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어제 구곡폭포에 가다

오주관 2017. 7. 27. 12:17



어제 노트북 대신 책 한 권만 가방에 넣은 채 집을 나왔다.

오늘은 도서관이 아닌 강촌이다.

어젯밤에 생각했다.

내일은 무조건 강촌에 가자.

구곡폭포가 생각이 나지 않아, 강촌이었다.




지난 한 달,

내 몸은 나에게 쉬어라, 쉬어라, 하고 계속 주문을 걸었다.

지진이 오면 쥐들이 먼저 피난을 한다.

내 몸이 뭘 안 것이다.

그런데 날만 새면 나는 몸이 내린 그 주문을 무시하고 무거운 가방을 멘 채

도서관으로 직행하곤 했다.

노트북, 도시락, 그리고 노트 한 권과 출력이 된 것들과 선들.

가방이 무겁다.


나는 왜 쉬지 못 했을까?

2% 때문이었다.

내가 쉬지 못 한 것은, 늘 2%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2%를 채우고 쉬자.

2%를 채우고 나자 보라는 듯이 몸에서 이상신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통증이 그것이다.

밤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생각하는 로댕이 되었다.

이 세상에는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두 종류의 병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자구나.

숨을 마음 대로 못 쉰다는 건, 고통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체력.

폐병에 걸린 사람들 속에서도 내 폐는 건강했다.

눈은 살아 있는데, 입이 제 구실을 못하면 그것은 고통이다.

내 입으로 가나다라마바사가 안 되면

이 세상과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보고, 또 보고, 만들고, 또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동안 내 에너지를 정말 다 썼나?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나?

그렇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옆지기가 왔다 가고 다시 찾아온 월요일 밤,

잠이 오지 않았다.

화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이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가 부족했다.

노회찬 의원이 어느 인테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 하나?

그것도 짧은 문장으로.

노회찬 의원 왈,

밑천이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지식이 그렇게 만든다.

요즘 세상에 누가 길고 긴 문장을 보나?

단 한 줄로,

아니면 두 줄로 끝을 내어야 한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풀어쓰는데는 이골이 나 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장을 엿가락처럼 늘여 쓰는데는 선수들이다.

나도 옛날, 어느 신문사에 로프기사를 쓸 때 늘 문장을 늘리고 늘렸다.

그래야 돈이 더 되니까?

다섯 장 정도 줄여라, 라고 하면

줄이면 이 글이 죽는다.

압축이 어렵다.

원고지 20장짜리를 원고지 두 장으로 줄이는 작업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노회찬 의원은 그 방면에는 대가다.

내공이다.

그 다음날, 나는 줄이기로 하고 작업을 했다.

상대방이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한 눈에 들어와야 하고, 전하는 메시지의

핵, 그러니까 주제를 금방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압축을 시켰다

이렇게.


21세기, 우리 인간을 위협하는 무서운 적이 있다.

1. 핵과 전쟁

2. 식음료

3. 질병

4. 무지


그래 그래, 이거다.

긴 문장을 다시 압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작업만 끝나면 나는 무조건 쉰다.

정말 쉰다.

내 몸이 너무 아프다.

쉬라고 깃발을 높이 세운 채 발악을 하고 있다.




옆지기에게 오늘은 강촌에 힐링하러 간다,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세요, 가서 푹 쉬세요.

지하철로 마들에 와 소고기버섯죽과 찰떡을 사 집에 갔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어머니에게 가는 날이다.

죽과 찰떡을 맛있게 드셨다.

누가 그랬다.

부모가 가장 흐뭇해 하는 것은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과,

자기 논에 물이 들어가는 걸 보는 것이다.




장마 뒤라 계곡에 물이 많았다.

공기도 깨끗했다.

강촌역에서 걸어 구곡폭포까지 왔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구곡폭포에서 내려와

산림욕장에 갔다.

시간은 2시 40분.

좀 피곤했다.

나는 가방을 베개 삼아 벤치에 누웠다.

내 옆에서 두런두런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 집에 재산이 10억인가 15억인가 있는데... 망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죽어버렸다.

수면제를 먹은 사람 모양 잠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눈을 떠 핸드폰을 보니 3시 40분이었다.

몇 년 사이에 오늘처럼 그렇게 달게 자본 일은 처음이다.

아, 이게 힐링이다.

이걸 내 몸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구나.

나는 지쳐 있었다.

퍼펙트, 완벽했고, 깨끗했다.

한 시간을 자도 이런 잠을 자야 된다.

정말 굳!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집 앞 도서관에 갔다.

운동장에 가면 너무 습하고 모기가 많아 슬슬 미친다.

나는 혈액형이 o형이라 모기들이 말도 못하게 좋아한다.

운동장에만 가면 숲 속의 모기들이 어르신, 오셨어요, 하고 

안면 안 가르고 달려들어 막 빨아먹는다.

내 몸과 다리가 금방 울퉁불퉁하다.

가을이 올 때까지 도서관이다.

하고 방향을 털었다.

볼 책도 몇 권 있고.




냉방이 되어 있어 책 읽기 좋다.

7시 와 9시 30분에 간다.

10시에 문을 닫는다.

그래도 올 여름은 그런 대로 견딜만 하다.

작년 같았으면 지금쯤 밤마다 더위와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요 며칠 가슴의 통증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

올 때 오더라도 좀 느리게 오너라.

그리고 이놈아, 좀 잊어먹기도 하고.

나 아니어도 많잖아.

나는 사랑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 라고 헛소리를 내놓는 연기도 안 되는

80인 신 아무꺼시나, 노래 두 곡 가지고 평생 흥청망청 사는 조나불이 같은 인간들을 데리고 가면 좀 좋아.

나는 정말 할 일이 아직 남았다.

그러니 내가 마지막 종지부를 딱 찍을 때까지 좀 기다려라.

대왕이 물으면 알아서 온다고 하네요, 그렇게 전해라.




정신을 집중해 책을 읽으면 행복하다.

지난세월, 정말 세계의 많은 귀신들을 알현했다.

산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귀신들을 엄청 알현했다.

내가 한 일은,

그들의 정신을 훔치기도 하고, 벤치마킹도 하고, 그리고 그들의 것과 내 것을 믹서기에 넣어

새로운 내 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을 다 보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장하준 경제학 교수는 그런 말을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방이요 도용이다.

새겨야 할 말이다.





뒷이야기-줄 위에 선 광대가 있다. 내가 바로 그 피에르다. 나야말로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겸손하고, 겸허하고, 그리고 존재와 삶에 대해 진중하게 사고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한번뿐인 삶, 다 태우고 가야 한다. 죽는 그 날까지 내 주제는 1인칭이 아닌 3인칭이다. 나만, 내 가족만 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와 내 이웃, 더 나아가 우리 인류가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를 한 채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세상을 늘 갈망했고, 그리고 그려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지금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2017727해발120고지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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