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통일로 가는 길

오주관 2009. 2. 14. 17:59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  체 게바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지난 해 청계광장에서의 촛불집회.

나라의 지도자가 한반도 대운하와 처절하게 싸움을 벌리고 있을 때, 그곳 현장에 참석했던 나는 내 양미간을 바짝 좁히곤 했다.

 

저것밖에 없나?

정녕 대운하밖에 없나?

다른 것이 있을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아닌, 다른 무엇이?

 

 

  

그렇게 시작했다.

내가 그린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의 시작은 지난 해 청계광장 촛불집회에서 출발했다.

장장 6개월이었다.

6개월 동안 나는 아침이면 배낭을 메고 도노강 둔치를 걸어 도서관으로 갔다.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아닌, 남한과 북한을 살리면서 동시에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그 길이.

 

그날 나는 다짐을 했다.

지난 내 삶을 동원해 그 길을 만들자.

내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총 동원시켜 한반도를 통일시킬 수 있는 그 길을 내 손으로 만들자.

 

깡보리밥을 먹어도 나는 행복했다.

나는 원래 육고기 파가 아니다.

나는 원래부터 소식에다 채식주의자다.

 

 

 

일상의 삶.

열정적인 자와 시간에 편승하여 그냥 흘러가는 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존경하는 인물들을 나열하면 징기즈칸, 시황제, 나폴레옹,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또스또옙스키, 톨스토이, 까뮈, 헤밍웨이, 체 게바라, 존 레논, 다자이 오사무, 김구, 박정희,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아버님과 어머님, 파울로 코엘료,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등.

 

 

  

지금까지 아귀처럼 씹어 삼킨 그 많은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참기름 짜듯 짜 만들어 보자.

반드시 내 손으로 만들자.

총론과 원론이 아닌, 실천적이고 실질적인 각론을.

 

지난 세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비지땀을 흘릴 때, 나는 도서관에 처박혀 앎을 궁구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었다. 지난 세월, 더러는 사기를 치기 위해 일류 연기자가 되어 비지땀을 흘릴 때, 나는 하늘과 땅을 상대로 인간을 궁구했다.

 

나는 생각한다.

정치란?

국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국민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실패는 두렵지 않다.

내가 진실로 두려운 것은 무지다.

무지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볼 때 내 정신은 얼어붙는다.

무지가 나를 외면활 때 내 정신은 고개가 꺾인다.

무지의 그 한가운데를 걸어갈 때 외로움과 고독이 뼈속까지 찾아온다.

열이면 아홉이 무지의 밭이었다.

 

 

 

설악산은 그냥 산은 아니다.

설악산에서 내가 그린 것은 우리 전체가 사는 그 길이었다. 

이념은 아니다.

이념이 우리를 구하지는 못한다.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다.

그 통합의 세계를 꿈꾸면서 외설악를 바라보곤 했다.

 

 

  

지난 해 여름 삼각산의 백운대.

더운 한 여름에 오른 백운대는 말도 못하게 시원했다.

산을 왜 오를까?

도대체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오를까?

쳬력단련을 위해.

일상에 찌든 때를 벗기기 위해.

 

나는 생각한다.

산에는 꿈과 희망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꿈을 잡기 위해 오늘도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잡기 위해 오늘도 산을 오르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꿈과 희망이다.

오늘의 우리 인간이 내일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은 꿈과 희망이다. 

 

 

  

어제의 도노강.

비가 내린 도노강은 회색이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햇살이 비치는 도노강을 걸어갈 때 갈매기들이 도노강 위로 날아간다.

행복하다.

저녁의 도노강.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는 석양을 받으며 도노강 둔치를 걸어올 때 청둥오리들이 아직도 궁데이를 하늘 높이 쳐든 채 먹이를 구하는 그 장면을 목격할 때 내 가슴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곤 한다.

 

 

  

2기가 USB.

저 속에 내 존재가 들어 있다.

저 작은 USB 속에 우리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시킬 DMZ PROJECT가 들어 있다.

 

무게가 어느 정도 나갈까?

50그람 정도 나갈까?

