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다

오주관 2013. 8. 2. 12:44

 

 

휴가여행

백담사나 서울의 여러 산을 가고 오를 때마다 한라산과 지리산 그리고 설악산을 떠올리곤 했다. 과연 오를 수 있을까? 2011년 5월 제주도에 갔을 때 백록담을 오르고 싶었지만 코스가 달라 오르지 못했다. 윗세오름에서 백록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은 2010년 5월에 둘레길만 걸어보았다. 천왕봉은 언감생심. 함양 어느 둘레길 쉼터에서 바라본 천왕봉. 그윽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그 때 그곳 쉼터에서 마신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김치가 아직도 아련하게 혀끝에 남아 있다. 맛이 탁월했다. 솔직히 유명 프랜차이점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다.

 

2013년 7월에 찾은 속초. 바다는 푸른색이 아닌 회색이었다. 어느 배우가 떠올랐다. 적십자병원 행려병자실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그. 그의 마지막 소원이 속초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속초바다

우리가 찾은 7월의 속초바다는 끈적끈적했다. 대포동에서 청학동 갯배까지 걸은 우리는 설악산으로 갔다. 하지만 신흥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산을 타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나는 신발 하나만 빼면 등산을 해도 괜찮았지만 옆지기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외출복 차림이었다. 신흥사 앞 계곡에 내려가 발을 담그는 것을 끝으로 설악산을 마감했다.

 

용대리에서 일박

다음날 찾은 용대리. 계곡 옆에 방을 잡은 우리는 계곡에 내려가 그해 여름처럼 소맥을 비웠다. 바닷가와 달리 용대리는 쾌적했다. 바람도, 계곡물도. 피부에 와 닿는 공기도 시원했다.

 

백담사로 가다

다음날 아침 라면에 햇밥을 말아먹은 우리는 용대리에서 떠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갔다. 너무 자주 찾아 미안한 백담사. 날씨는 맑고 깨끗했다. 서늘했다. 걷자. 백담사 계곡의 그 많은 돌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쌓은 탑도 없었다. 여름에 내린 비에 의해 쓸려간 모양이었다.

 

숲은 사람을 살린다. 거짓말이 아니다. 조금 걷자 머릿속이 시원해져왔다. 뿐만 아니라 몸도 금방 반응을 했다. 깨끗한 산소 덕분인지 걸어도 몸이 피곤하지 않았다. 자연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나무에 취하고 산소에 취해 걷다보니 수렴대피소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산장이었다. 등산객들이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 버너가 있을 리 만무인 우리는 구경만 했다. 어느 부부는 서울에서 내려왔는지 라면을 먹으면서 사이사이 장수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의 깊은 맛, 아는 사람은 안다.

 

가자. 또 걸었다. 처음 와본 낯선 풍경이 우리를 압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 좋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걷다 보니 영세암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약수를 채우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봉정암으로 가는 길목을 만났다.

 

 

 

낯선 풍경들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봉정암에 갈래? 지금 가지 않으면 못 갈 것 같았다. 네, 갑시다. 다리가 부실한 옆지기가 혼쾌히 승낙했다. 봉정암까지 우리 두 사람을 유혹한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기암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풍경,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 그리고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우리의 눈을 취하게 만들었다. 장수막걸리를 마시지 않아도 취해 있었다.

 

메모리카드를 넣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가지고 온 사진기. 처음이었다. 할 수 없이 옆지기 핸드폰으로 계곡의 절경들을 담았다.

 

 

 

 

봉정암

봉정암을 찾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기도를 하기 위해 온 신도들과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하룻밤 쉬어가는 등산객들이 그들이다. 욕심이 발동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봉정암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대청봉에 갈래? 대청봉보다 백담사가 더 멀었다. 네, 갑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다음 일은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퇴짜를 맞았다. 말만 잘하면 절에서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봉정암에서 하룻밤 자기 위해서는 필히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게 끝이다. 예약을 한 그날 봉정암에 와 사실을 확인하고 돈을 내면 끝난다. 잠자리를 제공받고 저녁과 아침 그리고 떠날 때 주먹밥까지 얻어간다.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는 혹시나 싶어 도전을 해보았지만 퇴짜를 맞았다. 옆지기가 준비된 원고도 없이 다가가 이실직고를 하는 바람에 노 땡큐!. 다음은 내가 나설 수밖에. 목탁만 들면 반야심경 정도는 암송할 수 있는 내가 아닌가. 가진 돈이라고 이만 원이 전부인 돈을 꺼내 쥐고 두 분 스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말했다.

 

스님, 사실 내일 대청봉에 가기 위해 왔습니다. 오늘밤 봉정암에서 하룻밤 묵고 가려고 하는데 가능합니까?

등산객들은 안 받습니다. 등산객들은 소청산장에 가십시오.

