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만난 우파들
지난 22일 토요일, 가방을 매고 인사동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아저씨, 서명 좀 부탁합니다.’ 했다. ‘무슨 서명요?’ 하면서 앞을 보니 플래카드가 보였다. 전교조 없는 세상 만들기.
‘지금 전교조 선생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좌파로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얼굴과 목에 연륜의 나이테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나라 사랑이 이만저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걱정이 태산보다 커 보였다. 애국애족이 넘쳐나고 있는 아주머니 너머로 그들이 보였다.
고향의 두 사나이
그들은 전교조였다. 한 사나이는 고등학교 후배, 다른 한 사나이는 고향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 한 사나이는 미술교사이면서 시인이었다. 그가 쓴 시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시가 있을 것이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사나이였다.
1980년대의 포항
포항시민극장 앞 건물 2층에 낭만이라는 찻집이 있었다. 1층은 서점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잔잔한 음악이 흘려 나오고 있었고 커피 볶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곤 했다. 그 찻집은 소위 소설과 시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중앙을 지나 후미진 구석 자리로 가면 반코트를 걸친 사내가 앉아 있다. 그는 항상 노트를 펼쳐놓고 무엇인가를 쓰고 있을 때가 많았다. 겨울이었고 늘 반코트 차림이었다.
그는 포항문협의 중심타자가 아니었지만 포항 문협의 대장이나 다름없는 손 선생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을 받기 전 손 선생이 놀면 뭐하느냐며 어느 고등학교 임시교사로 취직까지 시켜준 것을 보아도 그의 됨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해 겨울 어느 날, 죽도시장 어판장의 간판도 없는 술집에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얻어 마신 동동주도 그와 함께였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스탠드바에 데려가 맥주와 양주를 사주기도 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신 술은 거의 소주였다. 학교에서 퇴근을 하면 낭만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고 그 다음은 파도였다. 낭만 뒷골목에 있는 파도에 들어가면 주인이 알아서 파전과 소주를 가지고 온다. 그때는 소주가 30도였다. 한 병만 마시면 알딸딸해지면서 정신이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근육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는 빼빼들이 30도짜리 금복주 때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그 시간이다. 한 병이 바닥이 나고 두 병 째 소주가 등장을 하면 배 밖에 나온 간이 간혹 시위를 하기도 한다. 육두문자 그리고 허공을 젓는 팔. 욕의 중심은 항상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이 대머리! 라고 소리만 쳐도 잡혀가던 그 시절에 전두환을 향해 말방줄방 욕을 해대었지만 파도 안에 경찰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와의 하이라이트는 파도 맞은편의 술집이었다.
그 날 밤에 만난 세 사람
그 날 밤에는 세 사람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낭만의 여주인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낭만 안에서 나는 대접을 받는 측에 끼었고, 그는 대접을 덜 받는 측에 속해 있었다. 기분이 꿀꿀하면 여주인을 안 좋은 여자로 표현을 많이 해 그 말이 자주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차를 마시고 가끔씩 외상으로 처리했다.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저 사람은 외상을 주라,고 미리 귀뜸을 한 것이었다. 술도 외상 차도 외상이었다. 나는 외상 인생이었다.
소주 두 병이 바닥이 나자 시인의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낭만 여주인의 눈도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스트레이트를 뻗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나였다. 년놈 사이에 끼어 있다 봉변을 당하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술잔을 탁! 소리가 나게 탁자 위에 놓은 시인의 눈이 왕방울로 변해 있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제법 나간 낭만 여주인의 눈에서도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시인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씨발, 니가 사람을 차별해!’
‘뭐가 어째고 어째!’
‘야 이 떡아!’
‘머, 떡이라고?’
낭만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렸다. 여자가 일어나더니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받았는지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지금 이 씨발놈이 나한테 쌍욕을 하면서 개무시를 하고 있니더. 이쪽으로 빨리 오소.’ 나는 아, 했다. 공짜 술 좋아하다 골로 가지했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밤이었다. 내 돈 주고 왕대포에서 술을 마시면 열에 열은 조용하다. 그런데 공짜 술에 끼면 열에 두 번은 험한 꼴을 당하곤 했다. 낭만 여주인의 덩치도 실하지만 남편의 덩치는 남산만하다. 주먹도 타이슨 비슷하게 크다. 한 방이면 시인은 기절 아니면 졸도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타이슨이 나타났다. 약골인 시인은 그 때까지 간이 살아 있었다. 내 간은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깨는 접혀 있었고 타이슨을 한 번 쳐다본 내 머리는 이내 땅을 보고 있었다. 오늘 밤 산 송장이 되어 나갈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술이 다 달아났다.
자리에 앉아 이차저차 이야기를 들은 타이슨의 주먹이 잠깐 벌벌 떨었다. 아마 독한 소주 몇 잔이 들어갔으면 타이슨의 주먹이 정확하게 시인의 얼굴을 강타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여자는 술이 들어가 간이 나갔다 들어왔다 했지만 타이슨은 이성이 살아 있었다. 주먹을 떨면서 왜 끝까지 참았을까? 그는 아마 고뇌를 했을 것이다. 상대가 누구인가? 시인이요 낭만을 아지트로 삼아온 이 도시의 예술가가 아닌가.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나이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쪽 동네에서는 괄시를 할 수 없는 제법 알려져 있는 인물이 아닌가.
