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해발 120고지에 둥지를 틀다

오주관 2015. 10. 13. 22:30

 

 

해발 120고지에 새로 둥지를 틀다

원래는 북한산 백운대에 둥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를 만들어 힘들게 백운대를 올라온 등산객들을 상대로 따뜻한 커피나 국수를 팔면서 살 생각이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았다. 수락산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애인 빽이면 모를까 장관빽으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는 것이었다. 8백고지가 안 되면 그럼 해발을 낮추자. 해서 120고지로 찾았다.

 

 

 

 

120고지 카페

여러 나날을 고뇌와 고민으로 보냈다. 로댕이 되었을 때, 이제 나는 정점에 다다라 있다. 깔딱고개가 아닌 정상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60여 평생 내가 닦은 무예를 이제 이 세상에 선을 보여야 한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내 삶은 지난했다. 옆지기는 그랬다. 당신이 만약 학계로 진출했으면 큰 학자가 되었을 겁니다. 아니면 중이 되었으면 큰 스님이 되었을 겁니다. 대전의 큰 어머니도 종종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동세야, 저 조카가 중이 되었으면 큰 스님이 되었을 거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존경을 해라. 그냥 고기가 싫어서 채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과 건강 그리고 동물을 생각하는 그 마음 끝에 채식을 한다. 더구나 나는 비건이다. 완전식품이라고 선전하고 있고, 그리고 그렇게 알고 있는 우유도 안 먹는다. 비건은 솔직히 공산주의자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 비건은 채식을 넘어 이 지구의 미래까지 내다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1식 3찬 정도를 고집하고 있다. 반찬이 많으면 내 양심이 아프다.

 

지금 삼성병원에서 의식불명인 이건희 회장을 보라. 그는 살아 있을 때 특A만 먹은 사람이다. 거위 간도 프랑스에서 공수를 해온 싱싱한 특A만 먹었고(특A 거위간이 과연 싱싱할까? 프랑스에서 거위를 잡으면 간을 급랭을 시키나, 생으로 가져오나?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비행장에서 다시 헬기로 호텔연회장까지 직송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프랑스에서 한국의 호텔까지 몇 시간이 걸리나? 싱싱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포도주도 프랑스에서 공수를 해온 특A 몇 천만 원짜리 와인을 마셨다. 이건희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직급에 따라 A, B, C를 먹었고 마셨다. 상상밖이다. 우리나라 잔치집에 차별이 있나? 당신은 부주를 10만 원 했으니 저쪽 상석에 앉고, 당신은 5만 원 했으니 그 밑에 앉고, 당신은 꼴에 2만 원을 했으니 천막 입구에 앉아라. 그렇지 않잖아! 부주가 많고 적고를 떠나 한 상을 받아 먹잖아. 부주를 안 해도 한상을 주는 게 우리네의 미풍양속이자 인심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황제는 자신의 생일잔치를 신라호텔에서 그렇게 했다. 그 때 국보급 가수인 나훈아 씨를 초대한 모양이다. 어이 나씨, 내 생일잔치에 와 노래 몇 곡 부르소. 몇 곡 신나게 부르면 4천만 원 줄게. 일없어! 당신이 정말 내 노래를 좋아하고 듣고 싶으면 내 콘서트장에 와서 들으시오! 국보급은 이렇게 다르다. 사족이지만 국보급인 나훈아 조용필 씨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훈아 씨 모창을 하는 가수의 집이 나훈아 씨 별장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 간 이금희는 사회를 보고 25백만 원 정도 챙겼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나와 내 친구 학이

옛날, 동네잔치집에 빈 손으로 가 거나하게 한 상을 받아 배를 채우고 나오곤 했던 나와 내 친구 학이가(학이는 돼지고기 비계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리고 키는 나보다 더 크면서 겁이 많았고, 장가는 지독하게 일찍 간 학이. 중동에 갔다온 학이를 못 만난 지 30년이 넘는다. 지금 부산에 살고 있고, 옛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노조위원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은퇴했겠지. 겁이 많은 학이가 노조위원장이라니? 고향의 중학교 시절의 여름 밤, 동네 초입의 다리에 피서를 간 우리. 나는 다리 난간 위에 올라가 다리 하나를 들어 묘기를 한다. 임마 니, 이런 거 할 줄 아나? 라고 하면 옆의 학이는 몸을 떨면서 임마, 또 지랄을 턴다. 빨리 내려오너라! 씨발놈, 니, 그러다가 떨어지면 다리 뿔아진다! 빨리 내려오너라! 수산댁 막내인 내 친구 학이) 만약 이건희 생일잔치집에 초대를 받아 가 빈손으로 앉아 있는 걸 황제가 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지랄이 풍년을 만났네! 여봐라, 저 인간들을 당장 집 밖으로 내쫓아라! 남의 생일잔치집에 부주도 없이 빈손으로 오다니! 황제폐하, 저 두 놈 중에 한 놈이 평소에 우리 황제폐하 재산은 황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 것이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뭐가 어째고 어째! 저런 좌파빨갱이 새끼를 봤나? 아이고, 내 뒷골! 아이고, 나 죽네! 마, 법만 없으면 저놈을... 폐하, 고정하십시오. 이런 망할! 쫓겨난 나와 학이는 그럼 곱게 나왔을까? 씨발좆팔 생각나는 모든 육두문자를 내지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잔치집을 향해 팽! 하고 코를 풀면서 한 상 얻어먹지 못한 분노를 다스리며 빠져 나왔을 것이다.

