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오늘도 도시를 포위한 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부채질을 하면서 좀 머씨처럼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데 까만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추어 선다. 최신형 벤츠다. 문을 열고 나온 오십 중반의 기사가 재빨리 뒷문을 열자 오십 후반으로 보이는 스님 한 분이 내린다. 모시장삼을 차려 입은 스님의 풍채가 빛이 난다. 동시에 앞문에서 육십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황급히 내린다.
순간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옛날의 나였으면 생각할 틈도 없이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엄청 정화가 되어 있다. 자연은 자연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도망을 간 부드러움이 되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왜 벤츠에서 내린 스님을 보고 몸을 떨었을까? 그 벤츠는 스님 것이 아니라 앞에서 내린 보살의 자가용인지 모른다. 보살이 존경하는 스님을 뒤에 태우고 선방에 왔을지도 모른다. 스님은 조계종의 큰 스님일 것이다. 풍채가 그랬다. 때로는 남의 차를 타고 공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떤 것일까? 스님이 벤츠에서 내리는 순간,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몇 자 남기고 사라진 수경스님이 떠올랐다.
누가 큰 스님일까
대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지는 스님과, 시대에 눈을 감고 있는 스님
대형교회의 목사들도 마찬가지다. 입으로 먹고 사는 목사들 역시 어리어리한 차를 타면 안 된다. 강남 어디의 소자를 쓰는 큰 교회의 곽 자 성을 가진 칠십 중반의 목사님이 타는 차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면 사정없이 몸을 떨면서 미쳐버리는 시가 2, 3억의 페라리라고 한다.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월급이 8,90 만원이었다고 한다. 차는 구형 소나타. 그 차마저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큰 교회의 목사가 낡은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낡은 지팡이와 낡은 돼지껍데기가죽 가방을 쥐고 다니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그런 목사님을 길에서 만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존경을 안 할 수가 없다.
존경과 사랑의 본향은 물질과 껍데기가 아니다
법정 스님을 보라
깊은 내면의 호수 같은 조용한 인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뒷이야기-성직자는 좋은 차를 타면 안 된다. 가지면 가질수록 겸손과 양보와 희생은 도망을 간다. 그 자리에 탐욕이 자리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천박함과 물질이다. 이 두 가지는 돈에서 온다. 편안함과 조직은 더 큰 물질과 권력을 부른다. 혹세무민에 순종하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예수의 정신으로 나무관세음보살.201088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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