 

허락을 받은 자들과 허락을 못 받은 자들의 명암은 거기에서 갈린다. 할 수 없이 봉정암 약수를 빈 통에 가득 담고 소청산장으로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소청산장의 과거와현재

 

소청산장

불행은 계속 이어진다. 소청산장에 도착하니 등산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취사실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는 파와 고기를 구워 먹는 파들이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일단 배낭과 스틱 대신 잡은 나무 작대기 네 개를 취사실 한구석에 놓고 전망대로 나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산장 아래의 풍경을 감상했다. 우리가 힘들게 올라온 그 계곡들과 봉정암의 일부가 안개 사이로 보였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잠시 후 방을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에 갔다. 다시 이실직고를 했다. 어떻게 오다 보니 얼떨결에 이곳까지 왔습니다. 혹시 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밤에 예약을 한 사람들 중에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배가 고팠다. 카드를 쓸 수 없었다. 가진 돈은 이만 원. 햇밥 두 개, 라면 하나, 마늘참치 하나. 고기 굽는 파들을 등에 진 채 데크에 앉은 우리는 고픈 배를 채웠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햇밥을 먹어치운 나는 옆지기에게 주문했다. 간헐적 단식이라 생각하고 넘기자. 그럽시다. 위에 기별이 안 갔는지 배가 꼬르륵했다. 라면 먹을까요? 생라면을 먹자는 이야기다. 응.

 

라면을 반 정도 먹은 우리는 돌아앉았다. 우리 맞은편의 두 사내는 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고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잠시 후 고기를 다 구웠는지 두 손을 모아 기도에 들어갔다. 뭐라고뭐라고 기도를 마친 두 사람은 구은 쇠고기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쇠고기로 배를 채운 그들이 이번에는 거무튀튀한 진공포장을 뜯어 꿇는 물에 집어넣더니 금방 고기를 건져 아주 맛있게 뼈를 발라가며 먹었다. 뼈를 갈라내는 걸 보아 닭고기인 것 같았다. 묵돌이네. 그들 옆에는 소세지를 구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오른쪽에는 이십대 전후의 아들 둘(큰아들은 우리와 안면이 있다. 계곡 중간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올라왔다 약간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다)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가 역시 얇게 썬 쇠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 지글지글 굽기 시작했다. 굽기가 바쁘게 고기를 먹어치우는 두 아들. 세 사람이 먹은 양이 십인 분은 넘지 싶었다. 고기를 다 먹은 그들은 이번에는 라면을 끓여 보라는 듯이 입을 벌려가며 집어넣었다. 하, 몸은 말랐는데 많이 먹네!

 

옆지기는 조금 전부터 다리가 아픈지 만지고 있었다. 아프나? 네. 오늘 우리가 얼마를 걸었나? 장장 12킬로미터였다. 옆지기는 처음일 것이다. 기적이다. 나는 옆지기의 다리를 만져주었다. 그 때 사내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할렐루야였다. 우리 맞은편에 앉더니 액체파스를 옆지기에게 바르라고 내밀었다. 조금 전에 사내들이 바르던 그 액체파스였다. 사내가 액채파스를 짜 내밀자 할 수 없이 옆지기가 손바닥에 받아 다리에 발랐다. 할렐루야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얼굴이 너무 잘 생겨 왔습니다. 그렇게 초를 친 사내가 내 나이까지 두드려 맞추면서 본격적으로 약을 팔기 시작했다. 사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보석상이었다. 오늘 새벽, 새벽기도까지 마치고 오색에서 올라와 대청봉을 알현하고 조금 전에 내려왔다. 이곳 산장에서 일박하고 내일 백담사로 내려간다. 그렇게 포문을 연 사내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름 석 자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이박사를 언급했고, 정박사를 언급했고, 그리고 김박사를 언급하더니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때까지의 자신은 술독에 빠져 지냈고 방황도 많이 한 개망나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또 하느님을 직접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발견하게 되었다며 입에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많이 들은 레퍼토리였다.

 

 

  [설악산]-2 소청산장(

 

