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서해로부터 걸려온 전화

오주관 2010. 12. 25. 19:38

 

 

그날밤, 대구에 있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 끝에 전화를 받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서관인데요 했다. 기말고사 안 끝났나. 예. 잠깐 나온 모양이었다. 막내이한테 연락 왔나. 안 왔는데요. 옮긴데 주소 모르제. 예. 주소 좀 알아 보내라. 삼촌 편지하게. 예. 근마, 추울 건데. 여기도 추운데요. 그래도 군대 추위가 더 춥다. 그때 안 떨어보고 언제 떨어보능죠. 난로 안 피우나. 피우면 열감지선에 걸리는데요. 그렇다면 이놈도 많이 떨어보았다는 이야기. 잠시 후 주소가 적힌 문자가 왔다. 그 다음날 편지를 보냈다. 서해 5도는 지금 준 전시 상태다. 내가 죽자사자 전쟁을 반대하는데는 전방에 가 있는 조카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말 전쟁을 해서 통일을 시키고 싶으면 대통령과 국무총리 안상수를 비롯해 군대를 가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연평도에 가 진지를 구축하고 이북과 교전을 벌려라. 

 

 

 

 

 

해병대를 지원하게 된 동기가 몇 있다. 첫째 조카가 해병대를 지원했다. 내가 가라고 했다. 해병대는 반드시 네 삶에 큰 힘을 줄 것이다. 군말 없이 갔다. 제대할 때까지 편지를 다섯 번 정도 해 주었을 것이다. 해병대 안에서 일어난 신산스러움 같은 것은 혼자 삭인 채 제대를 했다. 그 뒤를 이어 동생도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내가 가라고 했다.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고 내 신경은 안테나를 세운 채 경계근무에 들어갔다. 혈압도 내려올 줄을 몰랐다 

 

 

 

 

 

편지에 썼다. 만약 국지전이 일어나면 그때는 떨지 말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싸워라. 물론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후회없이 싸워라. 삼촌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계속 군기피자들에게 압력을 넣을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저녁,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내게 전화가 걸려오는 데는 한정되어 있다. 최신 스마트폰 주겠다는 곳. 그게 아니면 문자 메시지뿐이다. 뚜루루, 해서 열어보면 노름 하십시오, 아니면 돈 좀 빌려줄 테니 제발 돈 좀 쓰십시오 하는 사채업자들 메시지뿐이다. 며칠 전,  부알이 고향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두 달에 한번 아니면 세 달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이야기 끝에 니, 제사 지내고 봉지 돌리는 거 정식명칭 아나. 그러니까 기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 같은 음식을 봉지에 싸 친척들에게 돌리는데, 그게 표준어가 뭐고. 모르겠는데요. 그만치 공부를 마이했는데 모리나. 제사까지 알아야 하능죠. 라고 말을 이어 가는데 갑자기 전화 감도가 수상했다. 이 전화가 와 일로. 도청되나. 내 전화가 수상하니더, 그러이 전화 끊어소. 알아서 문자로 보내줄게요. 번육이었다. 한자는 형님이 찾아보소. 해서 나는 내게 걸려오는 전화를 잘 안 받는다. 노름, 대부업체, 스마트폰, 그리고 수상한 곳. 다시 왔다. 받았다. 필승! 

 

 

 

 

 

오, 그래그래. 왜 전화 안 받았어요. 니 전화인 줄 몰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초기대응을 잘못했어요. 맞다. 군대기피자들보다 낫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면 안 된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그때는 두 배 세 배로 갚아야 한다. 내가 그랬다.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면서 한 대 때리면 나는 상대를 전광석화같이 서너 대를 때린다. 그것도 맞으면 아파 미치는 급소를. 살이 적게 붙어 있는 뼈 부분이 급소다. 약간 전의를 상실한 상대가 다시 한 대를 안기면 그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10대 정도 때려 혼절을 시킨다. 그럼 십중팔구 항복! 한다. 

 

 

 

 

 

그날 밤 조카에게 그랬다. 연말도 되고 하면 약간 뒤숭숭할텐데 그럴수록 동기들하고 재미있게 보내라. 안 그래도 잘 지냅니다. 요즘 살이 좀 쪘어요. 그래. 예. 저기, 후임들 많이 도와줘라.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다. 많이 도와줍니다. 배고프다 싶으면 먹을 것도 좀 사주고. 예. 삼촌, 저 월급 받은 것과 용돈 받은 것을 저금해 백만 원 모아놓았어요. 저, 군대 제대하면 돈 많이 벌 겁니다. 속으로 돈에 사연이라도 있나. 많이 춥제. 아니 견딜만 해요. 배는 안 고프나. 밥 많이 먹습니다. 네가 잘 하겠지만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팀윅이다. 재미있게 보내라. 나중에 제대하면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 몸은 서해5도에 있지만 네 정신은 항상 이 세상을 품어라. 잘 알겠습니다. 또 편지할게. 네, 건강하십시오 필승!

 

 

 

뒷이야기-전쟁이 일어나면 나와 전방에 갈 사람들이 분명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군에 가지 않은 외무부장관과 기타 등등, 그리고 보은폭탄과 자연산으로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우리의 상수. 전방에 가면 내가 분대장이 되어 전쟁이 이런 것이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것이다. 상대를 치면 반드시 앙갚음이 온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신뢰와 믿음이다. 그리고 화해다.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물타기 작전은 안 된다. 기교파가 끝내 정통파에게 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101225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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