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화두

오주관 2012. 9. 21. 15:37

 

 

 

오늘도 나는 길을 걷고 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내일도 나는 걸을 것이다. 내 본적은 꿈과 혁명이고 현주소는 길이다.

 

어제 아침 8시 30분에 우리 두 사람은 지하철 안에서 헤어졌다. 옆지기는 7호선 나는 4호선. 옆지기의 손을 한 번 잡은 나는 4호선으로 갈아타고 내 임시 아지트로 향했다.

 

내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만든 영어 프로그램이다. 어제는 통일이 아닌 영어 프로그램을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 내가 간 곳은 서울시청이었다. 그 전날 밤 홈페이지에 들어가 담당자가 누구인지 확인을 한 나는 수첩에 이름까지 적었다.

 

지자체가 수익사업을 할 수 있나?

지자체가 사업제휴를 받아들일 수 있나?

그 의문점을 지우게 한 것은 서울시와 경기도가 만든 영어마을과 한강에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새빛둥둥섬이었다. 

 

 

 

올 여름, 나는 내가 만든 영어 프로그램을 가지고 발바닥이 불이 나게 돌아다녔다. EBS와 Y대학교, 그리고 대기업 몇 군데. EBS의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우면동과 양제동을 입에 거품을 물며 다녔다. 막상 담당자를 만나자 그가 전해준 메시지는 간단했다. 자체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 완성된 콘텐츠를 가지고 오면 송출은 가능하다.

 

두 번째 간 곳은 대학교. 요즘 우리나라 대학교의 공통 관심사 중에 하나가 수익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돈이 되는 곳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있다. 학생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비싼 등록금을 전문지식 없이 더 많은 수익을 낼 탐욕으로 뛰어들었다 본전은커녕 거금을 날린 대학교들이 많다.

 

외국어가 상징이자 마스코트인 Y대학교. 내 마음 한 구석에는 그 돈의 백분의 일만 투자를 하라. 그러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다. 학교 이미지도 살리고 수익도 올리고,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식이다.

 

 

담당자를 만난 나는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관심은 많다고 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딸도 영어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적인 그림은 그리는데 그 이상은 파고들지 못했다. 총론은 아귀가 맞는데 각론에서 막혔다. 내가 보기에 뉴미디어 사업을 추진할 권한과 책임이 없어 보였다. 이 안건을 상정해 토론을 해보라고 했다. 어차피 뉴미디어 사업을 할 계획이 있으면 총장 이하 핵심 구성원들이 달라붙어 의견을 나누어 보아라.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대학교에서 지방대학교로 내려간 그 교수도 스피킹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영어 프로그램의 속 내용을 보여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입안이 탔다.

 

허!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비밀을 좀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마, 망치가 없나? 무지는 죄라고 했다. 내가 지난 5년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를 하며 매달렸는지 아느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 아는 그 연구에 내가 쏟아 부은 열정을 아느냐? 250원짜리 자판기커피를 마셔가면서 시간과 사투를 벌인 그 쓸쓸함을 아느냐? 그런데 그 핵심비밀을 보여 달라고?

 

에라이 이 호랑말꾸 같은 놈아!

 

내 입은 어느새 험해지기 시작했고 손은 까닭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 상대가 아니었다. 총장을 만나고 대장을 만나야지 졸병을 만나면 안 된다. 호랑말꾸와 헤어지고 교정을 걸어 나오는데, 하늘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7월의 태양은 얼마나 뜨겁든지! 땀을 아마 한 되는 흘렸을 것이다.

 

 

대기업도 끝내 무소식이었다. 옆지기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대기업을 향해 볼멘소리를 많이 했는데 그들이 좋아하겠어요? 듣고 보니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시간만 나면 가는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한반도의 통일과 영어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내 메시지를 그들에게 계속 날려 보내고 있다.

 

10타수 무안타

석탄백탄을 넘어 김기덕 감독의 그 한과 화가 내 머릿속을 지금 점령하고 있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낸 그도 이번 대선 후보의 싸움에서 패했다. 1%의 가능성을 가지고 지켜본 나.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지금 두 사람의 야권 후보가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막말로 박가만 아니면 된다.