 

특A만 먹고 산 이건희는 어떻게 픽 쓰러졌나? 어느 날 저녁,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억! 하고 혈관이 막혀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순천향병원에 실려갔고, 그리고 그 다음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자기 병원인 삼성병원에 실려갔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식물인간이 되어 있다. 내가 그만큼 현미밥이 아니면 꽁보리밥에 시래기국을 열심히 먹어야 한다고 연설을 했지만 듣지를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괴물이다. 그 괴물이 삼성그룹에서는 황제였다. 자고로 음식은 특A를 먹는 것이 아니라, 악식을 먹어야 한다. 보리밥에 된장과 김치 그리고 시래기를 먹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과 당신 가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지구와 기후를 생각했을 때, 이제 소사육은 사라져야 한다. 가난한 옛날로 돌아가 설이나 명절이나 생일 때 쇠고기 국을 한번씩 먹고 나머지 날은 먹지 말아야 한다. 소들이 되새김질을 하면서 내뿜는 담배연기가 아니라 하품이 자동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더 고약하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묵돌이가 되면 이 지구는 그만큼 빨리 사망한다.

 

 

 

 

녹두장군 전봉준

1894년과 지금 2015년, 무엇이 다르나? 1%와 99%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진 자들의 탐욕은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너무 못 가져 절망상태에 빠져 있다. 비단 대한민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가 같은 주제와 고민과 고뇌를 안고 있다.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한번밖에 못 산다. 두 번 정도만 산다고 하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사기꾼이 한 번 되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을 멋있게 다 말아먹어버리고 싶다. 전 세계의 부를 내 세 치 혀로 몽땅 말아먹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한번밖에 못 살기 때문에 사기꾼으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잡은 책. 그 책에서 얻은 주제가 값있게 살다 가자!. 사욕이 아닌 공공의 건강한 삶을 위해 내 존재를 던지자!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체 게바라를 만난 건 축복이다. 휴머니스트. 열정, 전체의 삶, 미래, 탐욕, 소수가 아닌 전체를 끌어안은 진정한 지도자. 체 게바라가 본 중남미와 제국주의. 부패한 권력과 제국주의. 가난한 나라에 빨대를 꽂은 채 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그 현장을 목격한 체 게바라는 삶의 방향을 바꾼다. 의대생에서 혁명가로. 사실 혁명가로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앎의 궁극은 실천이다.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지식을 살아 있는 지식으로 바꾸는 사람은 극에 극소수다. 그래서 혁명의 그 길은 어렵고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체 게바라야말로 이 세계의 진정한 혁명가다.

 

 

 

 

99%를 끌어안은 룰라

초등학교 중퇴자, 선반노동자,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가난한 아이, 영어를 모르는 아이, 금속노조위원장, 그는 비록 가난해 초등학교도 못 나온 중퇴자였지만 그의 뜨거운 가슴 속엔 항상 꿈이 있었다. 2002년 드디어 대통령 당선증을 받은 룰라. 그는 인구의 4분의 1이 겪는 빈곤과 국가 부채를 떠안는다. 룰라가 대통령이 되자 브라질을 떠나는 해외자본들이 줄을 잇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라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빈민촌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우선이다. 

 

취임 첫해 2003년 빈민 350만 명에게 분배하는 국가예산.

거지에게 베푸는 동냥이다!

 

조지 소르스는 브라질은 머지않아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룰라는 달랐다.

빈민을 끌어안은 룰라의 그 정책 때문에

빈민 2000 만 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했다!

 

거물과 거인은 학력별무다.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김유신장군을 보라!

세종대왕은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이 아니다,

이순신장군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다,

3국을 통일시킨 김유신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다.

또 있다, 현대를 일으킨 정주영 왕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 아닌

초등학교 중퇴자다.

 

룰라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유명한 말,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

   

결국, 룰라 임기 8년 동안 브라질은

국가 부채를 모두 해결하고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다.  

