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외돌개, 그리고 치유의 숲

오주관 2024. 10. 6. 11:32

 

 

 

 

 

 

 

 

 

 

 

 

 

 

 

 

 

 

 

 

 

 

 

 

토요일,  일요일,  걷다

토요일, 나혼자 외돌개를 갔다.

걸어 다시

돌아오는데 골목에서

윷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성동 경로당 앞에서 어른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윷이야! 모야! 보다는 도 개 걸이 많이 나온다.

인생사와 같다.

 

일요일

우리 두 사람은 토평동에 옹심이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유일하게 가는 식당이다.

보리밥이 먼저 나온다.

젓가락으로 서너 번 정도 먹을까?

그래서 맛이 더 있다.

뒤이어 나오는 옹심이칼국수.

옹심이는 감자 전분이고, 칼국수는 메밀로 만들었다.

국물도 감자를 갈아 넣은 것이라 꺼룩하다.

채식하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입가심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치유의 숲으로 갔다.

우리가 찾는 최애의 숲이다.

새로 설치된 데크만 걸어도 만보 이상 나온다.

구불구불, 한계령고갯길을 넘어 가는 것 같다.

예약을 해야 정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다른 길도 있다.

 

저녁을 먹고는 동네 뒷산에 산책을 나갔다.

제주 흑돼지를 구워주는 수라간이라는 식당 앞으로 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사인이 있었다.

이 앞을 몇 년 다녀도 보지 못 했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도 있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22년도에 이곳을 방문했다.

허, 참.

사진이 추해보였다. 

채식주의자인 내 눈에 그 광경이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깊고 넓게 본다는 게 사실 어렵다.

채식주의자는 철학적 사고를 하며, 

그리고 철학적 삶을 산다.

고기를 넘어

건강과 자연 그리고 기후변화까지 생각하며 살고 있다.

먹는데 진심인 자들을 보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을 망치는 주범 중에 하나가 고기다.

 

그렇게 가다

태어난김에 음악일주의 기안84가 뉴욕 한복판에서

속이 안 좋아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속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걸음을 빨리했다. 

건물 서너 군데를 거친 다음 한인이 운영하는 코리아마켓에서

볼일을 본 기안84는 변비일 것이다.

나는 설사다.

미국은 후진국이고, 우리 한국은 선진국이다.

어디에 가든 공중화장실이 있다.

그것도 휴지까지 비치해놓고.

음악까지 나오는 화장실도 있다.

공원화장실에 들어가 급한 볼일을 해결했다.

아마 내가 뉴욕 한복판에 있었으면 십중팔구 

거리 모퉁이에서 바지를 까고 볼일을 봤을 것이다.

30살 때부터 안 좋은 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장은 채식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설사보다는 변비가 여러모로 낫다.

집사람은 변비다.

거리에서 뛰는 법이 없다.

나는 앞뒤 안 가리고 뛰어야 한다.

괄약끈도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조아도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면

사정없이 벌어진다.

 

뛸 때는 지옥이지만

다 보고 나면 천국이다.

느긋하게 동네 뒷산을 산책했다.

서울 어느 동네를 가야 이런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동네를 만날까?

제주는 어디를 가도 아름답다.

제주에 오래 사려면 차가 없어야 한다.

차를 타고 다니면 세 달이면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 본다.

그 다음은 마음에 안개가 낀다.

제주도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한다.

특히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더 그렇다.

제주도는 걸어야 한다.

걸으면 천국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 노년을 보내기로 하고 내려온, 

벤츠를 소유한 어느 기업 재무이사였던 그 부부를 봐도 그렇다.

내가 그랬다.

저 친구들 얼마 못 가 올라갈 거다.

결국 사놓은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전세를 놓고 올 6월 다시 올라갔다.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빠름과 느림의 미학,

느림은

우리를 상상하게 만들고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풍 속 종달리 1코스를 걷다  (0) 2025.02.08
늘 걷는다  (0) 2024.11.25
추석, 그리고 연휴  (0) 2024.09.22
쇠소깍과 21코스를 걷다  (0) 2023.11.13
짐을 정리하다  (0) 202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