그러나 저 USB 속에 들어 있는 그 프로젝트의 무게는 한반도에서 가장 무거울 것이다.

백두산도 저 무게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제 며칠 후면 저 USB 속에 들어 있는 프로젝트는 내 손을 떠난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진실로 실패는 두렵지 않다.

저 프로젝트가 정치적 잣대와 정파적 잣대에 의해 재단이 되지 않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하나, 이념을 앞세워 통일을 논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이념이 아닌, 통합의 그 세계를 위해 가슴을 열고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저 프로젝트의 운명을 쥐고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내가 그린 프로젝트를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을 때, 한반도의 통일은 활화산이 되어 타오를 것이다.

 

지난 6개월.

나를 지지해준 옆지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보다 두 손을 높이 들고 "브라보" 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그리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은 설악산을 자주 찾았었다.

속초의 아바이 순대로 유명한 청호동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수없이 토론을 했었다.

밤이 깊으면 우리 두 사람이 찾아간 찜질방.

그곳이 우리 숙소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다음날이면 우리는 외설악을 찾아 그 프로젝트의 뼈와 살을 붙여 나가곤 했다.

서울의 백운대에도 여러 번 올랐었다.

퇴행성 관절염의 그 다리로.

다리가 아프거나 말거나 우리는 행복했다.

어느 누구도 그리지 못한 대 프로젝트를 내가 그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에 우리 두 사람은 열광했다.

이 프로젝트의 반은 당신 것이다.

고마우이!

 

 

 

그리고 또 한 사람.

정 교수.

우리 두 사람의 닮은꼴은 피가 뜨겁다는 것이다.

열정적이고 태평양이다.

나는 생각한다.

열정적인 사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열정을 넘어 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미치면 쥘 수 있다.

 

한 달이면 두 번 정도 만나 소주 잔을 나누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정 교수 역시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리고 내 이야기를 경청했었다.

의견충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때마다 물이 돌아가듯 비껴 나갔었다.

왜냐하면 메이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 교수, 고마우이!

누구보다도 뜨겁게 내 프로젝트를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중간에 정 교수의 그 원을 들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했다.

정녕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밀고 나간 것은 내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  

정교수도 알다시피 나는 이 프로젝트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미쳐 있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이 프로젝트뿐이었다.

그 점을 정 교수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이지 나를 진심으로 이해를 해주었고, 그리고 내가 그린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정 교수,

이제 며칠 후면 내가 지난 6개월 동안 미쳐 있었던 이 프로젝트가 떠나간다.

내 손을 떠나면 그 누군가와 도킹을 할 것이다.

그 후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 개인적 바람은 변방의 한 아웃사이더가 그린 이 프로젝트가 휴지조각이 되지 않기만 바란다.

정 교수의 표현처럼 형님의 철학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가슴, 그리고 미래를 볼 줄 아는 긴 안목을 가진, 분열이 아닌 통합의 21세기를 설계할 줄 아는 태평양 같은 그런 혜안을 가진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설날 저녁,

보쌈에 소주를 마시면서 내가 말했다.

다음에 우리 세 사람이 만날 곳은 정 교수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학교의 캠퍼스다.

그곳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 나누면서 못다한 통일에의 이야기를 나누자.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다.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살았느냐 가 남는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죽어 썩으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간다.

남은 우리의 삶,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

멋지지 않나!

 

 

뒷이야기- 죽는다는 것은 큰 슬픔이면서 한편으로는 축복이다. 우리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죽판개판이 되리라.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죽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씩 옷깃을 여미게 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이냐 인 것이다. 입에 살살 녹는 쇠고기를 아구아구 먹으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 내 가족만 배불리 먹고 등 따시게 사는 삶이 제일의 삶인가? 내 금고에 이 세상의 금은보화를 가득 채우는 것이 정녕 행복한 삶인가? 아닐 것이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우리 모두가 웃으며 사는 세상인 것이다. 또 있다. 실천적인 삶이다. 앎의 궁극은 실천이다. 이것만 실천하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제발 혼자 아구아구 먹고 마시지 말고 좀 나눠 먹자. 나누어 주는 그 삶이 곧 나에게 보시를 하는 것이다. 2009214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