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리산 노고단에 가다

오주관 2017. 5. 7. 14:07






5월 3일 도서관에서 돌아가는 길에 동사무소에 가서 사전 투표를 했다.

싸움닭으로 변한 문재인 후보의 그 말이 내내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돼지흥분제로 친구를 도운 그 죄로 다른 후보들로부터 지금 당장 사퇴하십시오,

라고 공격을 받은 홍럼프가 말 끝마다 종북좌파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가 망합니다!


국민여려분,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늑대가!


야 이놈들아,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마라!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21세기에, 아직도 이념놀이나 하는 저 못 돼 먹은 놈들에게는 불방망이를 내려야 한다.

늑대는 너거 같은 놈들이 늑대다!

야 이 대가리 속이 텅텅 빈 놈들아!




그날 밤, 나는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오늘밤에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공을 차는 날이다.

이 팀에 몇몇을 내가 좋아하고, 그들 역시 나를 알아 죽을만큼 사력을 다해 공을 차곤 한다.

오늘은 상대팀이 표가 나게 잘 찬다.

5대 1.

아무리 발부동을 쳐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공이 안 들어갈 수밖에.

수고했다.





5월 3일 아침, 해물죽을 한 그릇 사 어머니에게 갔다.

낮에는 주무시고, 밤에 올빼미가 되어 전방을 지키는 군사모양 보초를 서는 바람에 형과 형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는 어머니.

어머니, 밤에는 우리 군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주무시고, 낮에는 놀고 그러세요.

밤에는 자고, 낮에는 일하고!

그케, 말은 맞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내 용돈을 어머니 죽 사드리는데 다 들어가도 내가 기쁜 것은, 어머니가 죽을 아주 달게 잡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신, 책을 열 권 넘게 사셨네요.

정말 장하십니다.

쓸 데가 없잖아.

내가 막말로 담바를 피우나, 술을 먹나, 화토를 치나, 당구를 치나, 춤을 추나, 기집질을 하나, 그러니 가능하지.

하하하.

그래서 죽을 사 드리고 틈틈 책을 사 보곤 한다.


 


5월 5일 어린이 날 아침에 내가 먹은 밥.

길 떠나면 제일 곤란한 것이 밥이다.

저 밥 밑에 양배추가 깔려 있다.

그 위에 된장국이 있고,

국은 배추된장국이다.

얼마나 담백하고 단지 모른다.

모자라는 단배질은 또 콩자반이 있고.


내일 죽어도 채식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식구들 중에서도 저렇게 먹으면 한 달 후에 목을 매달고 죽겠다고

할 식구들이 있다.

하이고 세상에, 저래 묵고 어예 사노?

사람이 고기를 먹고 살아야지, 풀만 먹고 어떻게 힘을 쓰노?

너거는 절대 저래 묵우머 안 된다!

1%가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게.

어렵기 때문에 1%인 것이다.




용산에서 출발한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가

한강 다리를 건넌다.

수서에서 아침 7시 20분에 떠나는 부산행 SRT를 탄 옆지기와 장모님은

이미 도착해 부산 투어에 나섰다는 문자가 왔다.

옆지기 고향은 서울이 아닌, 부산이다.

사연인즉슨, 장인어른이 해양대학 2회졸업생이고, 장모님은 공주사범대 출신이다.

이모는 서울교육대 출신이고.

해서 졸업을 하자마자 상선을 타셨고,

어느 해 장모님이 부산 영도다리 부근 청학동에서 잠시 사시면서 옆지기를 낳았다.

장모님 연세가 올해 여든다섯이다.

딸과 기차여행을 하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노래를 하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선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정선은 그냥 시골장이다.

다리가 불편해 다니시기가 어려우니, 기차 타고 부산 해운대에 가 바다나 구경하고

그리고 회나 한 사라 하고 돌아오너라.

그렇다면 부산 청학동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부산 투어로 결정했다.





구례에 도착을 했는데, 시간이 늦어 노고단에 올라가면 잘 곳이 없다.

찜질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여기는 없고 남원에 기면 있다고 해 남원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남원에서 찾은 찜질방.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버스기사가 인터넷에 나온 찜질방이 아닌 이곳을 소개했다.

그곳은 너무 사람들이 많아 휴식을 취하기가 좀 거시기하니, 이곳에 가면 아마 나을 것입니다.




샤워를 하고 이층에 올라왔다.

