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명의와 착한병원 그리고 나쁜병원

오주관 2018. 10. 30. 11:11



명의와 착한병원 그리고 나쁜병원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십 몇 년 전에 셔트를 올리다가 좌골신경통이 왔다. 왜 우골신경통은 없고 좌골신경통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치료를 받지 않고 일주일 견디니 사라졌다.


한 달 전 그 좌골신경통이 다시 찾아왔다. 견뎠다. 이번에는 안 통했다. 통증이 너무 심했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앉거나 걸으면 괜찮은데, 지하철 안에 서 있으면 고문이 그런 고문이 없었다. 옛날 잇몸에 생긴 염증을 치료한다고 일주일 동안 대바늘로 잇몸을 쑤시는 그 지옥 같은 고통과 비슷했다.

 

성북구 동소문동 오재홍 재활의학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내 조카는 명의다


그 해 노원역 롯데백화점 앞에서 조카를 만났다. 내 초등학교 은사이자 7촌 아재가 돌아가셨다. 상계백병원에 문상을 가는 길이었다. 인천의 5촌당숙이 같이 가자고 전화를 해 기다리고 있는데 조카가 나타났다. 나는 조카를 내 옆에 앉게 했다.


'제홍아, 하나 물어보자. 내가 십 몇 년 전 포항에 살 때 바닷가에서 돌을 던지다가 어깨가 삐끗했다. 그 후로 오른쪽 팔이 아프면서 안 돌아가, 세수를 할 때 목을 못 씻는다. 와 글로?'
'사진을 찍어봐야 압니다'
'사진 안 찍고는 모르나?'
'네. 한번 오세요.'


조카병원에 갔다. 가서 사진을 찍고 주사를 한대 맞았다. 물리치료도 3일 정도 받았는데, 거짓말 같이 십 몇 년 따라 다닌 어깨의 통증이 사라졌다. 하, 명의였다. 그 때부터 집안의 경조사에 가면 제홍이는 명의다, 라고 선전을 했다. 그 날 조카에게 그랬다.


'제홍아.'
'네.'
'병원에 손님이 오면 관상부터 봐라. 할매 할배들이 오거든 제일 먼저 관상을 봐서 돈이 없다 싶으면 돈을 받지 말고 공짜로 치료해줘라. 그렇게 하면 복을 쌓는다. 그리고 그 복은 반드시 큰 열매를 맺는다. '
'네.'


안녕하세요 정형외과


동네병원에 갔다. 원장에게 이만저만해서 왔다. 사진을 8판 정도 찍었다. 많이도 찍네. 사진 한장을 형광판에 걸어놓고 원장 왈


'척추협착증입니다.'

'척추협착증?'

'집으로 따지면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기둥이나 대들보 하나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꾸준하게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


기분이 살짝 나빴다. 십 몇 년을 하루에 15천보씩 걸은 내가 뭐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라고? 나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라.


나오니 카운터의 여자가 16,000원짜리 비보험이 하나 있다. 그런가 하고 받았다. 도합 30,700원. 이만큼 많이 내기는 처음이다. 그 다음날도 받았다. 20,700원. 오늘은 다른 게 비보험이었다. 어제의 비보험이 오늘은 보험이었다. 아, 이것들이 날로 먹으려고 작심을 했구나!


'아니, 어제는 비보험인 게 오늘은 보험이고, 어제 보험이었든 게 오늘은 비보험이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도대체 보험과 비보험의 기준이 뭡니까?'


카운터가 말을 못했다. 약국의 약값은 천원.


'나보고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란다.'

'심하다.'

'무식하제?'

'네.마들 한정형외과에 가보세요.'

'돈도 너무 많이 받제?'

'진짜 이상하네.'

'내일 가서 원장 귓방맹이를 불이 나게 패뿌까?'

'하하.'



 

마들역의 한정형외과-명의이면서 착한병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네 식구, 그리고 나도 단골이다. 그 해 족적근막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원장님이 사진을 보면서 왈


'열흘 정도 치료받으면 나을 겁니다.'


진짜 열흘 치료를 받고 나니 나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안녕하세요 정형외과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갔다. 사진을 찍었고, 원장실에 갔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왈


'척추는 괜찮습니다.'
'괜찮다? 하하!'
'너무 많이 걸었거나 쪼그려앉아 일을 해서 엉덩이근육이 뭉쳐지면서 염증이 생겼습니다.'


옳게 보았다. 나만큼 의자에 앉아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죽어 나를 태우면 사리가 많이 나올 것이다.


'10일 정도 치료받으면 나을 겁니다.'


하!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의 초가집이 아니었다. 사진도 두 판만 찍었다. 치료비는 10,500원. 그 다음날부터는 치료비가 1,500원. 오늘 가면 10일째다. 바늘로 쑤셔대던 지옥 같은 통증이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정형외과 원장은 명의이다. 열흘만 치료를 받으면 낫습니다. 만약 여기서도 안 되면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조카병원에 가자. 가서 정확하게 알자. 이제 조카에게 안 가도 된다. 한 달 동안 내 존재를 쪼그라들게 만든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사라졌다.


'그런데 병원비가 너무 헐타.'
'그러네요.'
'너무 헐해 마음이 아프다.'
'하하.'


● 우리나라에 병원도 많고 의사도 많다. 그런데 그 격은 다 다르다. 의술과 상술은 다르다. 지금 천하고 못된 자본이 의술을 상술로 옷을 갈아입게 만들고 있다. 200만 원 내던 월세를 하루아침에 1,200만 원 내시오, 하면 돌겠나 안 돌겠나? 전국의 병원들이 사실 시름이 깊다고 한다. 월세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치솟고 있다.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 재계약을 할 때 5% 이상 못 올리게. 흥과 망이 뚜렷하다. 되는 병원과 안 되는 병원. 내과와 산부인과는 파산직전이다. 길은 하나, 끼리끼리 모여 협동조합병원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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