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건강검진

오주관 2007. 3. 13. 12:01

 

 

  

오늘 아침 일어나니 배가 허전했다. 어젯밤에 먹은 소주 두 잔이 전부였다. 걸려온 전화에 의하면 다시 피검사를 해야 하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니 아침에 밥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다. 한 끼 굶는 거야 하고 혈압 약만 먹고는 집을 나왔다. 정류장에서 내 옆지기는 강남으로 나는 길 건너 건강검진센터로 갔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암 한번 걸리지 않고 눈을 감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어젯밤 하얀 거탑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그 드라마 속의 인물인 장과장이 암으로 이승을 떠난다. 잘 나가던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인 그. 그가 걸어갈 길은 승승장구만 있지 실패나 좌절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 석자를 의학계에 더 높이 내걸고 그에 걸맞은 명예와 부를 마음껏 누리다가 가야 한다.

 

 

  

  

하지만 모를 것이 운명이다. 그는 명예와 명성과 부를 향해 긴 항해를 시작하는 단계에 암초를 만나게 된다. 위풍당당 항구를 빠져나온 배가 망망대해를 막 출발하는 그 시점에 거대한 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암이 그것이다. 암은 거한 벽이다. 아직까지 암을 만나 그 벽을 뛰어넘은 사람은 백에 하나 정도이다. 암은 그만큼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재수도 안 통하고 고도의 의학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1기면 모를까 장 교수처럼 그 주변에 전이가 되어 있는 3기 정도의 암이면 속수무책이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찾아온 정체불명의 손님들. 혈압과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 또 있다. 심장도 이웃사촌이다. 십 몇 년 전 나는 하루에 몇 번씩 심장이 마비되는 바람에 지옥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틈만 나면 담배를 꼬나물고 내 우울을 허공 속으로 날려 보내곤 했다. 그때 담배 연기와 함께 내 존재가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용케 보이지 않은 분의 힘으로 나는 다시 살아났다.


피를 다시 뽑았다. 엑스레이도 찍었다. 이 모든 것들이 가 닿아 모이는 장소가 뇌졸중과 심장이다. 해서 어젯밤 내내 내 뇌는 구질구질했다. 심장도 이미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텁텁했다.  

 

 

 

 

언제인가 나는 내 옆지기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해놓았다. 만약 내가 말을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거든 내 몸을 태워 북한산 아카데미하우스 뒤에 뿌리든가, 아니면 내 고향 동해바다에 좀 뿌려 달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죽음을 데리고 놀 나이인 것이다.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 선생은 자신에게 찾아온 암을 친구라 생각하고 데리고 놀았다고 한다. 거장다운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다. 만약 암이 찾아왔다. 방방 뛰거나 길길이 날뛸 것이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저주를 보낼 것이다. 하늘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 준 것도 별로 없으면서 항의를 하면? 방방 뛰고 저주를 보내 보아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불안과 절망을 끌어안을 것이다. 그 다음 다음은 빚을 내어 병원 치료에 몸을 맡기면서 한 가닥 기적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로또복권보다 더 더디게 찾아오는 법. 차라리 로또 한 장을 사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그 다음 다음은 모든 꿈을 접는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외출을 나간 본성이 찾아온다.  

 

 

 

  

몸은 초라하게 변해 있어도 마음과 정신은 맑다. 해서 빚을 진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그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용서를 한다.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면서 동시에 화해의 악수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이 위대한 것이다.  

 

 

 

  

인간은,

적의 상처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혀로 핥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죽음은 길의 끝이다.

죽음은 존재의 종점인 것이다.

죽음은 더 가고 싶다고 가 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죽음은 모든 상황의 끝이다.

죽음은 삶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막이 내리는 것이다.

죽음은 그리고

슬픈 것이다.

죽음은 그리고

쓸쓸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그 세계는,

햇빛은 없고 암흑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저 하늘에 떠 있는 찬란한 햇빛을 볼 수 있는 것도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찬란한 별빛도 살아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젯밤 내 옆지기와 성대에게 가 운동장을 돌면서 바라본 밤하늘. 맑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감탄사가 저절로 토해져 나왔다.  

 

 

 

  

삶은 축복이다.

삶은 잔치이다.

삶은 그리고 원더풀이다.  

 

 

 

 

 


뒷이야기- 어제 운동을 마치고 걸어오면서 나는 말했다. 이제는 안녕이네……. 무엇이 안녕이에요? 내 옆지기가 물었다. 소주, 삼겹살, 그리고 이웃 사촌들. 이웃 사촌들이야 크게 좋아하지 않아 마음이 안 고달픈데, 소주와 삼겹살은 조금 그렇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소주가 사라지고 삼겹살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삶의 한 부분이 구멍이 난 것 같다. 하지만 혈압을 잡고 동백경화를 잡고 뇌졸중을 잡고 풍을 잡고 심장을 잡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생각난다. 담배를 버린 그날이. 결심을 한 그날 나는 가장 독하고 가장 맛이 있는 담배를 다섯 갑 샀다. 아껴 가면서 천천히 태웠다. 정말 금이야 옥이야 하며 핥고 빨면서 피웠다. 다섯 갑. 그러니까 5×20=100 개의 담배가 허공 속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담배. 불을 붙인 나는 아주 천천히 빨아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담배연기를 허공에 날려 보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담배여, 이제는 안녕이다! 라고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배운 것들 중에 담배를 피운 것을 가장 후회한다. 백해무익이다. 소주도 그렇게 떠나갈 것이다. 오늘 내일……. 2007313북한산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