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여름을 보내고 오는 가을을 낚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의정부를 거쳐 갔는데, 그 지명을 까먹었다. 아, 생각났다. 소, 자까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또 까먹었다. 그래, 소요산이다.
하늘이 틀림 없는 가을이다. 파랗다. 소요산 속으로 들어오니 용케도 내 목구멍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인성이 아니다. 공기 좋은 곳만 가면 내 목구멍은 자유를 얻는다. 설악산에 갔을 때도 목구멍이 시원하게 트였었다.
지금은 묵언 수행 중. 저 문에 갇히면 한 계절은 가부좌를 튼 채 화두에 매달려야 한다. 그 옛날, 입시도 실패를 하고 삶도 시들시들 내 정신과 몸을 옥죄일 때, 나는 산사로 기어 들어갔다. 여승만 있는 절에 들어가 멸치를 반찬으로 석 달 열흘 도를 닦았다. 답은, 사람들 속에서 들어가 구하자. 내 답은 무리들 속에 있는 것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뜨거운 피를 식히기 위해 저 폭포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내 피를 식혔다. 그 피가 아직도 식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언제인가 대전의 큰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저 조카는 스님이 되었으면 아마 큰 스님이 되었을 거다.' 라고 말씀하셨다. 몇 십 년 후, 큰 스님이 되어 조계사에서 쿵 하고 주장자를 내리치는 게 아니라 경찰 군홧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각개훈련 받느라고 줄 땀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고이얀 것들... 너희들이 정녕 불교를 알어!
어, 시원하다. 더울 때는 물이 최고여. 저 물에 풍덩 몸을 담그면 고드름이 온몸에 피겠지. 저 물 속이 천국이여. 저 물이 청주라면... 아니, 시원한 맥주라면...
올해는 비가 자주 와 계곡마다 물 풍년이다.
폭포 아래로 쏟아지는 물. 저 물은 흘러흘러 어디로 갈까. 물이 모이는 그곳 대해. 그곳에 가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다, 답은 내 안에 있다.
하, 맑다! 가을이다. 거울이다. 저 거울에 내 얼굴을 대면 내 몸도 내 얼굴도 깨끗하게 보이겠지. 이제 몸을 일으켜 막걸리 한 잔 해야지. 몸을 일으키는데, 산이 나를 붙잡는다. 가지 마라고. 붙잡는 산을 뿌리치고 나는 몸을 일으킨다. 가야 혀, 나는 가야 혀... 내 고뇌의 창고로...
뒷이야기- 산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나는 바닷가에서 불 같은 화를 배웠고, 산에서 그 화를 식히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바닷가에서 욕을 배웠고, 산에서 그 욕을 삭히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바닷가에서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산에서 앉는 법을 배웠다. 따라서 내 위대한 스승은 산과 바다였다. 2008822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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