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우고 채우고
공식적으로는 네 번째였다. 대구에서 올라가는 갓바위 길은 경사가 심하다. 경산에서 올라가면 조금 쉽지만 대구에서 올라가는 갓바위는 계단이 너무 가팔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숨을 헐떡이면서 오르는 그 과정이 기도가 아닐까? 어쨌든 오후 5시 50분에 나는 갓바위에 도착했다. 초저녁에 한 번 새벽 4시에 한 번 그리고 아침을 먹고 다시 한 번. 도합 세 번, 108배를 여섯 번 했다. 밤에 천장의 불빛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일어나 계단을 올라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마음을 비우는 것도 어렵고 채우는 것도 어렵다. 무엇을 비우고 또 채운단 말인가. 찰리 채프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고 했다. 새벽 그 여명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 인생은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희극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희극 그 뒤는 그리고 무다. 일체가 희극이요 무다. 올라가면서, 밤을 지새우면서, 그리고 내려오면서도 나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 했다. 내 정신이 얼어 있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갓바위을 다시 찾을 일이 있을까? 아마도 이 여행이 마지막이지 싶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 갓바위에 가다-5 (0) | 2019.07.01 |
---|---|
갓바위에 가다-4 (0) | 2019.06.14 |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가다-2 (0) | 2019.05.17 |
대구 갓바위에 가다-1 (0) | 2019.03.11 |
설악산에 가다 (0) | 2018.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