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고향에 가다

오주관 2008. 9. 1. 12:23

  

 

서울역 출입구. 설렘은 없었다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역장님이 나를 위해 합창단까지 데리고 와 고향 가는 길을 환송해 주었다.

 

 

 

 

고향까지 타고 갈 애마. 

 

 

 

 

5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곳. 자그마한 역사가 그림처럼 이쁘다

 

 

 

 

고 3인 조카와 같은 학년인 여자 친구. 밤 하교길에 누이차를 공짜로 편승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삼겸살에 밥까지 얻어먹고 있다. 집에 갈 때는 택시 타고 가라고 매제가 돈까지 쥐어 주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매제와 누이. 몇 달 만에 먹어보는 삼겹살, 맛 있었다. 소주는 원래 맛 있고. 

 

 

 

 

조상님들이 누워 계시는 곳으로 가는 초입. 농촌 풍경이 아름답다

 

 

 

 

대전의 사촌 형님과 육촌 형. 그리고 낫을 쥐고 올라가고 있는 우리 집안의 장손인 육촌 형님.

 

 

 

 

장손답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그렇지, 문어는 여기에 놓고...

 

 

 

 

이 할머니가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와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다.

 

 

 

 

인상이 후해 보이는 우리 집안의 장손. 그날 그랬다. '동생아, 나는 만 게 편하다. 자식들 다 잘 살지러, 내 신간 편하지러. 부러울 게 하나 없다.' '건강을 위해 담배도 끊고 술도 좀 자제하소.' '그거는 모 한다. 내가 인자 이 낙으로 사는데 담배 끊고 술까지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노. 이래 재미있게 살다 우리 두 영감할매이 가는 거지.' '형님, 형님은 좋은 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사소. 형수님도.'

  

 

 

 

산이 그윽하다. 죽어 나는 어디에 닻을 내릴까. 한줌 재로 변하겠지. 그때는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이 잠들어 있는 곳. 이승은 무엇이고 저승은 또 무엇인가. 그날 직계가족들은 없었다. 사촌 형님과 나, 육촌 동생이 힘을 합해 벌초를 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촌 형님에게 그 전날 밤 전화를 했더니 아파서 못 간다고 했다. 아들들은 바빠서 못 가고.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묘를 쓴다고 고집을 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님 묘를 깎지 않는데, 훗날 자식들이 자기 묘는 깎아주겠지, 라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바보다. 그들 역시 아프고 바빠 못 깎아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그렇다. 등이 굽었든 안 굽었든 이제 조상의 묘를 깎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고로 우리 모두는 죽으면 화장으로 끝을 내어야 한다.

 

 

 

 

벌초가 끝난 모습. 얼마나 말끔한가. 큰어머니, 나하고 민화투 한판 칠라능죠. 살아 생전, 나하고 친했던 큰어머니. 두 살 연하인 큰아버님. 동생 데리고 사는 기분이 어떵죠? 라고 물으면 똥고집만 세가... 하며 웃으시던 큰어머니.

 

 

 

 

물회 먹으러 온 삼정 섬. 가장 맛 없는 물회를 먹었다. 이 집 주인은 물회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회 한 점 먹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실력보다 재수가 좋은 집이 있다. 그런 집이 돈을 번다. 장사라는 게 묘하다, 해 보면. 

 

 

 

 

포항북부해수욕장. 그날 나를 위해 포항시장님이 가수와 연주단을 보내 주셨다. 박시장님, 고맙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뜰 때까지 연주를 했다. 물론 마음에 들었고, 흡족했다

 

 

 

 

독도페리. 워낙 일본놈들이 독도를 씹는 바람에 아예 배 이름을 독도로 바꾸었다. 주장할 걸 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쓰니 야구가 보기좋게 패하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 결국 패망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한 길만 가야 한다. 신념이 태산을 움직인다.

 

 

 

 

창공을 날고 있는 갈매기. 나도 갈매기가 되고 싶다.