열변을 토한 사내

사내는 다시 한 번 똑똑한 이박사를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의 딸을 소개했다. 이박사가 하느님을 영접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딸 때문이었다. 내가 물었다. 선생, 그래서 그 딸이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죽었잖습니까? 그가 말했다. 비록 몸은 땅으로 갔지만 영혼은 천국으로 갔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물어봅시다. 이 박사는 자신의 딸이 죽어 천국으로 가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딸이 실명에서 벗어나고 그리고 암에서도 해방이 되어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했을까요? 사내는 말머리를 돌려 하느님을 만나면 크나큰 축복이 오고,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고 말꼬리를 이어나갔다. 어느 교회 나갑니까? 자신이 살고 있는 감리교회라고 했다. 홍도가 떠올랐다. 순복음교회의 용기와 사기꾼 이명박이 다닌 소망교회 곽씨도 떠올라 한마디 보탰더니 사내 왈, 선생님, 어디 목사들을 보고 교회에 나갑니까? 하느님을 보고 나갑니다. 정말일까?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동네 개척교회에 나갈 일이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차를 타고 사기꾼들이 담인인 교회로 가느냐? 교인들은 내남없이 큰 교회를 좋아한다. 그리고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입에 참기름을 바른 사기꾼들을 좋아한다. 가난한 교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양심이 살아 있는 목사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끼리끼리이고,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이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사기꾼인데서 교인들은 위안을 크게 얻는다. 그들을 보면서 죄를 짓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내에게 그만하자고 했다. 이제 동료에게 가 남아 있는 고기나 구워먹으면서 즐겁게 보내십시오. 우리도 쉬어야겠습니다. 전도사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상대방의 말은 안 듣고 자기주장만 줄기차게 입에 거품을 문 채 내뱉는다.

 

하느님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예수의 본질을 알지도 못하면서 약만 파는 그가 보기 싫었다. 야 이 묵돌아, 그렇게 예수를 팔고 하느님을 팔면서 남의 입은 조금도 생각이 안 나더나? 침을 꿀떡 삼키는 우리가 안 보이더나? 물론 채식주의자인 우리가 고기를 먹을 리 없지만. 선생님, 저희들이 구은 고기인데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드셔보십시오. 예수의 정신이 무엇인가? 내 것을 다 주라고 했다, 이 사이비야!

 

예수는 진정 좌파다!

 

예약을 한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빠지는 바람에 우리 두 사람에게 방이 돌아왔다. 206, 207호. 돈이 없는 것을 확인한 직원이 그럼, 다음에 올 기회가 있으면 맛있는 것을 사 오십시오. 할렐루야보다 더 예수의 정신을 닮은 산장지기.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창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옆지기에 의하면 코를 곯면서 자더라고 했다. 다행인 것은 몇몇 사람들도 코를 골더라는 것. 방귀는 안 뀌었나? 안 뀌었어요. 만약 방귀까지 뀌었으면 몇몇은 기절했을지 모른다. 내 방귀는 독하다. 피, 하고 뀌면 골로간다. 어쨌든 새벽에 일어나 밖을 나가자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남은 돈으로 판초를 샀다. 이제 남은 전 재산은 5천 원. 다행히 한 시간 후에 비가 그쳤다. 가자, 대청봉으로! 시계는 6시였다. 

 

 

 

설악산 대청봉 일출과

 

대청봉 정상

7월 31일 아침 6시 30분. 여름 아침, 추워서 몸을 개 떨듯이 떨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청봉을 지나 본격적으로 대청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안개는 또 얼마나 자욱하게 끼었는지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는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니 전부 판초를 입고 있었다. 몸을 떨면서 옆지기에게 판초를 입자고 했다. 너무 추워 몸이 이상하다. 입으세요! 입었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비닐이 급감하는 내 체온을 막아주었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나니 한결 몸이 나아졌다. 그러고 보니 40년 만에 오르는 대청봉이었다. 감동, 감격이 온몸을 어루만졌다. 하, 대청봉! 드디어 올랐다. 바람은 사람을 날아가게 만들었다. 얼마나 바람이 거센지 판초가 벗겨질 정도로 세차게 불고 있었다.

 

솔직히 나보다 옆지기가 더 돋보였다. 나는 원래 머슴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다치지도 않고. 그해 겨울 서울에서 포항까지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어도 거뜬했다. 새벽에 일어나 김밥 하나에 식초 한 컵만 마시면 끝이었다. 그리고는 걷고 걸었다. 그런데 옆지기 몸은 나와는 반대였다. 조금만 걸으면 내 손을 잡는다. 평지를 걷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대청봉을 오른다는 것은 모험 중에 모험이다. 식구들 중에 대청봉을 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설악산 한계령코스 등

 

하산, 그리고 길을 잃다

감동과 감격을 가슴 속에 묻고 우리는 하산을 했다. 이제 어디로 가느냐? 한계령이냐, 비선대냐, 아니면 백담사냐? 중청산장에 내려와 잠시 쉬면서 직원에게 옆지기가 물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비선대는 풍경이 제일 좋고, 한계령은 3시간, 오색은 4시간, 백담사는 6시간 정도 걸립니다. 한계령으로 내려갈래? 비선대는 속초 시내를 거쳐야 하고, 백담사는 너무 멀고, 한계령으로 내려가 한계령휴게소에서 버스를 타자. 합의를 본 우리는 한계령 코스로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는 무난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한계령과 오색은 시간은 짧지만 길이 악산이라 쳬력소모가 크다고 했다. 그런데 한 시간 걸어보니 걸을 만했다. 잠시 후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그도 초행길이라 했다. 지난밤에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사내가 허허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퇴짜를 맞습니다. 기도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게 운을 떼고 이야기를 하면 잘 수 있습니다. 사내는 어젯밤 봉정암에서 잤다고 했다. 진실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거짓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그러면서 건빵 한 봉지와 육포 세 봉지를 건네주었다. 건빵은 받고 육포는 받지 않았다. 할렐루야보다 더 인간미가 있는 사내였다.

