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이삿짐 정리

오주관 2022. 8. 6. 17:09

 

 

 

 

 

 

34일 서울에 머무르다    

730일 토요일, 우리 두 사람은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제주나 서울 모두 폭염의 나날이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숨이 컥 막혔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집이라 먼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가 1번이었다. 1시간 동안 쓸고 닦았다.   

정리되어 있는 짐과 풀어놓은 짐은 다르다. 정리할 짐들을 보자 눈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이 과연 정리할 수 있을까? 일은 손이 한다 해도 일단 눈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틀이면 다 하겠제?"  

"네, 다해요."  

"많은데?"

"안 많아요. 일단 두 부류로 나눕시다. 버릴 것과 가져갈 것으로."  

"그렇게 하자."    

버릴 것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버릴 책을 한군데 모았다. 그 다음 우리 두 사람의 옷을 모았다. 옷장의 옷들 중 4/5가 버릴 옷이었다. 가구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5단짜리 서랍장을 비롯해 목제로 된 가구 세 개가 탈락이었다. 그 다음은 생활도구인 밥솥과 프린터기, 그리고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버리는 물건과 가지고 갈 물건을 분리해 싸기 시작했다. 정리하면서 나는 멘붕이 왔다. 그냥 짐이 아니었다.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집사람은 나와는 달리 차분했다. 이삿짐 경험이 많은 집사람은 당황을 하지 않았다. 그 옛날 항공기로 해외에 이삿짐을 옮겨본 경험까지 있어 동요가 없다고 했다. 우선 버릴 책이 너무 많았다. 이 망할 책을 어떻게 버리나? 집 밖에 버리기에는 책이 너무 많았다. 우선 노끈으로 책들을 나르기 편하게 쌌다. 

궁즉통이라고 했다. 이튿날 오후 시내에 나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창밖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 분이 보였다. 잘 됐다 싶었다. 차에서 내려 노인에게 갔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팔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 분이 집에 가더니 손자를 데리고 나왔다. 차를 몰고 가 책을 실어 오너라. 라고 하자 손자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라면을 끓이고 있다고 했다. 잠시 후에 가겠다며 우리 주소를 적었다. 차가 아닌 오토바이가 왔다. 어쨌든 오토바이로 10번 정도 책을 날라 해결이 되었다. 

큰 짐이 하나 해결이 되었다. 다음은 생활도구인 플라스틱이었다. 5개짜리 재활용봉투를 한 몪음 사왔는데 모자랐다. 다시 한 묶음을 사 플라스틱을 담았다. 도합 10. 반성을 했다. 플라스틱 천국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제 이걸 어떻게 버리나? 집 앞은 내놓은 쓰레기로 놓을 자리가 없었다. 비는 내리고 있고, 오늘밤 안으로 이 봉투를 내놓아야 한다. 우산을 쓴 채 재활용 봉투를 손에 쥐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하나씩 내놓았다. 다 치우고 나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구와 옷이었다. 일단 자고 내일 처리하자.    

3일째 아침, 아침을 먹고 우리 두 사람은 동사무소를 찾았다. 스티커를 붙일 물건이 10개 정도 되었다. 가구가 네 개, 밥솥과 프린터기, 그리고 세탁기와 전기장판 등등. 우리가 가지고 갈 물건은 냉장고, 책장과 책, 에어컨과 실외기, 그리고 생활도구와 옷이었다. 옷이라고 해보아야 가방 하나에 넣으면 될 정도로 줄어 있었다. 옷과 신발은 버리는 즉시 동네 노인 분이 가져갔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힘이 드는 생활도구와 플라스틱 제품은 사지 말자. 손으로 들 수 있는 것만 사자.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꼬박 이틀을 매달렸다. 책도 버릴 곳이 있었으면 아마 버렸을 것이다. 도서관에 주려고 하니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나는 한 트럭의 책을 버린 경험이 있다.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놓고 매번 책을 사 읽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ing(진행형)이다.   

이틀 동안 먼지를 마셔가며 애를 쓴 집사람은 3일 아침 장모님을 뵙기 위해 친정 길에 나섰다. 그 동네에 가 커피 한잔 마실까? 갑시다. 역과 연결된 삼성건물은 완공이 되어 우뚝 서 있었다. 건물을 지을 때는 길가 동네 아파트에 플래카드가 많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준공이 되자 그 건물 하나 때문에 주변 동네 아파트의 풍경이 그럴 듯하게 변해 있었다. 비싼 동네라 커피 맛이 달랐다. 

그 날 오후 집에 돌아온 나는 저녁을 먹고 운동장에 갔다. 지난 3년, 저녁만 되면 운동장 벤치에 앉아 축구 구경을 했다. 오래간만에 온 운동장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시간이 되자 운동장에 나타난 그들은 그러나 내가 기다리고 있는 축구팀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여자 선수들이었다. 한 번 기회가 더 남아 있다. 그 날 밤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번개가 쳤고 곧이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패산의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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