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화두

무엇이 옳은가

오주관 2022. 5. 3. 14:49

 

 

 

 

 

 

 

 

1990년 보이저1호가 60억km 우주에서 찍은 지구다.
저 사진을 보는 순간 몸이 살짝 얼어붙었다. 

개미나 우리 인간이나 도진개진이구나. 

 

우리의 손자들은 나중에 우리를 비웃을 것이고,

때로는 우리 행동에 혀를 찰 것이며,

또 때때로 분노할 것이다.

우리가 조부모 세대에게 그럤듯이 말이다. 

 

기술은 윤리를 바꾸어놓는다.

그러니 오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혁명들을 놓고 생각해보자. 우선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과 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타인을 향한 관대의 범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산업혁명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약 천년간 다문화적으로 수행된 노예제도를 폐지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오늘은 어디로 갈까? 올레길을 걷느냐, 아니면 윗세오름에 가느냐, 그것도 아니면 쇠소깍에 가 책을 읽느냐. 한라산에 관한 한 나는 더 이상 오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미 한라산 정상에도 가보았고, 윗세오름도 집사람과 두 번 가보았다. 관절을 조져가면서 오를 일은 없다. 패스하자. 그래요. 당신 땡볕 싫어하잖아. 땡볕에 올레길을 걷는 것도 패스. 결국 쇠소깍에 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기로 했다. 동네 떡집에 가 쑥찰떡 8개와 토마토 두 개, 그리고 물 하나를 가방에 넣고 걸었다.

내가 평소 걷는 그 길이 아닌 샛길로 걸어 쇠소깍에 갔다. 도착하기 전 동네 정자에 앉아 쑥찰떡과 토마토 두 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배 안에 거지가 사는지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식당에 가 점심을 사먹을 일은 없다. 우리가 가본 식당 열에 일곱, 여덟은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간도 짜고. 쇠소깍에 도착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책읽기에 들어갔다. 이 책은 since1945 전통을 자랑하는 우생당서점에서 구입을 한 게 아니라 쿠팡을 통해 샀다. 보나마나 우생당서점은 책이 없어 주문을 할 것이고, 그럼 한참 뒤에나 볼 것이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하고 쿠팡을 통해 주문을 했다.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미래학자인 후안 엔리케스 교수가 쓴 '무엇이 옳은가'라는 책이다. 후안 엔리케스 교수가 쓴 '무엇인 옳은가'라는 책은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내린 정의가, 정의가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의식구조가 바꿨기 때문이다. 의식구조를 바꾼 것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어제의 정이 오늘은 반이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성소수자와 동성애자'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용서받지 못 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후안 엔리케스 교수가 쓴 '무엇이 옳은가'라는 책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가 배운 정의와 도덕적 규범이 180도 바뀐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나쁜뉴스를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정의가 훗날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령살상무기와 기후변화 같은 쟁점을 직시하지 않을 때 우리가 당할 수 있는 고통은 코로나19 펜데믹의 고통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이 두 가지야말로 우리의 생존을 궁극적으로 위협하는 윤리적 과제다.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주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라는 메시지, 즉 어쩌면 대량살살무기와 함께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치러온 전쟁들 가운데 가장 큰 윤리적 전쟁인 기후변화에 어떻게든 대처하라는 메시지 말이다. 과연 우리는 이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과연 우리는 행동으로 나설까?

일찍이 우주물리학자 스티브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수천 억개의 은하계 중 하나의 변방에 있는 평균 크기의 별(태양)둘레를 공존하는 중간 크기의 행성(지구), 거기에 존재하는 유기물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류는 너무도 미미한 존재이므로 나로선 우주 전체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지구 아닌 다른 행성들을 관찰하는 것이 인간의 일상이 되자 종교가 끝장났다. 지구를 그저 작은 조각으로만 품는, 훨씬 더 큰 우주를 신학자들이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갈레릴오는 결국 교향청으로부터 사면받았다.

350년이 지난 뒤에야.

태양계 바깥의 행성을 처음 확인한 것은 1988년이다.

그리고 2020년 현재는 4, 135개를 확인했고

5, 047개은 학인 중에 있다. 

어쨌든 무엇이 옳은가, 라는 이 책은 미래학자들이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않고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인간과 그들이 만들 미래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그리고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이 옳은가 라고 묻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역작이다. 이 책을 쓴 하버드의 후안 앤리케스 교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문학계에 큰 별이었고 지성이었던 고 이어령교수가 쓴 서평을 여기에 옮긴다.

"이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미래의 지적 경쟁력이 될 것이고,

이 책은 복잡한 시대에 당신만의 무기가 될 것이다. 

지금 바로 당신의 게으른 윤리 의식을 깨워라.

그리고 이 책이 펼쳐놓은 격렬한 '논쟁의 싸움터'로 걸어가라. 

 

"어때요, 읽을 만해요?"

"별 다섯 개다."

"대단하네요."

"이 책이 아귀지옥의 정치권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훌륭한 책이네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우리 인간의 윤리적 규범을 이야기했다면, 무엇이 옳은가, 라는 이 책은 그런 윤리를 넘어 과학기술과 윤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인간을 지구 밖의 광활한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

"사고의 지평을 넓혔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사고에 대해 생각했다. 대부분의 우리 인간들의 사고는 편협되고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거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이어령 교수도 그런 류에  해당이 된다. 호킹박사의 우주론과 신관에 대해 말을 아낀 걸 보면. 저 광활한 수천 억 개의 은하계 중에 아주 작은 태양계의 행성이라는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 사실에 나는 동의를 못 한다. 누가 나에게 신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신은 없다! 그런데 종교는 있어야 된다. 종교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의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내, 외적 정신과 몸의 질서를 위해 종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의 시선을 지구 밖의 은하계를 보여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