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017년1월 11일 포항에 가다

오주관 2017. 1. 13. 15:56



10일 아침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규 모친상 알림. 포항 세명기독병원 영안실. 12일 발인. 그 문자를 보자 포항 앞바다와 그리고 동해의 거센 파도가 철썩 밀려와 내 가슴을 쳤다. 그 해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고 홀로 남은 나는 여남에 방을 얻어 좀 살았다. 여남은 바닷가 동네다. 그 마을에서 나는 밤마다 멸치 안주로 포항 막걸리를 마셨다. 여남 앞바다에서 잡은 멸치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멸치 중에 넘버원이었다. 꼬장에 찍어 먹으면 맵고 달았다. 


오늘 문자가 왔는데, 규 모친이 돌아가셨다. 12일이 발인인데, 가봐야겠다. 가세요, 가봐야지요. 문자까지 왔는데 안 갈 수가 없다. 그것도 규 모친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설 전에 설악산을 한 번 다녀올 생각이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한 안개를 뽑아내기 위해. 탄핵의 열풍은 나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대선이라는 꿈을 접을 것, 그동안 머리를 싸맨 채 만든 두 가지의 사업 프로젝트를 이제 실행에 옮길 것. 기로에 선 나는 번민의 나날을 보내며 두 가지의 주제와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촛불집회에는 늘 나가 촛불을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든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애플의 스트브잡스가 어느 날 밤, 동료직원들에게 손을 펴보이며 말했다.


"이 안에 다 집어넣어라!"

"뭘 집어넣어?"

"이 안에 컴퓨터와 음악은 물론이고, 이 세계를 다 집어넣어라."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애풀의 아이폰이다. 내가 만든 프로젝트도 4차산업의 핵심이다. 1. 앱 하나에 다 들어 있다. 앱을 열고 들어가면 신비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가칭 친재공이다. 2. 다른 하나는 식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병을 예방하고 구하고 낫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내 프로젝트를 만약 빌게이츠와 손정의 회장이 본다면 틀림없이 투자를 할 것이다. 맞아요, 투자할 거예요. 빌게이츠는 몇 번에 투자하겠노? 2번 식프로젝트. 딩동댕! 손정의 회장은? 1번. 딩동댕! 주급 5만 원을 받을 때, 내가 만든 프로젝트 하나는 아직 내 비밀창고에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든 게 5가지다. 이제 두 개를 꺼내 올해 안에 실행시켜야 한다.




탄핵의 거센 열풍


탄핵의 거센 열풍만 없었으면 다음 대선은 올 12월이다. 그 때를 준비해 나는 줄기차게 정책을 개발했다. 내가 만든 정책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정책으로!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인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 정책개발에 나섰다.


1. 정치민주화

2. 경제민주화

3. 교육민주화

4. 복지민주화

5.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정책을 만든 나는, 당원들에게 심판을 받기 위해 연설문 작성에 들어갔다. 여름 내내 그 연설문을 녹음하는데 비지땀을 흘리곤 했다. 나는 지금도 주장한다. 대선 후보들, 시험을 보아 뽑자. 그리고 정책을 가지고 뽑자.


대선이라는 플랜과 사업 플랜을 가지고 나는 여름을 보냈고, 가을을 보냈고, 그리고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박근혜와 최순실의 부정과 부패 게이트가 정점을 치달았다. 해서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오주관의 혁명-더 나은 미래를 위해, 라는 청사진을 어떻게 하나?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한 발 후퇴다!


탄핵이 헌재에서 통과가 되면 대선은 12월이 아닌 다가오는 춘삼월에 치루어질 것이다.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확률은 0,000001%도 안 된다. 탄핵이 용인이 될 확률은 99,999999%다.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자마자 힘주어 강조를 했다. 박근혜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다. 그리고 박근혜는 고등학교 학생보다 실력이 못하다. 자격도 실력도 안 되기 때문에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그래서 사기꾼 최태민이 나타났고, 그리고 사기꾼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이 나타난 것이었다. 최태민, 최순실, 정윤회, 김기춘, 우병우, 친박들에 둘러싸인 박근혜, 부패할 수밖에 없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악마들을 대한민국 밖으로 반드시 쫓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졍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2017년 대선은 이제 포기다."

"그래요?"

"응. 그 대신 두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섭섭하지 않으세요?"

"다음에 도전을 하지. 내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해 겨울, 7박 8일을 걸어 도착한 포항 북부해수욕장. 팔이 저절로 올라갔다! 만세!