 

 

임시 아지트에서 걸어 시청 청사에 갔다 시간은 점심시간이 막 끝난 오후 13시 5분. 현미에 김치 한 가지만 먹은 뒤라 입안에서 김치냄새가 좀 났다. 내 일 때문에 왔는데 상대방에게 김치냄새를 풍길 수는 없지. 가방에 들어 있는 아이스 쿨을 하나 꺼내 입안에 넣어 와작와작 씹었다.

 

현관 로비. 14층에 가기 위해 명패를 받아야 한다. 나는 신분증을 주고 방문명패를 받아 가슴에 달았다. 올라가 담당자를 찾았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는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고 대신 팀장이라는 자를 여직원이 소개를 시켜주었다.

 

옆방에 앉은 두 사람. 대화 끝에, 영어마을과 새빛둥동섬은 밑에서 단계를 밟아 올라온 사업이 아닌, 위에서 도장을 찍고 시작한 치적 쌓기 사업으로 보면 되느냐, 라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시교육청에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시가 못하는 사업을 교육청이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밑져야 본전이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맨 채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교육청으로 갔다.

 

수익사업이 가능할까?

사업제휴가 가능할까?

 

 

내가 만날 사람은 장학사라고 여직원이 말했다. 팀장인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공무원이었다.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를 장학사인 그녀도 가지고 있었다.

 

강한 프라이드

 

외통수를 만나면 참으로 피곤하다. 나는 그래도 영어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어에 약할 수밖에 없나? 머리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왜 영어에 관한 한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나? 그 부분에 관해 나는 치를 떨면서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영어 프로그램에 매달릴 수 있었다. 프라이드가 전부인 그녀는 땀을 닦으며 더위와 잠시 일전을 벌리고 있는 내 침묵이 공부가 좀 부족한 사람으로 비추어졌는지 숫제 나를 가르치려고 했다. 이런 미구를 봤나? 그 옛날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 버릇이 남아 있었다. 화가 좀 난 나는 이내 장학사를 향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이 지경이 된 것은 교육부의 잘못된 영어교육정책 때문이다. 라고 질타를 하면서 만약 내 앞에 우리나라 역대 교육부 장관들이 있으면 나는 그들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릴 것이다! 흡. 몸을 움츠린 그.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게 약한 자들의 참모습이다

 

 

 

KBS의 ‘한국의 재발견’ 이라는 프로가 있다. 나는 그 프로를 좋아한다. 국민배우인 최불암 씨가 전국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과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프로다.

 

며칠 전 그의 행선지는 남해의 어느 섬이었다. 배를 타자마자 외국에서 온 여자 관광객들이 최불암 씨를 알아보고 모여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온 그들을 보고 국민배우인 그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I  know?

 

꿈보다 해몽이라고, 나는 그 말을 한국식으로 받아들였다. 최불암 씨가 그들에게 물은 말을 한국식으로 풀어 말하면

 

나 알아요?

 

이다. 그런데 옆지기는 아니었다. 배를 잡고 웃었다. 차라리

 

know  me?

 

라면 몰라도 I  know는 틀렸다는 것이다. 국민배우도 영어에 관한 한 이하동문이었다. 그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표준 영어다. 다시 이어진 국민배우의 영어.

 

Where is going?

 

 

어느 유명한 개그맨이 일행들과 외국에 촬영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그는 평소 영어울렁증을 가지고 있었다. 조심조심 입국심사대를 향해 가고 있는데 마침 꼬마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다가간 그. 너, 어디 가니? 너, 이름 뭐니? 를 묻는다는 게 그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Where is name?

 

내 머릿속의 화는 계속 진행형이다. 분노 때문에 시작한 두 주제. 내가 만든 영어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쫄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내 머릿속의 화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통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구할 투자자 여러분! 이제 나오십시오!

 

뒷이야기-구하라, 그럼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오늘 또 한 사람의 우군을 발견했다. 한국의 근본을 바꾸려면 한국형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한 역사학자. 나는 오늘도 내일도 걸을 것이다. 한국이 앓고 있는 근원적 병을 고치고, 우리나라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구할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2012921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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