올라오기 전에 그 건물에 붙은 식당에 가 청국장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밥이 오늘 한 밥이 아니고

꾸댕꾸댕한 걸로 보아 아마 어제밥인 것 같았다.

내 입맛에는 간이 너무 셌다.

그래도 비울 수밖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그렇다고 주인장을 불러

주인장, 반찬들이 왜 다 이렇게 짭니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손님, 손님은 그럼 젓갈반찬 같은 건 아예 입에도 못 대겠네요, 이 반찬들이 짜다고 하면.

라고 역공을 퍼부으면 내가 할 말이 없을 듯.

경상도 음식이 짜듯, 이곳 전라도 음식도 좀 짜지요 대체로.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자시오, 손님.


그날 밤 11시, 구례에 3,0 지진이 일어나 우르렁 쾅, 하고 찜질방이 흔들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찜질방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의문 하나?

왜 사람들은 집을 두고 이 찜질방에 와 고단한 육신을 눕히려 하나?

어쨌든 지리산이 무너지면 안 되는데, 내일 노고단에 가야 하는데!

지진 끝에 만난 복병 하나, 코골이.

지진으로 지리산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코골이로 이 찜질방이 무너지는 듯했다.

사람이 잘 수가 있어야지.

저 인간 코 안을 시멘트로 처발라버리면 저 소리가 안 나오려나?

지리산 입구에 게스트하우스도 있던데, 알아야 면장질을 하지.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니 지리산온천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거였다.

정보가 세상을 바꾼다.

정보가 돈이고, 정보가 이 세상을 바꾼다.




가자, 노고단으로!

4500원.

작년에 옆지기와 왔을 때는 부글부글 끓는 한여름이었고, 지금은 5월 초.




이 사진을 문자로 냈더니 무스 영화에 나오는 간첩 같다고 했다.

내가 봐도 조금 살벌하다.




성삼재 입구.

이제부터 걷자.

무조건 걸으면서 내가 왜 여기 왔는지 그 근원을 물어야 한다.




노고단을 오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만한 게 뭐라고, 여기까지 버스가 다니니 많이 올 수밖에.

화계사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5Km 정도 땀을 콩죽같이 흘리면 올라오니

슬리프 신은 인간이 버스에서 내리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져내렸다는 곳이 바로 이 성삼재다.

왜 지리산에 버스길을 닦았을까?




작년에도 그랬듯이 가자.

작년에는 몇 번을 쉬면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목적지는 노고단이었지만, 그 내용은 힐링이었다.

내 정신 안에 거무리가 된 채 딱 붙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스트레스라는 놈을 물리치기 위해 나는 노고단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디에 붙어 있나?

머릿속, 배꼽, 아니면 365일 받들어 총! 이 되어 있는 내 성기 끝에.

몸은 있는데, 도대체 정신은 어디에 있나?

정신만 알면 정신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스트레스도 잡을 수 있다.

어쨌든 형체가 안 보이는 정신 속의 그 스트레스를 잡기 위해 나는 노고단을 오른다.





길은 두 갈래.

하나는 편안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지름길.

지름길은 숨을 제법 할딱거리게 한다.

나는 땀과 헐떡임을 좋아한다.

섹스가 좋은 것은, 나와 이 우주가 합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작업이 지난하고 짜증스럽기는 해도.

부지런하지 않은 인간은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실해야 밥을 먹듯이, 미침이 있어야 대상과의 싸움이 있는 것이다.

미침, 열정, 도전, 의지는 그래서 하나다.





낯이 익은 노고단대피소.

작년 여름 지상은 섭씨 34도를 오르내리는데, 이곳 노고단의 기온은 17도.

밤에 추웠다.

그리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바라본 밤하늘에 그 많은 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원더풀이었다!




그날 밤, 나는 문자를 보내 옆지기를 불렀다.

저 계단에 앉은 우리는 밤기온과 밤하늘의 별을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 있네!

은하수가 있네!

아, 그 옛날 어린시절의 여름 밤, 

내 고향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읍 용덕동 해병 1사단 남문이 관통하는,

4반 반장님집 마당 멍석에 누워서 바라보곤 했던 북두칠성도 있네!




노고단 대피소에서 걸어 10분이면 오는 노고단 정상의 길목.

많이도 왔다.




늦봄에 만나는 생명들.

지천에 꽃이었다.