포항에 도착하다


4시간 30분을 달려 도착을 한 포항. 너무 오랜만에 온 곳이라 가방을 멘 채 걸었다. 병원위치는 대충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들어서 있었다. 상전벽해라고 전에 없던 건물들을 보느라고 넋이 좀 나가 있었다. 서울촌놈이 포항시에 와 눈이 호강을 하고 있었다. 이걸 다 공짜로 보네.


장례식장 2층에 올라가니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내 중학교 동창이 하나 있고, 그 동창생 동생이 나와 친한 규이다. 형보다 더 친하다. 고향에 있을 때, 고향 도서관과 문집을 만들 때 의기투합을 한 후배들 중 하나였다. 고향의 도서관에 있는 도서관 역사를 기록한 책을 보면, 오씨는 우리 도서관을 위해 혁혁하게 공을 세운 사람. 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내 동창인 인은 두 달 전 외항선을 타고 나가고 없다고 했다. 그는 외항선 선장이다. 대신 동생 규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규와 형의 아들, 친구 아내가 나를 맞이했다. 어머니가 병을 앓으셨나? 3년 전부터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셨고, 요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한 번 오면 한 번은 땅으로 가야 되는데, 너무 슬퍼하지는 마라. 호상이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해 겨울, 서울에서 포항까지 7박 8일 배낭여행을 할 때, 8일째 되는 날 안강에 도착하자 후배 규가 휴게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같이 북부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다


밖에 나오니 어어, 친구야, 하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안 화백이고, 두 친구는 낯설었다. 안화백이 이 친구는 경찰출신 상수이고, 이 친구는 거시기 친구라고 했다. 이름을 들었지만 금방 까먹었다. 아, 그래, 맞다. 중학교 때 별명이 고릴라인 상수가 경찰관이 되었다는 소식은 안화백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하, 중학교 졸업을 하고 처음 보는 두 친구였다.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이었고, 김천이 고향이었다. 그 때 안은 미술선생으로부터 분에 넘치게 총애를 받았다. 그림에 관한 한 우리 기수들 중 어느 누구도 안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안의 그림을 본 나는 안은 천재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무를 그렸는데 나뭇가지를 둥그렇게 네 개를 그려놓았다. 나는 그런 나뭇가지를 처음 보았다. 히야, 나뭇가지를 저렇게도 그리구나? 저놈은 천재다. 천재이기 때문에 이조직 선생님이 저렇게 총애를 하지! 그래서 내가 어느 날 안에게 안아, 니는 꼭 홍대로 가라, 니는 천재다! 그런 천재 안은 홍대로 가지 않고 수고를 나와 배를 타다 포항제철 협력단지에 취업을 해 전혀 다른 삶을 살다 몇 년 전 퇴직을 했다고 한다. 환경이 무섭다. 환경이 천재를 만들고, 범인을 만든다. 고로 천재와 범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친구 니, 좌파구나!


서울에서 뭐하노, 라고 전직 경찰이 묻기에 파란색으로 한반도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에 한반도 통일연구가 오 아무거시라고 이름이 박혀 있는 명함을 주니, 눈알을 찡그리며 보고는 니 좌파구나! 라고 했다. 좌파로 보이나? 좌파네. 옆에 친구가 와, 좌파가 됐노, 라고 거든다. 경상도에서 좌파는 곧 빨갱이다. 빨갱이는 곧 간첩하고 촌수가 같다. 독재자 박정희가 이렇게 만들었다. 알고 보면 박정희도 군에 있을 때 남로당 총책으로 활약하다 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장군 백선엽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진짜 빨갱이다. 안 화백이 허허 웃는다. 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이 자기 핸드폰을 꺼내 켜더니 사진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퇴직 때 녹조근조훈장을 받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 라고 그 옛날 고릴라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 골수우파인 친구에게 니 좌파의 기준이 뭐고? 라고 물으면 녹조근조훈장을 받은 전직 경찰은 뭐라고 대답을 할까?



                                        그해 겨울의 북부해수욕장. 내 얼굴이 까맣게 탔다. 옆에 있는 친구가 후배 규


경상도에서는 부자간이라도 정치를 논하지 마라!