 

그의 퇴임연설 중,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고픈 배를 움켜쥔 채 망명지의 영국에서 부와 경제의 불평등에 매달린 뛰어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마르크스의 관상을 보면 빈상이 아니라 억만장자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부자가 아닌, 가족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철학자였다. 그 가난의 뿌리에서 그의 역작인 자본이 태어난다. 한마디로 난해하고, 읽기가 버겨운 책이다. 그의 자본을 인내를 하면서 다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이 다섯 권의 방대한 책을 한권으로 압축시켰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매달려 마르크스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메시지를 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정리해보면 자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와 경제의 불평등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1%와 99%의 말도 안 되는 자본의 쏠림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가 남긴 부와 경제의 불평등의 그 근원을 푸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물통이라면 우리는 그 자물통을 푸는 열쇠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만들어 보고 싶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가능하다. 일평생 한 트럭 반의 책을 팠으면 답을 이제 내놓아야 한다. 그게 공부를 한 값이다.

 

 

 

 

120고지 아지트에서 15분 걸어 내려가면 호수다

내 아지트에서 걸어 1분이면 숲이다. 숲에서 걸어 15분이면 저 호수를 만난다. 호수가에 앉아 명상에 잠기면 세상의 근심걱정이 잠시나마 멀어진다. 추석날 밤 나는 저 호수에서 별을 보았다. 아, 서울에서도 별을 볼 수 있구나! 옆지기가 별을 볼 수 없는 건 빛 때문이다. 빛만 없으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별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구나. 어릴 때 고향에서 보았던 그 별빛을 보면서 나는 다짐을 한다. 다시 한번 정신을 일도해 21세기의 주제를 풀자. 지금까지 그만큼 팠으면 이제 결과가 나와야 한다. 학자도 큰 스님도 못 된 나는 그렇다면 혁명가의 길로 가야 한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판을 갈아야 한다. 지금 그대로의 판으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파괴는 창조다!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 세계는

 

1%가 아닌 99%가 어깨동무를 한 채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세상이다!

 

 

 

 

내 아지트에서 걸어 10분이면 만나는 운동장

며칠 전 밤 운동장에 간 나는 벤치에 앉아 동네 축구동호회원들이 차는 축구를 보았다. 기가 막히게 잘 찼다. 벤치에 앉은 나는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전반전에만 3대 3으로 끝이 났다. 양팀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둘 정도 보였다. 아, 그래서 감독들이 보면 단번에 알아보는구나. 마치 국가 대표팀을 보는 듯했다. 그래, 요 며칠 친일파 후손인 박근혜와 김무송의 돌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당신들 경기를 보면서 많이 푼다. 고맙다! 저렇게 차기까지 저들이 흘린 땀은 또 얼마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 인생을 놓고 보면 몇 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

 

도전이냐

관전이냐

아니면 포기이냐.

 

나에게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해 나는 기꺼이 도전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끝없는 양보와 희생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양보와 희생은 없다. 오로지 내 몫만 남았을 뿐이다. 그 꿈을 향해 내 남은 존재를 다 태울 생각이다. 내 꿈은, 한반도를 총 한방 쏘지 않고 통일시키는 것이다.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면 마침내 막혀 있었던 38선을 넘어 몽골과 저 시베리아의 광활한 대지를 가로질러 유럽의 중심까지 거침없이 달리고 달릴 것이다. 그 설계도를 나는 가지고 있다. 동북아와 아시아와 인도를 하나로 아우르는 대 프로젝트를 밤잠을 설쳐가며 설계도를 그리고 그려 마침내 완성을 시켰다.   

 

하나 이상한 점은, 내가 만든 설계도를 정치권의 어느 누구도 덥썩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행이면서, 다행이다. 그래, 이 설계도는 내 것이다. 어느 누구 것도 아닌 내 것이다. 아무도 품지 않은 것은, 겁이 나고 그리고 그릇이 작아서이다. 내 설계도를 품을 가슴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뒷이야기-내 1차 목표는 일단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야지 하는 꿈은 한번도 없었다.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다. 그리고 하나는 1%가 아닌 99%의 삶이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를 통일시키기 위해 내 지난 삶은 그렇게 가시밭길을 걸어온 것 같다. 따지고 보면, 1%의 삶을 개혁해 99%의 건강한 삶을 설계하는데 내 지난 세월은 그렇게 보내진 것 같다. 고백하지만, 내 지난 삶은 지난했고, 가난했고, 절망의 나날이었고, 그리고 고통과 패배의 나날이었다. 이제 남은 그 꿈을 향해 나는 앞으로, 미래로 위풍당당 나아갈 것이다. 20151013해발120고지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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