 

 

 

 

송도동에 우뚝 서 있는 아파트촌. 포철에서 날아오는 매연과 악취 때문에 분양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공해는 우리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 숙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 인류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황어를 낚고 있는 강태공. 군대시절 이 바다에서 황어를 많이 낚았다,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나가버린 완호와 함께. 송도 처녀 뱃사공이 묶어두고 간 뗀마에 몸을 싣고.

 

 

 

 

소풍을 나온 시민들.

 

 

 

 

황어 세 마리, 망태에서 올린 두 마리. 합이 다섯 마리. 사내 하나가 회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점 얻어먹을 기회가 오나, 하고 기다려보았다. 잠시 후 황어를 초장에 찍어 소주를 들이키던 사내들, 아무도 내게 일별을 보내지 않았다. 구경하던 내가 '맛 싰지요?' 라고 물었다. 사내 하나가 회를 고추장에 찍어 씹으면서 '우리는 맨날 묵아가 그런지 그냥 글리더.' '그래도 자연산이라 맛이 있을 건데요.' '아, 양식보다는 낫지요.' 도둑놈들, 끝내 한 점 먹어보라는 말은 안 꺼낸다. 저것들을 마 화염방사기로... 다섯 마리의 황어는 결국 세 사람 입 속으로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침만 삼키던 나는 몸을 돌렸다. 그 옛날 내가 먹어 보아서 알지만 황어는 별로 맛이 없다

 

 

 

 

해경이 임무를 마치고 귀항하고 있다.

 

 

 

 

노을진 바닷가. 후배 혁환이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혼을 바라보면서

 

 

 

 

질긴 인연들. 여섯 살 아래인 찬규와 세 살 아래인 혁환이. 차돌과 떡돌이다.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찬규.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리면 떡돌들은 땡, 하고 공이 올려 2회전까지 거품을 문 채 설전을 벌리다  3회전에 들어가면 기가 딸리고 힘이 빠져 얼추 다 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이기는 방법은 침묵이다. 반대로 혁환이는 주로 듣는 쪽이다. '아, 예.' '아, 예, 그렇겠네요.'  혁환이 옆의 저놈 소상은 나도 이기기 벅찬 놈이다. 천적이 있다면 한 사람. 상어 이빨을 가진 친구 병윤이. 붙었다 하면 무승부가 될 때까지 간다고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어쨌든 결국 떡돌이 이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떡돌은 틈이 있어 들어오기도 쉽고 그리고 나가기도 쉽기 때문에.  

 

 

뒷이야기- 고향에만 갔다오면 후유증에 시달린다. 무관기질이 강한 친척 동포 형제들의 그 끝간 데 없는 고함소리에 가까운 따발총 세례가 그것이다. 해서 고향 친척들만 만나면 내 입은 보살이 된다. 무관들 속에 문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게 아니라, 내 존재를 열지 않는 것이 속이 편해서다. 무식하면 이긴다 라는 말은 진리다. 그런 가운데 위안을 받는 것은 고향의 자연이다. 그날 오후 조상들 묘 다섯 기를 깍고 나서 목욕을 했고, 무릎연골이 파열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촌동생을 찾아 위로를 해주었다.그리고 찾은 바닷가. 하, 시원했다. 내 몸 속의 열기가 식어지기 시작했다. 방파제에 한 시간 가량 머물렀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고향 후배인 혁환이와 찬규. 질기고 질긴 인연들이다. 그곳에서 먹은 고래고기 찌개와 소주. 맛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먹어본 고래고기. 쫄깃쫄깃한 게 먹을 만했다. 그리고 찾은 카페. 커피 두 사발씩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지옥 길이었다. 일요일이라 고속버스는 자전거보다 더 느렸다. 고향, 조상들, 벌초, 그리고 동생식구들과 후배들과의 짧은 만남. 잠시지만 내 골을 헹구는 약이었다. 200891도노강카페에서.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  (0) 2008.12.26
수빈이 돌 잔치  (0) 2008.10.02
서울 속의 시골- 무수골에 가다  (0) 2008.08.24
가을 그 속으로  (0) 2008.08.22
북한산 둘레길1-백운대에 오르다  (0) 2008.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