경상도에서는 부자 간에도 정치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상도는 정치에 관한 한 사고가 딱 굳어 있다. 공자님이 오고, 오바마가 와 건강한 민주주의에 대해 강연을 해도 니거는 처주깨라, 우리는 박정희고, 그리고 박근헤다! 우리 국민들이 어예 밥을 먹고 사는 줄 아나? 우리 대한민국의 보릿고개를 없앤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의 딸 박근혜, 비록 최순실에 속았지만, 박근혜가 돈을 한 푼이라도 묵은 게 있나? 지거 아부지도 깨끗했지만, 박근혜도 돈에 관한 한 깨끗하다! 경상도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정말 그 말이 진실일까? 그렇다면 경상도 아재와 아지매들을 위해 몇 가지만 털어놓는다. 4조원대의 육영재단을 놓고 3남매가 깡패들을 동원해가며 피터지는 골육상잔 끝에 네 사람인가 다섯 사람이 저 세상으로 골로 갔다. 그 4조원대의 육영재단을 누가 물려주었나? 영남대학교는, 기레기들이 설레발을 치며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MBC 문화방송은 도대체 누가 물려주었나? 그리고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사기꾼 최태민의 비밀방에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수백원대의 양도성 예금증권-일명 CD,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부동산과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 등등의 그 어마어마한 재물은? 다 끌어모으면 우리나라 재벌 10위 안에 드는 부자이다. 숨이 차네! 화도 나고! 이제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썩는다! 물은 흘러야 한다.(죽도시장을 지나올 때 본 플래카드, 박근혜 대통령님, 울지 마십시오, 우리가 올라가 대통령님을 위해 싸우겠습니다!)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이망할 무식한놈의 새끼들! 라고 욕을 하면 안 된다. 그냥 조용하게 물러나면 된다. 민주주의를 알려면,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과, 많은 책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장소는 친구 어머니가 돌아간 장례식장이다.


친구야, 밥도 묵고 술도 한잔 하고, 여기 고기도 묵아라. 안 먹는다. 와? 에 또, 채식을 한다. 그럼 지금부터 고기를 묵아라. 안 먹는다. 친구야, 고기도 안 먹는데 살이 찌나? 찐다. 하고는 떡을 하나 집어 삼분의 일 정도 먹으며 내 옆자리에 온 찬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골수우파인 친구 둘과 안화백은 밥을 먹으며 맥주와 소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옆의 후배 규는 중학교 때 학생회장 츨신이다. 지금 서울의 모대학교 정치학 교수로 있는 그놈도 학생회장 출신이다. 그놈이 그해 어느 날 시내에서 만났을 때 '형님, 오늘 제가 월급을 탔습니다. 맛있는 거 많이 드십시오, 제가 사 드리겠습니다.' 신문사 외신부에 있던 후배녀석이 첫월급을 탄 날이었다. 그 자리에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후배 윤도 있었다. 이놈들이 한 때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옆지기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인본주의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나는 얼음과 불이다. 겉은 추운 겨울이지만 속은 불가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하다.  


중풍협회 준회원에서 졸업을 한 후배


니, 손 한번 피아봐라. 아니, 내 손 한번 잡아봐라. 잡았다. 악력이 제법 세었다. 괜찮네? 얼마 전에 노가다 판에 가 일을 했는데 오야지가 나보고 일 잘한다고 칭찬하디더. 말도 괜찮네. 쪼끔 말이 새니더. 새는지 모르겠는데...


그해 여름, 나는 대구 갓바위에 있는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줄땀을 흘리며 갓바위에 올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속으로 고백을 하면서 부처님, 힘이 미치면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가난뱅이라 부주는 없습니다. 양초 하나와 5천 원을 부처님 앞 부주함에 부주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고백을 했다. 부주가 션찮았는지 그해 겨울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해 겨울, 서울에서 포항까지 배낭 여행을 하다


