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밥을 먹고 있는데 불볕 더위가 방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베란다에서 오후에는 반대편에서 불볕더위가 융단폭격을 퍼붓는 것이었다. 내빼자. 북한산 계곡에 가 발을 담그고 책이라도 보자, 하고 집을 나와 북한산으로 갔다. 우이동 도선사 앞을 보니 배낭을 맨 일행들이 우리 두 사람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열치열이라고 백운대에 한번 가? 오케이. 그래서 반바지 차림인 우리 두 사람은 도선사로 오르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자, 백운대로.
인수봉. 우리가 오를 곳은 인수봉이 아니라 백운대. 인수봉보다 더 높은 백운대.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가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백운대로 오르고 있는 사람들. 정상에 걸려 있는 태극기. 올려다 보니 까마득했다. 퇴역장군이 저 정상을 밟을 수 있을까. 옛날 뻣뻣다리가 아닌 시절의 나는 날다람쥐였다. 펄펄 날았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누가 나를 앞질러 간단 말인가.
건너편의 인수봉. 새까맣게 암벽에 매달려 있었다. 밧줄도 없이 나는 인수봉을 맨몸으로 올라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풀쩍 뛰어 건너편 백운대 정상에 착지를 했다.
옆지기는 쇠줄을 타고 올라갔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정상에서 맛보는 시원함. 불어오는 바람은 좋은 바람이었고 시원한 바람이었고, 그리고 고마운 바람이었다. 말도 못하게 시원했다. 에어컨 바람이 아니었고, 선풍기 바람이 아니었다. 너무 시원해 하마터면 입이 돌아갈 뻔했다.
물 한 모금의 맛!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달았다. 누가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게 뭔냐? 나는 말한다. 물이라고. 마블링이 적당하게 섞여 있는 쇠고기도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물이 제일 맛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코카콜라는 찰나고 쾌락이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나! 저 정도는 되어야 사랑을 논할 자격이 있다. 보기 너무 좋아 한 컷. 목숨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거시기 행복하게 잘 사시라요.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어떻게 뛰어 왔을까. 내가 삼각산 신이다.
워메, 어지러운 것! 간이 배 밖에 나와 있어야 저 수직암벽을 오를 수 있다. 누가 저 산에 가라고 했을까. 가라고 한 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다. 아니, 목숨을 내놓고 오른다. 그게 인간이다.
오르기 어려운 게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다. 올라왔으니 또 내려가야 한다. 오를 때는 천국이요 내려갈 때는 지옥이다. 오를 때는 땀이 비 오듯 해도 기쁜 마음으로 오르지만, 내려 갈 때는 저승사자가 목에 밧줄을 걸지 않아도 저절로 내려간다. 숨을 헐떡이며....
저 푸른 가을 하늘. 가을이 묻어 있었다. 저 산을 내려온 우리 두 사람, 해물파전에 냉막걸리 한 병과 생맥주 한 잔으로 하산을 마무리했다.
도노강의 갈매기들. 포항에서 날아온 내 친구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앞 섬에 살았는데 지난 번 큰 비에 섬이 사라지는 바람에... 용케 다시 날아와 요즘 가끔씩 머물고 있다.
뒷이야기- 지상은 더웠다. 어제 오늘 서울은 불볕더위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잠깐 북극에 갔다오면 이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 도노강에서는 끼륵끼륵 갈매기들이 울어제끼고 있다. 포항에서 날아온 15마리의 갈매기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 서울시장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이라는 글에 대해서. 서울은 너무 무미건조하다. 해서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든 도시든 국가든... 살아 있어야 한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200889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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