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부실하면 정신도 부실할까. 정신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할까.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일까. 아니면 정신과 몸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일까. 내 정신의 심지는 언제까지 탈까. 타다 사라지면. 가는 가을과 오는 겨울이 악수를 하는 오후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원색의 단풍이 파르르 떨어져 내린다. 이른 아침 창밖으로 본 도노강의 풍경이 떠오른다. 오리들이 제철을 만난 듯 이리저리 떼를 지어 다니며 물이끼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저들은 가을을 타지 않는 모양이다. 계절에 민감하면서도 사색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한국은 지금 어수선하다. 신종풀루, 미디어법, 4대강, 세종시가 두서없이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과이다. 아이들과 엄마들은 신종풀루에 몸을 떨고 있고 어른들은 자신의 무지에 정신을 떨고 있다.
총리에 임명되어 처음 국회에 온 정운찬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갔다 야당의원들에 의해 저지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이미 대타임을 결심한 뒤라 야당의원들의 거센 항의와 팔을 뿌리치며 대리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 돈키호테 같은 그의 모습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아프간에서는 계속해서 미군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곳 전쟁터에 온 그들. 그들의 생명이 왜 소중하지 않겠나. 하나뿐인 생명과 한 번뿐인 청춘들이 타국에서 값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한 국가의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참일까. 명분 없는 참여는 고립만 찾아온다. 욕심이 과하면 반드시 탈이 따라온다. 형제들끼리의 싸움은 말려야 한다. 붙이면 다 망한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날만 새면 자살테러로 자국의 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뿌리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종교의 가르침이 진실이라면 우리 인간의 파라다이스는 죽음 후의 내세다. 현세는 아니다. 현세는 죽음 그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과연 진실일까. 현세가 아닌 내세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 종교라면 우리는 이제 온몸으로 거부해야 한다. 흙이 춤을 춘들. 해골이 세세생생 웃으면.
속고 있고, 속이고 있다.
인간에 의해 신과 종교가 각색된 지 오래다.
유럽의 독일을 보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오는 9일이면 독일은 이제 통독 20주년을 맞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20년이다. 며칠 전 통독의 그 현장에 주인공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미국의 부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독의 휄무트 콜. 통독과 뒤이은 소련의 붕괴. 필연일까 우연일까.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승리일까. 필연이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닌 동반 붕괴라고 생각한다.
통독 20주년을 맞아 세계는 통일이 가져온 빛과 어둠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비록 통일은 되었지만 통독의 명암은 존재한다. 몸은 통일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장벽이 처진 채 가로막혀 있다. 통독의 상흔은 곳곳에 남아 있다. 열정의 반대편에 자리한 지성의 부재. 넘쳐난 감정의 반대편에 자리한 이성의 부재. 통독의 준비과정은 있었지만 통독 후의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다. 통독에는 운도 한몫 끼어들었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운은 필연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허리를 응시한다. 우리 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며 또 어떤 방법과 그리고 어떻게 맞아야 하나. 이 땅의 지도자들은 진정 한반도 통일에 대해 고뇌를 하고 있을까. 그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설계하고 있을까. 원론과 총론이 아닌 각론을 가지고 있을까.
한반도의 통일은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올 수도 있고, 남과 북의 합의하에 올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앞의 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와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문명의 힘에 의해 통일이 올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남과 북의 합의하에 오는 통일이다. 나는 지금 동북아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세계의 문명을 바라보고 있다. 황소의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힘을. 누구는 그랬다. 플러스알파라고. 맞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위기는 찬스다. 앞의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남과 북은 이제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구호로 통일은 오지 않는다. 진실로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댄 채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념은 아니다. 통일 속에 이념이 들어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오지 않는다. 양보와 희생과 화해와 자존심 그리고 상생이다. 그것들이 이념을 녹여야 한다.
▲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주제를 놓고 만나야 한다.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한다. ▲자존심을 다치지 않는 화해와 상생의 길이어야 한다. ▲지금이 아닌 먼 훗날을 위해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나는 얼마 전 OJOSAN PROJECT를 내 블로그에 올렸다. 물론 각론이다. 지난 1년, OJOSAN PROJECT를 만들면서 내가 본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각론은 없었다. 참으로 쓸쓸했다. 우리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오죽하면 꿈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7천만 민족이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이 아닌가. 하지만 통일의 노래는 있지만 통일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 열정은 있지만 차가운 지성은 없다. 의지는 있지만 설계도는 없다. 열정과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할 수 있는 각론이다. 각론이 없다는 것은 통일을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통일을 연구하는 연구소 어디에도 한반도를 통일시킬 각론을 보지 못했다. 캄캄했다. 나는 한반도와 한국을 개조시키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국민을 상대로 사자후를 토하는 몇몇 석학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허리끈을 풀어놓고 통일을 토론해보자. 통일을 논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만납시다. 좀 만납시다. 제발 좀 만납시다. 만나서 당신 꼬치가 굵은지 내 꼬치가 굵은지 자로 한 번 재봅시다. 정치권에도 내 메시지를 보냈다. 통일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 프로젝트를 검토해보라. 그리고 만나자. 바쁘더라도 좀 만나자. 제발 좀 만나자. 내가 도와주겠다. 그리고 따뜻한 차는 내가 사겠다. 없는 자들이 적선을 한다고 없이 사는 내가 차까지 사겠다고 나발을 불었지만 그들은 무슨 심정인지 침묵이었다. 무심한 사람들. 그들로부터 답을 기다리다 지친 나는 이번에는 어느 도시의 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영화감독에게 OJOSAN PROJECT를 한 번 보내볼까. 보는 눈이 있으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내가 날려 보낸 메시지에 끝내 답은 없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가 사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OJOSAN PROJECT는 어떤 각론인가.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평화적으로. 무력은 아니다. 흡수통일도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때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마냥 엿가락 늘이듯이 세월아 네월아 할 수 없다. 시간이 급하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그 지점이 중요하다. 또 하나, 그동안 장벽에 갇혀 살면서 생긴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 문화, 이념, 반세기 동안 품었을 적대적 감정들을 풀어내어야 한다. 통일 못지않게 감정의 앙금을 푸는 게 중요하다. 몸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우리 한반도 역시 게으른 동독 놈들 오시(Ossis)와 역겨운 서독 놈들 베시(Wessis)가 나타나지 마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통독을 우리는 반면교사라 삼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이제 허리끈을 풀어놓고 토론을 해야 한다. 우리 남한만이라도 7천 만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놓고 활발하게 토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결론이 나오면 북과 진지하게 자리를 같이 해야 한다. 말이 아닌 뜨거운 가슴과 열정 그리고 이성으로 만나 가슴을 열어야 한다.
뒷이야기-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제 통일의 허상은 걷어치우고 세상 밖으로 이 주제를 내놓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서울광장에서 토론을 하자. 통일에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통일에 관한 한 전문가는 없다. 통일을 원하는 뜨거운 가슴과 열정과 의지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자들이 주인공이다. 이제 가슴을 열고 진실로 한반도의 통일을 토론해야 할 시기다. 2009113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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