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경제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온 세계가 경제 동상에 걸려 떨고 있다. 도대체 이 위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도대체 이 경제 한파는 어디서 시작되었단 말인가? 철옹성 같다고 생각한 그 요새가 왜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렇다 치고 자본주의의 몰락은 어디서 온 것일까?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지와 탐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이념에 세뇌되어 살아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백년도 안 되어 사회주의가 먼저 물러났다. 물론 완전한 퇴장은 아니다.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자본주의도 몰락의 기로에 서 있다. 아니, 몰락해가고 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두 이념이 시험대에 오르자 세계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잖아. 자본주의가 답이 아니잖아. 시장주의가 답이 아니잖아. 늦게나마 우리는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무엇인가 하고 그 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자본과 시장이 손을 잡으면 장돌뱅이들 세상밖에 더 되겠나.) 물론 이전에 세계의 몇몇 석학들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폐해를 자주 지적을 하곤 했다. 시장주의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음모를 까발리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의 메시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담론에 의해.
이왕지사 나온 주제이기 때문에 갈마무리를 하자면, 21세기에는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막기에 급한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가지고 있는 음모와 모순으로는 이 세상이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그럼 무엇으로 이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념이 아니다.
무지와 탐욕을 몰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
생략하고.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니다. 있다면 인간학에 목말라 있는 인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을 파 내려가고 있는 변방의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한반도를 한번 보자. 얼어붙어있다. 금강산은 막혀 있고,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비무장지대에는 살얼음 같은 냉기가 형성되어 있다. 자유로운 것은 언제나 새들 뿐이다. 여기서 한번 머리를 모아보자. 22세기에서 21세기의 지금의 한반도를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아마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이다.
무지가 보일 것이다.
새털 같이 가벼운 이념의 무게가 보일 것이다.
물론 한 방법일 수 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한번 밥을 사면 상대도 한번 밥을 사야 한다. 내가 한번 술을 사면 상대도 한번 술을 사야 한다. 언제까지 얻어먹기만 하면 여간 곤란하지 않다.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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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외는 있다. 사고 안 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근원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존재론과 삶의 가치관이다. 사고 안 사고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돈이 있는 사람이 밥과 술을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내가 가진 돈이 없는데 빚을 내어서 밥과 술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만 먹고 마시고 내일 죽어버린다면 땡빚을 내어서라도 밥과 술을 살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 획일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다. 이분법적인, 바람보다 더 가벼운 이념의 벽에 갇혀 살아온 것이다. 아! 하고 빛 같은 무엇이 다가오나? 탁! 하고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려오나? 머릿속으로 무슨 섬광 같은 빛 하나가 지금 들어오나?
들어오면 당신은 上이고, 안 들어오면 下다.
앞에서 거대 담론 어쩌고 저쩌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수세기동안 거대 담론의 울타리에 갇혀 살아온 것이다. 세뇌! 이분법적인 거대 담론에 치여 꼼짝을 못한 채 타율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노예로 살아온 것이었다. 우리가 주인인 그 궁궐을 다른 무리들에게 내어준 채 거지처럼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온 것이었다.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오호, 통재라!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할 일이다.
21세기다.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의 새벽이 다가왔다. 수평선을 바라보아라. 어둠을 뚫고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우리는 저 밝고 뜨거운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높이 든 채 이렇게 외쳐야 한다.
탈! 이다.
무지에서 탈출해야 한다.
탐욕에서 탈출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
한반도의 통일도 탈! 해야 한다. 감정이 아닌 이성과 지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념의 잣대로 접근을 해서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통일은 오지 않는다. 주고받기식의 거지정신으로 접근을 해서는 상생은 강 건너 등불일 뿐이다. 이념이 아닌 상생의 정신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경쟁이 아닌 남과 북의 자존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사고로 접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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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복습을 하면 이렇다. 21세기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통합의 세계여야 한다. 분열이 아닌 통합이어야 한다.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 그리고 디지로그의 통합의 정신으로 우리나라를 설계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게 살려면 내 형제가 행복해야 한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 옆집이 행복해야 한다. 우리 동네가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 옆 동네가 행복해야 한다. 우리 경상도가 행복하게 살려면 경상도 옆 전라도가 행복해야 한다. 우리 남한이 행복하게 살려면 삼팔 이북의 북한이 행복해야 한다. 우리 한반도가 행복하게 살려면 동북아시아가 행복해야 한다. 미국이 행복하게 살려면 중동국가가 행복해야 한다. 중동국가가 행복하게 살려면 온 세계가 행복해야 한다.
너무 간단하다. 21세기적 탈 사고를 하면 문제가 보이고 그리고 답이 보인다. 답이 나왔으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실천이다. 앎의 궁극은 실천이다.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무지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탐욕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 두 가지를 몰아내려면 다시 한 번 우리의 머릿속을 해체 분해시키고 새로운 지로 무장시켜야 한다.
이념이 아니다.
종교가 아니다.
국가가 아니다.
민족이 아니다.
문화가 아니다.
언어가 아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야 한다. 우리가 아닌 우리 모두여야 한다. 그래서 온 세계가 하나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빨리 무지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탐욕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내 것은 네 것이다.
내 것과 네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온 세계의 것은 온 세계의 것이다.
뒷이야기- 자고 일어나면 어지러운 소식뿐이다. 미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고, 씨티가 국유화되고 지엠도 국유화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우리를 괜히 우울하게 만든다. 어제는 죄인 김현희가 나타나 벌집 쑤시듯 나라 안은 물론이고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얕은 수다. 그렇게 해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소를 도와주면 일본 국민이 그래,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 라고 못을 박나! 문제는 정도다. 대도다. 그리고 가슴을 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땅에 떨어진 도덕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도덕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은 깨끗해야 한다. 21세기에는 원칙과 철학으로 무장된 자가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지방의 그들도 마찬가지다. 도지사와 시장, 군수는 물론이고 광역과 시군의회에 진출해 있는 인간말자들과 조폭들을 뽑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 국민이라면 나라의 중심을 뚫어지게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무지의 눈으로 바라보면 늘 당한다. 탐욕뿐인 그들의 계산된 사고와 행동을 스물 네 시간 불을 켜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들은 결코 국민의 편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없으면 바다의 배는 어디로 갈까? 2009312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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