화려했고, 충만했다.




그런데 어제 지리산 노고단에서 만난 씁쓸함.

이제부터 공기 좋고 물 좋고, 에서 공기 좋고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슬픔을

어제 노고단에서 실감을 했고, 그리고 그 현장을 목격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는 지리산도, 설악산도,

그리고 제주의 한라산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몸을 바르르 떨어야 했다.


지리산 전체가 뿌옇게 변해 신음을 하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 공기와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이 이제는 같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정신을 여미고 그 대책에 나서야 한다.

서울보다 강원도가 더 미세먼지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흘려 듣지 말고

그 대안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중국만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도 50이다.

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더 나아가 세계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오대양 육대주가 미세먼지가 없는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앞으로 아프리카도 아시아 국가들도 전부 미세먼지로 뒤덮히고 만다.

오대양도 마찬가지다.

청정해역은 곧 없어지고 만다.

우리 지구가 비닐하우스이고, 바다는 큰 다라이로 보면 된다.


1. 세계의 인구조정이 필요하다

2. 전 세계 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3. 인간과 지구, 그리고 자연을 동격으로 매기고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




보라, 지리산을!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옇다.

목이 칼칼했다.

더러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도 가까운 곳의 자연은 지리산이었다. 

꽃이 무슨 죄기 있으리오.

자연이 무슨 죄가 있으리오.

있다면, 인간이 저지른 죄가 있을 뿐.







노고단 정상.

왜 사람들은 힘들게 이 노고단 정상을 밟으려고 노력을 할까?

운동이라고 하면 답에서 멀다.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왜, 우리 인간들은 시간만 주어지면 도리지꼬댕을 하지 않고, 당구를 치지 않고,

서방을 잠시 버리고, 지 여편네를 잠시 버리고 저렇게 산으로 산으로 올라올까?

아마도 인간의 DNA속에 그런 인자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나누어 질 수 없는 절대 고독은 아닐런지?




절대 고독을 만나 짓는 저 표정을 보라!

우리 인간의 지능으로 해독이 잘 안 되는 그 무엇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리 양식 떨어지자 방귀 질 난다고, 

내 글이 무슨 물을 만난 것 같다.

하늘 그 가까운 곳에 올라 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

자연이, 신이, 더 이상 오르게 하지 않는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다.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과학을 안다.

바람이 부는 쪽의 가지와 바람이 들 부는 쪽의 가지가 다르다.

그리고 살짝 누워 있다.

그것도 과학이다.

살려고.




내가 지리산에서 힐링을 하는 동안 부산의 옆지기는

투어버스에 올라 부산시내의 명소를 만나고 있다고 한다.

태종대에서 열차를 탔고, 그리고 지금은 배를 타고 오륙도를 돌고 있다고 문자가 왔다.


21세기, 내가 가장 놀라는 문명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일이다.

30년 전을 생각해보라.

서울에서 시골의 집에 전화를 하기 위해 명동에 있는 중앙전화국에 가 전화를 신청하고 기다려야 한다.

30분은 보통이다.

어무이, 돈 좀 부채주소.

그 때는 내남 없이 그게 주제였다.

부모님에게 거는 전화도 어려운데, 친구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독일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문자를 보내면 그 먼 나라에서 하늘과 바다를 지나

곧바로 카톡, 하고 문자가 온다.

너무 신기하고, 너무 놀라운 기술이다.

나는 카톡에 늘 놀란다.

하이고 참, 신기하제!

정말

귀신이 곡을 할 일이다, 이거야말로!

21세기, 가장 빛나는 문명 중의 으뜸이다!



 

혼자는 외로워.

그래 외로울뿐이다.

옆지기와 같이 왔으면 공감대가 더 넓었을 것이다.

익히 그리운 장소에 왔을 때 설렘 같은 것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지고 있는 내 짐이 사실 고독하고, 외롭다.

21세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스타트업이다.

내가 아는 어느 사업가이자 과학자인 그 사람은 그렇게 썼다.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밤낮주야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어금니가 흔들흔들 흔들릴 정도였다고.

그 친구는 이가 흔들렸는지 몰라도, 나는 정신이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다.

이 세상과 소통을 하는 마지막 귀 하나가 사달이 나 있다.

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로 내 신경을 건드리며 나를 시험하고 있다.

이 귀마저 고장이 나면 그야말로 나는 오토벤이 된다.


