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가짜가 참을 이기는 세상의 변방에 서 있는 자의 쓸쓸함

오주관 2007. 8. 31. 18:43

 

 

 

  

어느 시대이든 참과 가짜가 있다. 참이 늘 승리했다. 지식이 우리 인간들의 머리 한가운데로 들어오기 전에는. 가짜는 고로 발을 붙일 수 없었다. 해서 우리 모두는 참이 가짜를 이긴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배웠었고.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참이라고 하는 진리는 저 강 건너 등불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말은 진리가 아닌 가짜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참의 자리에 앉아 세상을 향해 눈알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고 있다. 그때마다 참은 우거지상을 한 채 어깨를 접고는 뒷골목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긴다. 아니다. 우리 인간들이 참을 보지 못하고 있다.

 

# 1 참깨와 참기름


저 거시기 촌에서 참깨 농사를 짓는 거시기 씨는 비록 농부이지만 자긍심이 대단했다. 자신이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은 참깨가 매년 시장에서 일등급으로 대접을 받고 팔려 나가서.  어느 해 서울에 볼일이 올라왔다 내려가면서 시장을 찾았다. 참깨를 팔고 있는 가게에 가 두 눈으로 자신의 참깨를 확인한 거시기 씨, 입이 벌어졌다. 자신의 일등급 참깨가 수입 산인 중국 참깨와 뒤섞여 있는 것이었다. 노발대발 고향에 내려온 거시기 씨 다짜고짜 가게를 얻어 참깨를 판다. 일등급 자연산 참깨만을. 결론은 망하고 말았다. 그것도 한 달 반 만에. 원인은 가짜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진짜 참깨를 가짜라고 생각하고, 가짜 참깨를 진짜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짜를 어디 먹어 보았어야 말이지.

 

 

 

  

# 2 칡냉면

칡냉면이 있다. 칡냉면을 생산하는 회사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 칡냉면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식당도 많다.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칡냉면을 더 선호한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칡에는 에스토르겐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콩보다 1500배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골다공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싶은 사람들은 칡냉면을 많이 먹으면 예방이 되고 치료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칡냉면을 생산하는 회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합천과 창녕에 있다고 한다. 그곳 공장에서 생산하는 칡냉면에 들어 있는 칡 성분이 10%와 20% 정도 된다. 반대로 우리나라 칡냉면의 대표주자들의 메이저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는 칡냉면에는 칡 성분이 0, 85%에서 2% 정도 들어 있다. 그것도 중국 칡에서 추출한 가짜. 가짜 중에 가짜다. 뿐만 아니라 칡냉면의 색깔을 내기 위해 메밀을 바싹 태워 밀가루와 섞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예 칡냉면이 아닌 냉면이었다. 그런데 말도 못하게 현명한 우리 소비자들은 0, 85%가 들어 있는 가짜 칡냉면을 진짜 칡냉면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오늘도 뱃속에 집어넣고 있다고 KBS 이영돈 피디가 말하고 있다. 진짜 칡냉면을 가져다주니, 사기 치지 말고 진짜 칡냉면 가져오라고 호통호통을 친다고 한다.


양심과 윤리로 무장되어 있는 두 회사의 사장, 당연히 장사가 안 된다. 알면서도 안 가져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짜를 팔아야 이익이 많으니까. 


그 프로를 마치면서 이영돈 피디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저는 칡냉면을 먹지 않겠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이영돈 피디가 좋아지고 있다. 거짓이 있는 곳이면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현장에 뛰어들고 있는 이영돈 피디. 옛날 뉴욕 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는 말총머리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바리 깃을 올린 채 입김을 내뿜으며 뉴욕의 이영돈입니다, 라고 할 때부터 신뢰가 갔다. 그가 다시 고발프로에 매달려 가짜와 싸우고 있다. 그 프로를 볼 때마다 내 속이 다 시원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응원을 한다.

 

잘 한다!

이기는 소 우리 소!

 

 

 

  

# 3 추어탕

지극정성을 다했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우리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다 끄집어내어 천연조미료 6가지를 만들어 내었다. 그 6가지 조미료를 넣고 끓인 추어탕. 아 또 있다. 미꾸라지는 저 전라도 정읍에 있는 거시기 양식장에서 공수를 해왔다. 태어나 그렇게 살생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눈만 뜨면 미꾸라지들을 죽여 나갔다. 왕소금을 넣어 박박 문지르면 이상야릇한 소리들을 내지른다. 그때마다 나는 ‘미안하다. 할말 없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들을 마르고 닳도록 문질렀다.


보름 동안 이웃 주민들에게 무료로 추어탕을 배급했다. 홍보 차원과 참을 알리기 위해. 줄 때는 말도 못하게 고맙게 가져간다. 어떤 사람들은 세 개씩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꼭 달콤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꼭 갈게요.

그러나 꼭 온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그렇게 준 게 2백만 원 어치. 하지만 우리 추어탕을 받아먹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온 사람들은 전단지를 보고 왔다. 그런데 한번 사 간 그들 역시 오지 않고 있다. 마니아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서넛이 우리 가게의 단골 중에 단골이다. 그들도 언제 떨어져나갈지 시간문제이다. 우리 두 사람은 분석에 들어갔다. 왜? 오지 않을까? 왜 중국산 미꾸라지와 고등어 통조림을 갈아 넣고, 그리고 조미료를 삽으로 퍼넣고 끓인 추어탕에는 눈길을 주면서 정작 한국산 미꾸라지를 넣고, 그리고 땀과 정성을 집어넣은 모차베 추어탕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가.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저들을 화염방사기로 끄실러 버릴까! 안 된다고?  그렇다면, 하고 소주를 마신다. 숱하게 마셨다. 쓴 소주를 마시면서 안과 밖을 해부했다. 얻은 결론은


1 맛이 없다.

2 맛이 없다.

3 가짜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 때문이다.


망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티끌만한 양심을 소유한 자들은 장사를 하면 백전백패다. 형제도 속여먹는 게 장사다 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었었다. 그래도 진실과 참과 정의가 이기는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그들이 이 세상의 한복판에 서서 양심을 팔고 진실을 팔고 정의를 파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가짜는 영원히 가짜인 것이다.


왜 가짜들이 진짜를 이길까?

 

 

 

 


 

뒷이야기- 죽을 때 죽더라도 끽 소리는 하고 죽자 라고 어제 거시기 산 속에 들어가 소주를 마시면서 다짐했다. 그 소주가 밤까지 이어졌다. 참은 소수다. 가짜는 숫자가 너무 많다. 그 가짜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없을까.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도 내일부터 중국산 미꾸라지와 고등어 통조림을 믹서에 갈아 넣고, 그리고 조미료를 삽으로 떠 넣을까. 그러면 가짜들이 물밀 듯이 몰려올까. 요즘 가짜들이 그냥 보이지 않고 있다. 진정성이 실종된 세상... 아이고 무새라. 이놈의 추어탕 때문에 소주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아니면 화병으로 골로 가지. 어쨌든 이 바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더 큰 세상을 위해. 2007831도노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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