아, 그리고 그해 12월 겨울, 서울에서 배낭 하나를 메고 포항까지 걸었을 때, 이 후배가 마지막 코스인 안강 어느 휴게소에 마중을 나와 나와 함께 포항 북부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살을 에는 그 겨울 고행의 마지막을 나와 함께해준 고마운 후배였다. 갓바위에서 내려오다 땀을 식히기 위해 바위에 앉아 사과 하나를 꺼내 먹으며 포항에 있는 후배 규에게 전화를 했다. 띠디띠 긴 신호음 끝에 여, 여보~세~오 하고 받았다. 이놈이 자다 일어났나? 니 말이 와 글노? 헝~님, 병~ 온에 있니더. 고향 포항에서 자동차부품업을 하다 어느 해 부도를 맞고 삶의 낭떠러지로 추락을 한 후배. 겨우 낭떠러지에서 기어올라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거리를 하나 잡았다. 어느 해 니, 뭐하노? 하고 물으니 삼바리 합니다. 삼바리가 뭐고? 형님 방파제에 가면 파도를 막아주는 삼각형 시멘트 덩어리 있지요, 그게 바로 삼바리인데, 제가 그 삼바리를 제작합니다. 아, 그래? 니는 잘 하겠다. 열정이 있고, 에너지도 있다. 대학교 때 총학생회장에 나갔다 떨어진 경험도 있다. 삼바리를 제작하며 다시 재기를 하는가 했는데, 어느 날 밤 지금까지 자신을 덮고 있는 몹쓸 스트레스와 우환덩어리, 그리고 줄담배가 한꺼번에 후배의 머리를 강타한 모양이었다. 픽, 하고 쓰러졌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고, 중풍이었다. 내가 전화를 했을 때 영남대학교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다. 전화 두껑을 여니 형님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 받았니더. 형님이라 집사람도 받아라 해서 받았습니다.



          포항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한컷. 병원에서 친구들과 후배 사진을 못 찍었다. 나이 탓이다. 돌아서면 아, 한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 만났다. 어버버, 어버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보니, 중풍협회 준회원이었다. 어버버, 하면서 탁자를 가리켰다. 가 앉았다. 앉자 자신의 지금까지 신산스러웠던 삶을 반은 보디랭귀지로 반은 어버버~로 표현을 했다. 임마, 내가 포항에 올 때마다 뭐라 하더노, 그만큼 담배를 끊어라 했나, 안 했나? 그러고 니가 임마 예술가가? 밤에 잠은 와 또 안 자고 줄담배를 피우며 윤이 하고 답도 없는 논설로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보내노? 임마, 그럴 힘 있으면 마누라나 한 번 더 안아줄 것이지 쯧쯧. 그렇게 스트레스에 우환, 그리고 줄담배에 야행성까지 니를 덮쳤는데 중풍이 안 오고 뭐가 오겠노? 이 나이에 중풍협회 회원이 되어 되겠나? 어버버~ 회~회~원~은 아이시더. 요래~ 반 정도~ 힘이~ 안 가니더. 안 가니 준회원이지. 다 안 가면 정회원이고. 신신 당부를 했다. 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규야, 약보다는 식이요, 식보다는 운동이다."

"예, 마, 마~심다." 

"지금부터 채식해라. 절대 고기는 먹지 마라. 현미에 채소로 니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라."

옆에 마누라에게 어버버~ 하며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과일도 많이 먹어라. 또 있다. 이제 담배는 절대 피우면 안 된다. 알았나?"

"아~ 아~알~아~ 심다~"


포항역에서 서울로 돌아오다


장례식장의 벽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골수우파들은 소주를 좀 마셨는지 얼굴이 붉었다. 나는 점퍼를 입었다. 골수우파 하나가 와, 가나? 했다. 그래, 올라간다. 우파 친구 세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1층까지 따라온 후배 규에게 손을 내밀자 내 손을 잡았다. 이제 다 나았네. 니 말도 내가 들을 때는 하자가 없다. 너무 신경쓰지 마라. 그리고 담배는 계속 피우지 마라. 안 피웁니다. 규야, 올해 내가 해야 할 일만 다하고 나면 내년부터 만날 시간이 있을 거다. 건강하고, 운동 많이 해라. 예. 형님도 건강하이소. 5년 만에 만난 후배, 얼굴에 살이 올라 금복주가 되어 있었다. 장례식장을 나온 나는 포항역에서 용산행 6시 20분 KTX 열차를 타고 2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멀고도 가까운 고향, 하지만 지금은 미국보다 더 멀다 나에게는. 나는 지금도 낯모르는 전화가 오면 99% 안 받는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기꾼 이명박이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뒷이야기-내가 정치를 쥔 채 놓지 못하는 것은, 꿈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만 구하는 게 아니라, 전 셰계를 구하고 싶다. 그 플랜을 나는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플랜은 실험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창조란, 파괴다. 파괴가 없으면, 창조는 없다. 전 세계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오늘도, 돈이 없어 집이 없고, 돈이 없어 밥을 굶고,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 죽고,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의 엉터리 구조를 없애고, 막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플랜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오늘도 정치를 놓지 못하고 있다. 5년 후 나는 다시 한 번 정치에 도전을 할 것이다.2017113해발120고지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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