세상사 일이라는 게 다 쉬우면서 어렵다.

내가 그랬다.

당신을 반석 위에 올려주겠다고.

그 고지가 이제 8부 능선까지 와 있다.

그제께 어머니에게 갔을 때, 어머니와 형수에게 말했다.

제가 아버님으로부터는 정직한 삶과 성실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도전정신, 열정, 의지를 물러받았습니다.

하면 된다는 그 정신 하나를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노?

다 된다!




내 작은 꿈은 우리 가족들이 다 모여 사는 것이다.

5형제와 조카들까지.

혼자 먹는 혼밥과 혼자 자는 잠, 혼술의 그 시간이 나에게는 형벌이었고 이다.

일생 너무 혼자 삶을 많이 산 나였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 삶이 너무 그립다.

인간은 한 집에서 그렇게 웃으며 즐겁게 살아야 한다.


며칠 전, 옆지기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잘못돼 내가 없으면, 내가 그려놓은 이 설계도를 가지고 당신 혼자서 실행시킬 수 있나?

NO!

정말?

안 됩니다.

큰일이네!

당신이 시작했으니 당신이 끝까지 마쳐야지요.

나는 무조건 죽을 권리도 없고, 잘못될 일도 없고, 무조건 오래 버텨야 되네, 맞나?

그래야지요.




저 물줄기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작년에 옆지기와 왔을 때도 저 곳에서 쉬었다.


나는 내 길을 걸을 때부터, 내 삶을 설계했다.

돈이 아닌, 이 세상을 연구하고, 얻자!

돈을 벌어야지, 는 내 삶에 0,00001%도 없었다.

돈 1만 원이 생기면 책부터 샀고, 남은 돈으로 답배를 사 피웠고, 커피를 마셨고, 술을 마셨고, 그래도 남으면 여행을 하곤 했다.

가난은 내 천직이었다.

그러다 만난 옆지기.

돈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돈이 드는 제조업은 안 된다.


21세기가 만든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 스타트업.

내 머릿속을 믿기로 했다.

꺼내 믹스를 시키자.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다섯 개가 나왔다.

그 중 두 개를 꺼내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완성단계.

설계도는 못 그리지만, 설계도를 볼 줄은 아는 옆지기.

원더풀!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이에요.

당신, 정말 대단하다.

하나는 한 해에 15조이고 세계로 넓히면 1000조 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20조 시장이고, 세계로 넓히면 300조다.


내가 말했다.

내가 가진 무기는,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뿐이다.

그 무기가 이것을 만들었다.

나는 정말 이 세계를 구할 설계도도 그릴 수 있다.

우리 오대양 육대주가 웃으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 설계도를.




어제 집에 도착해 먹은 저녁.

지리산에서 먹은 두 끼.

찜질방에서 그 날 밤에 먹은 청국장.

새벽 5시에 찜질방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에 갔지만, 버스는 6시 40분이 첫차였다.

나를 반기 건 어느 집의 개 한 마리.

놀아도 놀아도 시간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추웠다.

첫차를 타고 남원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구례에 가는 첫차는 7시 20분.

식당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정류장 한켠에 있는 CU.

들어가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그게 어제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노고단에서 성삼재에 도착하니 구례공용정류방에 가는 버스가 시동을 건 채 있었다.

탔다.

구례시외정류장에 도착하니, 구례구역에 가는 버스가 쿨쿨거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탔다.

구례구역에 도착해 열차표를 끊었는데, 시간이 20분밖에 없었다.

음식을 먹을 시간이 안 되었다.

탔다.

그래서 만난 게 저 냉면이었다.

용산역 이마트에서 샀는데, 산 게 비지떡이라고, 메밀이 아닌 밀가루였다.

저 가짜냉면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새벽 3시에 식도가 역류하는 바람에 일어나 혼절하는 줄 알았다.

켁켁!



뒷이야기- 이 글을 적어 나가는데, 옆지기로부터 온다는 전화가 왔다. 어머니도 만족이었다고 했다. 청학동의 겉모습은 사라져도, 골목은 어느 정도 살아 있어 기억 속의 동네였다고 했다. 나는? 힐링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그 무거운 짐과 싸움뿐이다. 끌어안고 즐기면서 싸우는 그 길이 삶이다. 여러분, 투표하십시오. 해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건설하는 그 길에 동참을 하십시오. 201757해발120고지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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