐. 2012420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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