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난 우리 두 사람은 아직 우리 몸을 떠나지 않고 있는 감기를 다스리기 위해 다시 잠을 청하나, 하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감기는 아주 독하다. 보통 질긴 놈이 아니다. 감기로 보름 가까이 싸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인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미국의 유명한의과대학교 교수들이 말하기를 감기에는 약이 없다. 그러니 자연치료를 해야 한다. 한국 의사들이 처방해준 처방전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항생제가 기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자신이라면 절대 이런 처방은 안 낸다고 설레발이를 치는 것이었다.
자연치료에 기댈까 하다 결국 의원을 찾아 감기를 다스리고 있다. 운동도 약발이 안 통할 때가 있다. 내 감기는 추위와 상당히 관계가 있다, 라고 생각한다. 몸과 바깥기온이 안 맞을 때 감기가 찾아오곤 했다.
목이 부어 있고, 새벽이면 기침이 터져 나오곤 한다. 낮에는 좀 나은 듯하다 밤이면 다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감기를 떠올리며 혹시 몸이 쇠잔해 이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산이라도 오르며 운동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산에 가자. 도봉산장에 가 원두커피라도 한잔하자. 어제 오늘 누워 있었더니 허리도 아파왔다. 갑시다. 옆지기가 동의를 했다. 퇴행성관절염 환자와 천식환자가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하고는 집을 나갔다.
도봉산 입구.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경마장이나 경륜장에 가 돈 빼앗기고 기운을 빼는 것보다는 일백 번 낫다. 잡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화투도 칠 줄 모른다. 팔뻥에 팔! 하는 사람이다. 산에도 고무신이나 운동화 신고 오르내린 사람이다. 그래도 날다람쥐만큼이나 빨랐다. 문제는 옆지기. 가야 가는 것이다. 오 미터 올라가다 쉬고, 십 미터 올라가다 쉬곤 한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고 한다. 발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하자 덩어리다. 수능을 볼 때도 일주일 전부터 병원신세를 지는 바람에 앰뷸런스에 실려 입이 탕탕 부은 상태에서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어쨌든 요즘도 밤마다 내 마사지를 받아야 잠을 자곤 한다.
입간판을 보았다. 없었다. 도봉산장이 보이지 않았다. 있었는데? 분명 몇 년 전, 겨울에 올라와 원두커피를 마셨는데? 건물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라가보자. 올라갔다. 올라가는 사람들보다는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다섯 번 정도 쉬고 나서야 도봉산장에 도착했다. 있네! 아, 이름이 바뀌어져 있었다. 도봉대피소로. 들어갔다. 옛날 그대로였다. 옛날, 그러니까 10여 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 산장지기가 원두커피를 끓여주면서 ‘아마 이곳 산장의 원두커피가 서울에서 두 번째 맛있는 집일 겁니다.’ 라고 했었다. 1등은 어딥니까 라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기름난로 옆에 앉았다. 그리고 원두커피를 두 잔 시켰다. 산장 안에는 등산객 한 사람과 산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두 사람, 그리고 대피소에서 일하는 산 사람이 있었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가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다. 개성 부근의 장단과 개성. 개성을 이야기를 하다 그럼 개성에 다녀왔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 원두커피가 두 잔 날라져 왔고, 커피를 마시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옳거니 했다. 요즘 내 머릿속에는 통일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클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에 미쳐 있을 때 내 시선은 이상하게 도노강에 가 머물곤 했다. 그리고 그 도노강에서 남과 북을 그리곤 했다. 낮에도 밤에도 나는 잉어떼들이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도노강을 바라보면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관해 양미간을 좁히곤 했다.
없을까?
한반도의 대운하가 아닌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시킬 비책이 없을까?
봄에도 여름에도 내 양미간은 도노강을 향해 좁혀지곤 했다.
그런 어느 날, 드디어 그림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미친 듯이 그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것이 바로 DMZ PROJECT 라는 것이다.
원두커피가 반 정도 비워졌을 때 남북관계에 대해 물었다. 바로 터져 나왔다. 김대중이를 돌로 쳐죽여야 한다. 김대중이와 노무현이 때문에 김정일이 간만 키워 놓았다. 뭐냐? 퍼주기만 하고 받은 것이 없잖아! 김대중이는 그렇게 바치고 노벨 평화상 하나 받았잖아. 한반도 통일꾼이 되기 위해 스물네 시간 양미간을 좁힌 채 고뇌를 거듭하고 있는 나도 사이사이 끼어들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거야 말로 서울에 안 가 본 놈이 이기는 꼴이었다.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을 상대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준비된 들개들이었다. 아니다. 이론과 논리와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일방적인 공격은 차라리 무지였다. 저들의 저 무지가 지금 한국의 보편적 사고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눈치들이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과는 한 고향입니다 라고 하니 여보시오, 이대통령은 일본 오사카 출신이요, 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저런 떠갈놈이 있나! 옆에 앉아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던 옆지기는 입을 다문 채 보살이 되어 있었다. 돌아가는 그림이 뭐주고 뺨 맞는 꼴이었다. 뿔이 조금 돋았다.
