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조카, 휴가 나오다

오주관 2011. 7. 10. 13:06

 

 

그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032. 삼촌, 저, 내일 휴가 나갑니다. 응, 그래? 저 나갈 때 정류장에서 전화할게요. 그래그래. 편지 보내길 24통만에 다시 만난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가. 진급과 정식휴가가 늦어졌고 한번 취소되었다. 그 사정은 (괄호) 안이다. 운동 잘하고 정신이 반듯하고 그리고 시험에서 늘 앞장서 가고 있는 조카. 장마 속의 서울.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6시에 다시 걸려온 전화. 삼촌, 저, 휴가 못 나갑니다. 2사단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가 조카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상심이 큰 조카가 오히려 삼촌을 걱정해주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버린 조카. 나가면 삼촌과 냉면을 먹고 그리고는 포항에 내려가 곱창에 소주 한잔 먹겠다는 계획을 밝힌 조카. 서울역에서 가까운 광화문 쪽의 냉면집을 물색까지 해놓았다. 이번에 나오면 밴드 여자 친구가 자기 친구 하나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해놓았다고 했다. 부대 안의 군인들은 늘 부대 밖이 그립다. 내 유년시절을 보낸 1사단이 있는 포항시 오천읍 용덕동. 그들에게 맡아지는 냄새는 한결 같았다. 군인들에게 휴가는 그리움을 끌어안는 것이다. 내일은 대대장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사고는 사고이고 휴가는 휴가다. 사고로 휴가를 막을 수는 없다. 보내라.

 

 

 

 

금요일 아침 7시에 걸려온 전화. 삼촌, 저 내일 휴가 나갑니다. 그래? 네. 잘 됐네. 저, 정류장에서 전화할게요. 그래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온 조카. 상병이고 내년 2월이면 제대다. 그 사건으로 집안에 비상이 내려졌다. 996기인 자기 형이 제일 먼저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1116기인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으리라. 그 시간에 서울역으로 나갔다. 같이 휴가 나온 후임들에게 송정에서 밥을 사주었다고 했다. 냉면 먹으러 가자니까 지금 배가 불러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밤에 잠을 못잤다고 했다. 내일 나가면 해야 할 일들 때문에. 그 대신 목이 마르다면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몸이 차돌 같았다. 김상병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필터장치 없이 선발을 한 결과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껏 높아진 해병대의 사기에 힘입어 팔굽혀 펴기를 20번도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들어온 결과라고 했다.  

 

 

 

 

내년 2월에 제대를 하면 복학을 해 공부에 목숨을 걸겠다는 조카. 보컬이다 축구다 해서 너무 노는데 땀을 흘리는 바람에 3,8밖에 못 받아 장학금을 놓쳤다는 조카. 996기인 형에게는 편지를 서너 번밖에 못보냈다. 얼마 전 밤에 통화를 했다. 삼촌, 저 요즘 풍력발전기 만들고 있어요. 그래? 네. 열심히 해라. 네. 가능성과 반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큰 조카. 고등학교 때의 전설 하나.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전교 석차가 330등이었다고 한다. 자기 뒤에는 운동부들밖에 없었다. 절벽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 거대한 장벽 앞에서 시동을 건다. 이제부터 공부 좀 해볼까! 했다. 2학기 때 석차가 전교 30등. 어릴 때 삼촌인 나와 전국을 돌다시피했다. 여행. 호연지기. 세상을 넓게 봐라. 고교시절. 아야, 자나? 공부 좀 해라. 어머니, 저 좀 자게 놔 두세요. 아야, 이제 좀 자라.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1번과 2번의 이야기다. 1번과 2번에게 나는 여전히 희망을 본다.

 

 

 

삼촌, 한장 찍어주십시오. 1시 30분에 떠나는 서울발 신경주행 열차 앞. 2시간 걸린다고 했다. 신경주에서 포항까지는 30분. 포항가면 군대 간 친구와 초등학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잘 놀다 오너라. 네, 13일날 올라오겠습니다. 17일 귀대다.   

 

 

 

 

사실 이 조카가 걸물이다. 탤런트 시험 한번 봐라할 정도로 심풀하다. 187-75. 통이 넓다. 1분마다 웃음보가 터진다. 2사단에서 장군을 모시다 제대를 했다. 동생 못 빼나? 전마, 빡빡 기다 나오게 놔 놓아야 됩니다. 해병대를 왜 갔는데요. 오케이! 시험 때문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형이 어제는 포항으로 내려오겠다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 동생 때문이다. 성일아, 너는 별이다. 외삼촌은 믿는다. 늘 이야기를 하지만 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품을 수도 있다.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거다. 네 앞길에 절망은 있을 수 있지만 좌절은 없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떠나기 전 동생에게 기를 한번 넣어주어라. 그리고 손을 잡아라. 'We Can Do iT!'

 

 

뒷이야기-사람이 사람을 해하면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의 특징은 몸은 대한데 정신은 소하다. 왜 그럴까?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이다. 자기 자식 귀한 줄만 알지 남의 자식 귀한 줄을 모른다. 그렇게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정신은 정신병원에 다리 하나를 걸쳐놓고 있다. 감정은 또 기름이다. 참지를 못한다. 풀무질과 단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강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2011710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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