웰터급의 낭만 여주인의 주먹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핵주먹에게 계속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여보, 저 인간 얼굴을 떡이 되게 한 방 날리소!
타이슨은 양반이었다. 여주인은 취했지만 남편은 내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인의 승리? 아니다. 그 날 밤 승리의 월계관을 쓴 주인공은 낭만 여주인의 남편이었다. 타이슨이 핵주먹을 거둔 것은 낭만이라는 찻집의 전통과 예술가라는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던 것이었다. 그 남편도 예술가 못지않은 멋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였다.
포항을 떠난 그와 나
임시직 교사에서 정식 교사가 된 그는 경북 북부의 어느 도시로 발령을 받아 떠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전교조가 깃발을 높이 든 채 출발을 한다. 출발과 동시에 가입을 한 그는 분회장이라는 직책까지 맡는다. 그리고 얼마 후 목이 댕강 날아갔다. 고향의 후배도 그 직책을 맡고 있었고 그 역시 목이 날아갔다. 그런 그들이 그나마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들은 공격수 부인들은 수비수.
그리고 몇 년 후 연세대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어느 잡지사 편집부장으로 있던 고향후배가 간암에 결려 치료를 받고 있다 죽었을 때, 그가 나타났다. 그는 손에 시집을 쥐고 있었다. 시집 발간 때문에 올라왔다가 소식을 듣고 왔다고 했다. 신혼생활은 재미있나? 라고 묻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주말부부라 말할 수 없이 애틋합니다. 하, 듣기 좋네. 너무 좋습니다. 소주 한 잔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소식을 들었다. 복직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새벽, 그는 냉장고 문을 열다 픽 쓰러졌다. 밤을 새워 시를 쓰다 출출해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거나, 아니면 소주 한 잔 하려고 문을 열었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내 추측이다. 그 둘 중의 하나이지만 공통분모가 하나 있었다.
스트레스
그와의 마지막 추억
어느 해 가을. 시내에서 소주를 몇 병 마셨는지 모른다. 남은 사람은 우리 두 사람. 형님, 갑시다. 어디? 송도 내 친구 집에요. 누? 시 쓰는 칠수요. 아, 가가 그 동네에 사나? 예.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었다. 두 사람은 내 누이와 동기였다. 띠! 하고 초인종을 누르자 그가 나타났다. 대문 안과 밖에서 협상에 들어갔다. 실패했다. 밤이 너무 깊어 그랬나. 아니면 술에 떡이 된 사람들을 집안으로 들여놓기가 부담스러워 그랬나. 어쨌든 우리 두 사람은 쫓겨났다. 돌아 나오면서 내가 그랬다. 니도 친구 잘못 사귀었다.
어느 해 여름, 후배와 나는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돈이 있을 리가 만무인 내 앞으로 후배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꺼시야. 아, 형님. 니 돈 있나? 예. 술값이 없다. 좀 두가. 예. 그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게 주었다. 십만 원 정도 됐다. 옆에 있던 후배가 기절초풍을 했다. 히야, 형님 다시 봤니더. 돈을 준 그는 축양장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후배였다. 내 친한 후배의 동생이기도 하고. 그 날 술을 거하게 얻어 먹은 그 후배는 제수 끝에 어느 공기업에 들어가 지금 높은 직책에 있다. 그런 그놈은 이 날 이 때까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결론적으로 내가 사람을 잘못 사귄 것이다. 또 있다. 6년을 나에게 매달린 할렐루야. 그는 지금 모 대학교 정치학 교수가 되어 있다. 나에게 가르침을 많이 받은 그놈도 이 날 이 때껏 코빼기를 안 보이고 있다. 그는 늘 기도를 할 것이다. 저 형님이 내 앞에서 사라져 주기를,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내가 사람을 잘못 사귄 것이다.
갑시다. 어디? 우리 집에요. 마지막 버스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집까지 가는 버스는 없었다. 택시를 탔다.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 너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언덕을 숨이 차게 올라갔다. 가는 도중 동네 점방에 들어가 맥주 네 병과 오징어와 땅콩 한 봉지를 샀는데, 외상이었다.
방 안에 들어와 맥주 네 병을 비웠다. 그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누드화였다. 모델을 놓고 그렸나? 네. 하, 재미 좋았겠는데? 흐흐. 사진재이들과 그림재이들은 보고 싶은 거 보면서 찍고 그래가 좋아. 흐흐.
내 눈을 기절시킨 사건은 그 다음 날 새벽이었다. 맥주 네 병을 마신 뒤끝이라 방광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화장실로 가 오줌을 비우고 나오다 하! 하고 숨을 멈추었다. 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저 세계는 꿈일까, 현실일까? 무릉도원이었다. 얇은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더넓은 호수가 바로 화장실 앞에 턱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내 발 밑에서 철썩 파도가 쳤다. 아, 입이 쩍 벌어졌다.
하!
뒷이야기-오후 두시에 한국형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어느 단체의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가야 한다. 다음 이야기는 흥이 나면 쓴다. 그는 한국형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고, 나는 혁명만이 살길이다! 를 외치고 있다. 일단은 만나 보자. 이단과 삼단은 그 다음이다. 2012104도노강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