 

건빵 한 봉지를 남겨주고 사내는 먼저 내려갔다. 우리도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면서 나는 옆지기에게 수시로 기압을 주었다. 조심! 정신일도! 옆지기는 발목이 약하다. 다행히 걷기 전 발목돌리기를 했다고 했다. 매사가 조심뿐이다. 이곳에서 다쳐 헬기가 뜨면 백 몇 십만 원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정신일도! 두 번 살짝 발목을 삐었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그렇게 내려가다 우리는 암흑을 만났다. 길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다. 우리 앞에 내려간 사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수상한 게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올라오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없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진퇴양난이었다. 이 코스는 아니구나! 고민 끝에 돌아가기로 했다. 백담사로 내려가자. 그럽시다. 두 시간을 한계령에서 허비했다.

 

 

3. 북구 불자회 봉정암 

 

할렐루야보다 더 고마운 봉정암

다시 갈림길에 온 우리는 두 시간 끝에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다. 소청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없었다. 다시 땀을 흘리며 30분을 걸어 내려가 만난 봉정암. 목이 말랐다. 이미 그곳 약수를 맛본 나는 약수터로 갔고 옆지기는 화장실로 간다며 내려갔다. 봉정암의 약수! 냉장고 물보다 더 시원하다. 벌컥벌컥 두 바가지를 마시고 나자 갈증이 사라졌다. 잠시 후 옆지기도 마셨다. 갈증을 다스리고 나니 이번에는 배고픔이 엄습해왔다. 어젯밤 햇밥 하나를 먹은 게 전부였다. 시계는 11시 20분.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지방을 태우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12킬로미터를 걸어 내려가려면 뭘 넣어야 한다.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궁즉통이라 했다. 그 때 부산에서 기도를 하러 온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뭘 먹으면서 약수터에 왔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아주머니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뭘 먹습니까? 주먹밥인데요. 그래요? 한 아주머니가 취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가면 있습니다. 눈에 불이 들어왔다. 바구니에 진짜 주먹밥과 빵이 있었다. 나는 얼른 주먹밥 두 개를 쥐고 돌아왔다. 옆지기 하나 나 하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먹은 김밥 중에 최고의 김밥이었다. 충무, 마약김밥은 저리가라였다. 찰밥, 깨소금, 참기름, 김이 전부였다. 하, 눈이 혼절을 하는 것 같았고 위가 쿵! 하고 감동의 북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맛이 기가 막혔다. 옆지기를 보냈다. 다시 두 개를 가져왔다. 잠시 후 염치불구하고 내가 두 개를 더 가지고 왔다. 합이 네 개.

 

 

 

 

감동은 길수록 좋다. 잠시 후 부산 금정에서 온 팀들이 기도처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점심공양하러 갑시다. 어디요? 저기요. 하, 가자. 뷔페식이었다. 큰 그릇에 찰밥을 담았고 미역국을 담았고 그리고 고춧가루에 무친 싱싱한 오이를 네 개 정도 넣었다. 뒷마루에 걸터앉아 미역국을 먹는데 맛이 참으로 오묘했다. 짜지 않고 심심했다. 국물까지 전부 비웠다. 나트륨이 많은 칼국수와 짬뽕은 게임이 안 된다. 봉정암의 미역국은 간이 심심하다. 그래서 더 맛이 깊고 담백했다.

 

고백

죽기 전에, 반전이 오지 않는 한, 나에게 할렐루야는 없다. 자기 입만, 자기 가족들 입만 아는 할렐루야. 나라가 두 쪽이 나도 그들은 자신의 안위만 괜찮으면 만사가 오케이다.

 

기복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기복은 신앙이 될 수는 있어도 종교는 될 수 없다

전체가 사는 종교여야 하고 전체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한다

 

뒷이야기-백담사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악수를 했다. 당신은 이제 저질체력이 아니다. 한라산도 갈 수 있고, 지리산도 갈 수 있다. 정말 고맙다. 아니에요, 당신 덕택이에요. 내 가방을 당신 배낭 속에 넣어 짊어졌잖아요. 아니다. 무탈하게 이곳까지 내려와 준 당신이 너무 고맙다. 백담사 정류장에서 옆지기는 맥주 한 병을, 나는 대박 막걸리를 마시면서 3박 4일의 휴가를 마무리했다.201381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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