퍼주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투자다, 라고 하자 개코도 모르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김정일을 위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북 동포들을 위해 도와주는 것이다, 라고 하자 그런 개소리 하지 마라!
통독을 보라, 경제도 중요하지만 마음부터 먼저 치료를 해야 한다, 라고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 그런 헛소리 하지 마라!
내 통일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옆지기는 계속 침묵이었다.
40여 분이 흘렀다.
커피를 비운 우리 두 사람은 찐맛이 없어 커피값 4천 원을 지불하고는 도봉산장을 빠져 나왔다.
계곡을 내려오면서 말했다.
떠갈 것, 돈 주고 박살났네!
하하하!
서울 안 가본 놈이 이긴다 하더니 진짜네.
하하하!
히야, 무식이들이 사람 잡네!
하하하!
나는 생각한다. 도봉산장 그 패들의 생각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삼분의 일의 생각인 것이다. 그들의 대북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그 오만방자한 이북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얻어먹는 주제에 굽힐 줄 모르는 기고만장한 그 버릇을 고쳐 놓겠다.
물론 한 방법일 수 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고만장한 버릇을 고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안 통하는 통뼈가 있다. 그래도 밀어붙이면 피를 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둔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끌어안는 정책이었다. 이북과 남한을 하나로 본 것이다. 한 형제로 생각하고 접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과 북은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이 늘 아슬아슬했다. 달래고 어르고, 그리고 이북이 무엇을 요구하면 그때마다 우는 아이 젖 주듯이 주곤 했다. 하지만 이북은 자신들의 성에 안 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기도 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한 이북이었다. 하지만 남한정부는 그때마다 이북이 돌아설 때까지 고래심줄 같은 인내로 기다렸다. 그러기를 수차례, 드디어 해빙이 찾아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잘 나가다 뭐로 빠진다고,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남과 북의 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금강산에서 우리 여자 관광객이 피격당한 사건을 놓고 남과 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존심은 무엇이고 염치는 또 무엇일까? 숙이는 것은 전체를 살리는 일인데, 그걸 외면하는 그들을 상대로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의 미학은 무엇이고 인내의 미학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이성은 무엇이고 감정은 또 무엇인가?
우리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나는 묻는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법과 자세로 접근을 해야 할까? 총론이 아닌 각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대운하로 몸살을 앓을 때 나는 도노강을 바라보며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해 양미간을 좁힌 채 내 대가리를 참기름 짜듯 짜곤 했다. 나라 안이 대운하로 시끄러울 때 나는 홀로 싸움에 내 전체를 던진 것이었다. 나는 맹세했다. 내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그리자. 총론이 아닌 각론을 만들어 내자. 나는 할 수 있다. 마르고 닳도록 내 머릿속에 입력을 시킨 그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끄집어 내어보자. 긴 시간과 고뇌의 그 끝의 어느 날 마침내 나왔다. DMZ PROJECT.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실질적 방안이.
DMZ PROJECT
부제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실질적 방안이다. 이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은 속초의 설악산을 자주 갔다. 속초의 찜질방에서 밤을 보낸 우리 두 사람은 그 다음날이면 외설악을 찾아 골격을 다듬었고, 그리고 살을 붙여 나가곤 했다. 이 작품은 내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옆지기와의 공동 작품이다. 골격이 드러났을 때 옆지기는 두 손을 높이 쳐든 채 만세! 만세! 하고 외쳤다. 나도 설악산에서 외쳤고 집에서도 외치곤 한다. 그것도 자다가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 도노강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함을 치곤 한다.
DMZ PROJECT 만세!
오모차베 만세!
뒷이야기- DMZ PROJECT는 4년 후 수면 위에 떠오를 것이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북의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해야 한다. 정말이지 지금의 내 심정은 산삼이라도 있으면 김 위원장에게 보내고 싶다. 20년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다. 4년 후, 나는 기꺼이 삼팔선을 넘어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DMZ PROJECT를 펼쳐 보이며 이 지구상의 마지막 유물인 이데올로기를 남과 북의 힘으로 걷어낼 것이다. 2008128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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