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다
9월 9일 아침 8시 25분 비행기로 우리는 다시 서울에 올라갔다. 집 안에 그대로 넣고 온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서.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었다. 제주에서 삶아 온 고구마로 점심을 떼우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정한 주제는 산사 같은 집을 만들자. 정갈하면서 마음이 편안한 집. 오후 3시가 되자 대충 정리가 끝이 났다. 버리고 온 것이 너무 많아 정리할 게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의 옷은 옷걸이 두 개에 걸기에도 부족했다. 이불만 그대로였다. 이불을 못 버린 것은 버릴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짐을 정리하는 시간보다 청소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쓸고 닦고. 다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채울 게 없어요."
"그래도 버리기를 잘했다. 안 버리면 안 들어온다."
"너무 많이 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 잘 버렸다. 가구도 버리고, 옷도 버리고, 책도 버리고, 신발도 버리고, 그릇도 버리고,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도 버렸기 때문에 방 전체가 날씬해졌다."
"이곳 공기가 자유를 만난 것 같습니다."
"공기도 자유를 누리지만 우리도 자유를 얻었다."
"무슨 자유요?"
"봐라, 방 안의 풍경을. 우리가 그리고자 하는 산사 같은 풍경이 완성되었잖아."
"그러네요."
"우리 손으로 들 수 있는 것만 남았다."
"맞습니다."
"고약한 비계는 하나도 없다. 이제 비로소 완전체가 되었다."
"삼위일체네요."
"응. 우리, 아지트, 그리고 환경." 이곳에서 우리의 마지막을 그리자."
"그래요."
시내에 가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 정리를 끝내고 집사람은 친정으로 나는 시내로 갔다.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 올라왔을 때 두 번 찾은 방송통신대 카페인 락앤락의 커피맛을 못 잊어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학림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 별다방에 갔다.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면서 멍을 때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종로에 나갔다. 종로서점에 입점한 다이소도 사라져버렸다. 영풍문고의 뮤지에서 모자 하나를 샀다.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수확이 있다면 보름달을 본 것이었다. 올라간 첫날밤 방 안에서 휘영찬 밝은 보름달을 보았다. 그 다음날 밤에도 보았다. 보름달의 밝고 맑은 기운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강북구의 축구장 대신 노원구의 수락산이 우리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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