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연휴
13일 금요일 오후 6시에 집사람은
이곳 중앙로터리에서 공항으로 가는 182번 직행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올해 아흔인 장모님을 뵈러.
어머니, 즐겁게 해드려라.
효라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다.
즐겁게 해드리는 게 효다.
돌아오는 그 길이 쓸쓸했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했다.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이셨던 아버님과, 열정과
포기를 모르는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물려주신 어머님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나는 어린시절 해인사의 돈오돈수를 맛보았다.
오천 오어사 옆 황사골에서 시작된 나뭇짐 행렬.
그 날도 20Kg 남짓한 나뭇단을 어깨에 맨 나는 어깨를 조여오는 그 아픔 때문에
가끔씩 고개를 들어 8번 정도 쉬어야 도착하는 까마득한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그 때 뒤에서 나를 지켜본 어머님이 말했다.
"야야, 먼길을 갈 때는 앞을 보지 말고 땅바닥을 보고 걸어야 한다."
순간 겁먹은 내 눈이 놀라고 있었다.
동시에 아, 하고 깨달음 하나가 왔다.
그 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피부과 의사인 함익병씨는 어린시절 책장이 필요해
제재소에 리어카를 끌고 가 소용없는 나무를 주워
리어커를 끌고오면서 무척 챙피했다고 했다.
그 때가 사춘기라 여학생들이 볼까 그랬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리어카에
실린 똥장군 4개를 끌고 아버지가 일하는 동양수산 얼음공장으로 가곤 했다.
공장 옆에 중앙시장이 있었는데, 식당과 색시가 있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 공중화장실의 똥물을 아버지가 도맡아 처리를 했다.
똥장군 네 개를 실어주면 그 다음 집으로 가는 몫은 나였다.
그 길로 오가는 여학생들을 무슨 재주로 피할 수 있나?
내 얼굴에 흐르는 비지땀은 땀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챙피함이 만든
내 몸에서 나는 뜨거운 열이었다.
우리 집의 화장실은 똥장군 150개를 저장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중앙시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700미터 정도 되었다.
어린시절 함익병씨의 가난과 내 가난은 어슷비슷했다.
그러나 챙피함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리는 내 존재와 힘겹게 싸우곤 했다.
올해의 추석은 떡 두 개로 시작해 마무리되었다.
떡마을에 가니 이미 A급 떡들은 팔려나가고 없었다.
돌아오면서 혜성 떡집에 가니 있었다.
떡 두개를 먹으면서 추석을 추억하곤 했다.
3박 4일 휴가를 마치고
집사람이 돌아오는 16일에도 나는 배낭을 매고 순례길에 나섰다.
쇠소깍까지 가기로 하고 걸었다.
섶섬에 도착하니 젊은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지독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보목항 입구에서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시원했지만 신발이 문제였다.
비를 피하고 있는데 마침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다음날은 집사람과 치유의 숲에 갔다.
햇빛을 피하면서 걸을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다.
대신 모기는 피할 수 없다.
모기는 강하다.
2만 년 전 죽은 코끼리의 사체를 촬영해 역추적을 해보니
그 원인은 모기였다고 한다.
모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 종은 모기와 바퀴벌레라고 한다.
이곳 제주도에는 진드기에 물려 죽는 사람들이 많다.
강하면서 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는 게 우리 인간이다.
18일 연휴 마지막 날은 옹심이칼국수를 먹었고, 돌아가는 길에
쇠소깍 가는 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지귀도가 한눈에 보이는 투모루 커피숍에 가 커피 한잔을 했다.
어제 토요일은 점심을 먹고 롯데시네마에 가 배테랑2를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나리오가 부실했고 연출도 충실하지 않았다.
유아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1편이 재벌의 안아무인 부도덕을 고발했다면,
이번 2편은 정의롭지 못 한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보여주었는데,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의욕은 있었지만 디테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별다방의 커피가 씻어주었다.
산미가 강한 투모루보다 별다방의 구수한 커피가
토요일 오후의 무거움을 조금 털어주었다.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 걷는다 (0) | 2024.11.25 |
---|---|
외돌개, 그리고 치유의 숲 (0) | 2024.10.06 |
쇠소깍과 21코스를 걷다 (0) | 2023.11.13 |
짐을 정리하다 (0) | 2022.09.12 |
이삿짐 정리 (0) | 2022.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